봉오리채 떨어지는 동백꽃은 이름 없이 사라져간 민초들의 모습을 상징

제주 4·3의 깊은 상처로 동백꽃의 낙화에서 
죽음을 연상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이 애처롭다

강요배님의 그림집 『동백꽃 지다』를 꽤 오래전에 읽고 보았습니다. 부제는 강요배가 그린 제주 4·3입니다. 1989년부터 3년 동안 ‘제주 4·3 항쟁’을 다룬 그림 50점을 그려, 1992년에 ‘동백꽃 지다’란 이름을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 결과물을 책으로 모아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림을 위해 사람들의 증언을 듣고 그것을 작품으로 풀어냈습니다. 그림집에는 4·3을 증언하는 34명의 목소리와 기억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그림책을 뒤적이다 ‘동백꽃 지다’는 제목의 그림에 눈길이 갑니다. 식물에 유독 정이 가는 사람인지라 그럴 것인데 동백꽃의 어떤 부분이 상징으로 연결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컸습니다. 배경은 제주도 중산간 지역의 숲으로 보입니다. 가늘고 긴 줄기가 화면에 가득한데요 그 중 동백나무 몇 그루가 보입니다. 아니, 동백나무숲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림 가장 앞 쪽에 늘 푸른 동백나무 이파리가 선명합니다. 그 보다 더 선명한 붉은색 동백곷 하나가 땅바닥을 향해 뚝 떨어지는 모습이 그림에 담겼습니다. 먼발치로는 채 녹지 않은 계곡 잔설 위에 핏자국처럼 보이는, 땅바닥에 널부러진 동백꽃 무리가 보입니다. 동백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얼추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동백나무는 잘 아시다시피 차나무과에 속하는 늘푸른나무입니다. 늘푸른나무가 대부분 그렇듯이 동백나무는 따뜻한 남쪽나라가 제격인 나무입니다. 대략 7m 정도까지 자랍니다. 제주도를 비롯해 남쪽 섬에서 흔히 볼 수 있고 해안 쪽으로는 서쪽으로 충남 서산, 섬으로는 대청도까지 올라가며 동쪽으로는 울릉도가 끝입니다. 대청도가 동백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인 셈이죠. 동백나무는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개발된 품종이 상당히 많습니다. 영국왕립원예학회 홈페이지에서 검색하면 2014년 현재 무려 1,641종류가 검색된다고 합니다.  

 동백은 한자이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는 이름입니다. 겨울에 꽃이 피어 동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볼 수도 있지만 겨울에도 잎이 푸르다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동백나무는 기름이나 목재 활용도가 높습니다. 동백기름은 윤기가 오래 지속되면서 냄새도 없고 때도 잘 끼지 않아 예부터 머릿기름으로 인기를 누려왔습니다. 동백나무 씨앗에서 추출한 동백오일은 자외선에 의한 활성산소를 감소시키는 항산화 효능을 지녔고, 동백나무 잎에서 황산화 성분 중 하나인 카멜리아노시드가 새롭게 발견되는 등 오늘날에도 동백나무는 피부 개선 효능으로 여전히 주목받고 있습니다. 예전 제주도 곶자왈 선흘리 어느 마을을 들렸다가 동백기름을 이용해 주민의 소득창출을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동백나무는 지역에 따라 12월에서 4월 사이에 붉은색 꽃을 피웁니다. 곤충이 활동하지 않는 겨울에 꽃을 피우다 보니 꽃가루받이 해줄 대상이 남다릅니다. 직박구리와 동박새라 불리는 새들이 동백나무의 중매쟁이입니다. 동백꽃이 붉은 이유가 바로 새가 붉은색을 잘 인식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꽃에 비해 향기가 강하지 않은 이유도 새들이 냄새에 둔하기 때문이라 봅니다. 꽃통의 맨 아래 꿀 창고에 많은 양의 꿀을 보관하는 이유도 곤충보다 덩치가 큰 새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먹을 게 부족한 겨울철에 꿀은 대단한 에너지원입니다. 새들은 꿀을 얻고 대신 동백나무의 꽃가루받이를 돕습니다. 자연은 상부상조가 일상인가 봅니다.    

 동백은 꽃이 통째로 떨어집니다. 그런 모습이 옛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유발했나 봅니다. 꽃이 시들지 않는 상태에서 봉오리채로 떨어지는 특징이 있기에 예부터 절개와 지조를 상징해왔습니다. 또한 이루지 못한 사랑의 대명사이기도 했습니다. 고려 말기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을 비롯해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백꽃》처럼 언제나 여인과 함께 등장합니다. 동양의 꽃인 동백은 서양에 건너가서도 비련의 여인 이미지를 이어갔습니다. 동백은 프랑스 소설가 뒤마가 1848년에 발표한 소설 《동백꽃 부인 La Dame aux camlias》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원래 “동백꽃 부인”이 옳은 번역이나 일본 사람들이 《춘희(椿姬)》라고 해석한 것을 우리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창녀인 여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는 동백꽃을 매개로 순진한 청년 아르망 뒤발과 순수한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은 비극으로 끝나버린다는 줄거리입니다. 이 소설은 5년 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로 각색되어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킵니다. 

동백꽃은 이미 제주4·3의 상징 

동백나무는 그 화려한 색깔과 모양에도 불구하고 꽃의 처연한 떨어짐 때문인지 상실의 의미를 넘어 죽음과 연계된 불길한 징조로 여기는 지역도 있습니다. 제주도가 그렇습니다. 우리 근대사 속의 상처가 아주 깊은 제주도 지역에서는 동백나무 꽃의 낙화를 무척 불길하게 여깁니다.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민초들의 모습으로 보였을 겁니다. 마치 사람의 목이 툭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떠올렸을 겁니다. 예기치 못한 불길함을 뜻하는 ‘춘수락椿首落’이라는 말도 그렇게 동백나무 꽃의 낙화에 빗댄 표현이라 합니다. 

 제주에서 동백꽃은 이미 제주4·3의 상징입니다. 14.232명에 달하는 영혼들이 붉은 동백꽃처럼 차가운 땅으로 소리 없이 스러져갔다는 의미를 동백꽃은 내포하고 있습니다. 동백은 동백일 뿐인데 4·3의 깊은 상처로 인해 동백꽃의 떨어짐에서 죽음을 강하게 연상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이 애처롭습니다. 

 강요백 화가는 제주사람입니다. 그림 작업을 하면서 무수히 많은 증언을 들었으나 여전히  4·3을 채 모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전에는 더더욱 몰랐고요. 제주도 안에서도 철저히 감추어진 역사였던 것이지요. 다행히 2000년에 ‘제주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2003년에는 대량 학살에 대한 국가의 공식 사과가 있었지만 아직도 음해와 도착된 언설들이 떠돌고 있으니 슬픈 역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듯합니다.

4·3에 대한 관심과 학습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의 깊은 이해와 의미 찾기가 축적되어야 아픔을 넘어 성찰과 치유의 새바람이 될 수 있겠다는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날이 오면 동백꽃은 죽음의 상징이 아니라 새희망과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요? 올해는 제주 4·3, 70주년입니다.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