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구 유니버설 디자인 조례 제정 민관협치

은평구 유니버설디자인 조례(이하 ‘조례’) 제정은 지난 2016년 장애인단체에서 공론화하고 은평구의회 발의로 시작되었다. 2017년 6월, 시민과 전문가가 참여해 보다 풍요롭고 실속있는 조례를 만들고자 민관공동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논의하였다. 지난 해 11월에는 주민설명회도 있었다. 이런 절차가 절실한 까닭은 의회나 행정부가 보지 못하는 시각을 시민과 전문가들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휠체어 탄 장애인이 북한산 숲길을 간다고 해보자. 먼저 전동휠체어 접근권이 보장돼야 한다. 도로정비, 완만한 경사각, 안전설비 등등. 헌데 휠체어가 중간에 멈춘다면? 전동휠체어는 충전배터리를 쓰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은평구에는 롯데몰과 은평구청, 장애인단체에만 충전기가 설치돼 있다. 다른 지자체들도 대개 장애인단체나 복지관에만 충전기를 보급한다. 장애인도 생활인이다. 장애인이라고 장애인단체나 복지관만 방문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충전하기 쉬운 장소가 어디인지 당사자들에게 물어보는 게 중요하다. 

설치장소 하나에도 이런 꼼꼼함을 요구하는 것은 사용자의 욕구가 무엇인지 반영하는 것이고, 이는 공공시설을 모두가 차별 없이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하는 유니버설디자인의 정신이라 할만하다. 

다른 지역 사례를 보자. 서울 관악산 무장애 숲길 쉼터, 부산 지하철 광안역(만남의 광장 내). 8호선 단대오거리역(경기도 성남시) 등 이용률이 높은 야외공간과 공공시설에 충전기를 설치했다. 장애인단체 등의 사무실은 퇴근 이후에는 충전기를 사용할 수 없다. 이용자가 가장 빈번히 다니는 곳이면서, 이용시간이 최대한 보장되는 야외공간에 설치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지하철역사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은평구 장애인 이동기기 수리 지원에 관한 조례’의 충전기 설치장소 조항에는 교통시설이나 지하철역사가 등장하지 않고 ‘장애인복지시설 및 공공시설 등’으로 돼있다(제4조).

유니버설디자인이란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재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이것이 유니버설디자인의 인권 정신이다. 민관협치 논의과정에서 강조한 것도 인권이었다. 누구나 차별 받지 않으려면 시민의 다양한 욕구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의회와 행정부는 기존의 규범에 익숙하기 때문에 혁신적 발상과 접근이 어렵다. 그래서 충전기 설치 같은 작은 사안에서도 민간협치의 효과는 분명하다. 시민이 원하는 장소에 충전기를 설치하면 이용자의 만족도가 커진다. 사업성과는 자연히 뒤따른다. 또 시민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행정에 직접 반영되는 것을 보고 ‘참여’가 어떻게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깨닫는다. 공공행정은 시민 모두의 삶을 관장하는 영역이다. 시민이 공론의 장에 참여하는 기회가 늘어날수록, 주인의식도 커진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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