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에서 바라본 미투운동과 은평여성정책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허은영 은평구 인권위원, 이정호 은평지역사회보장협의체 여성분과 실무위원회 여성분과장, 박은미 은평시민신문 편집위원장, 고은경 여성친화도시조성협의회 위원.

검찰 조직 내 성범죄 피해 사실에 대한 폭로가 문단, 영화계 등 사회 곳곳으로 이어지면서 미투(#Me Too)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투운동에 대해 대부분의 여성들이 아파하고 공감하고 있는 반면 아직도 무고죄, 역고소, 피해자 비난 등으로 많은 피해자들을 위축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미투운동이 성공하려면 지역에서도 다양한 미투운동과 연대의 힘이 있어야 한다. 이에 은평시민신문에서는 은평에서 바라본 미투운동과 은평여성정책 등에 대해 이야기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은평지역사회보장협의체 여성분과, 여성친화도시조성협의회에서는 그동안 어떤 일들을 진행했는지 궁금하다.

이정호 : 여성분과장으로 9년째 활동하고 있다. 처음엔 은평구 여성들이 바라는 게 뭘까 생각했다. 여성들이 육아를 잘하기 위해 베이비시터 등을 양성하면 좋겠다해서 베이비시터, 간병인 등을 양성하는 일을 했다. 무엇보다 여성이 힘이 있어야 가정이 잘 선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폭행을 가하면 당연히 이혼을 해야 하는 거지, 왜 그걸 맞고 살아, 그러기위해선 여성들에게 힘이 있어야겠다 생각했고 그 부분의 상담과정을 2년 정도 했다. 그 다음에는 여성들이 함께하는 100인 원탁회의를 만들어서 여성정책 등을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첫 해는 거의 사람 모으기 바빴고 둘째 해, 셋째 해 계속 진행하면서 이 분들을 대상으로 해서 네트워크를 구성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됐다. 우리가 좀 인위적인지만 여성정책에 관해 의지가 있는 분들을 따로 모아서 하는 게 좋겠다고 다시 방향을 잡았다. 그 때 민관협치 등이 만들어지면서 우리도 민관협력 여성부문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고은경 : 은평구가 여성친화도시로 선정되기에 앞서 2015년에 구성된 협의회로 그동안 여성친화도시로 선정되기까지 준비를 하고 앞으로도 은평구가 여성친화도시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기구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은평여성 100인 원탁회의’를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여성실무분과와 함께 진행하기도 하였고, ‘양성평등주간’행사도 주도적으로 진행한바 있다. 여성친화도시 사업추진을 위한 의견제시 및 의견수렴 창구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협의회 위원뿐만 아니라 모니터링단과 함께 기본역량교육, 워크샵 등을 진행하기도 했고 지난 3년 동안 은평지역의 여성들의 의견을 모아보기도 했는데, 이러한 과정이 은평구가 여성친화도시로서 역할을 하는데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 미투 운동이 사회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허은영 은평구 인권위원

허은영 : 검사라는 직책에 있는 여성조차 성폭력 성희롱을 지속적으로 당하고 그것이 부당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 사람들한테 충격을 줬다. 이번 폭로로 모든 계층의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그런데 이미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하고 있었는데 그건 아주 일부의 어떤 사람들이 당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 여기고 넘긴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동안 많은 여성들이 폭력을 말했는데 사회가 들어주지 않았던 거다. 

고은경 : 2016년에 있었던 강남역 살인사건이 하나의 촉발제가 된 거 같다. 운이 좋은 여성들만 살아남는가 하는 문제제기부터 다양한 여성폭력 문제를 이야기하는 계기가 됐고 검찰 내 성폭력 문제제기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여성폭력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본다. 

허은영 : 맞는 말이다. 근데 가정에서 학대를 받지만 자립능력이 떨어지는 문제 때문에 이혼하지 못하고 폭력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어떤 여성들은 아직도 말할 수 없는 조건과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도 같이 살펴봐야 할 것이다.

고은경 : 그런 분들도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하나 구조부터 바꿔야 하는 부분이 많다. 앞으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여성을 단지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게 아닌 주체로 바라보는 세상이다. 지금은 그런 세상으로 가는 과도기적인 상황이라고 보고 현재 시점에서 필요한 것들, 우리가 요구할 거는 해야 한다.  

이정호 : 여성들이 피해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요구를 해야 하는지 스스로 아는 것도 중요하다. 

고은경 :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거다. 

이정호 : 미투운동은 ‘이런 것도 성희롱인가, 성폭력인가’하고 생각하던 걸 ‘아 그래 바로 그게 폭력이다’ 하고 얘기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과거부터 계속 있던 여성폭력이 지금은 표면으로 많이 드러나고 있다. 사회복지 쪽에서도 비슷한 일이 최근에 있었다. 상급자가 여직원에게 허리를 잡거나 팔을 잡거나 하는 일이 있어서 여직원들이 불쾌하다고 이야기했는데 뭘 그렇게 까칠하게, 예민하게 구냐고 계속 그런 행위를 했던 일이 드러났다. 그런데 이걸 문제 삼은 여직원들에게도 제재가 있었다고 들었다. 그 상급자는 센터장, 부장모임자리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 아래 여직원들에게 또 다른 모습을 보였다는 게 참 충격이었다. 요즘은 유치원에서도 수영복으로 가려지는 부분을 만지면 하지 마세요라고 가르친다고 들었다. 자기표현을 정확하게 할 수 있게 알려주는구나 했다. 

허은영 : 요즘은 거기서 조금 더 나가서 수영복 입은 부위뿐 아니라 어느 부위든 성적인 불쾌감 또는 불쾌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 만지거나 비하, 비유하는 건 성적인 희롱이나 괴롭힘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금의 미투운동도 문제제기하는 사람을 까칠하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몰지 않고 지지해주고 그 정당성을 인정해주는 게 중요하다. 주변사람들도 이런 문제제기가 비난받는 게 아니라 지지받고 위로받을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 가해자가 문제구나 하는 걸 배워가는 게 큰 역량강화인 거 같다. 

이정호 : 최근에 부부간에도 성폭력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놀랐다. 싫다고 하는데, 상대방이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게 예의가 아니겠나? 부부간 성폭력 얘기를 듣는데 너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이 소모품에 불과한 건가? 

박은미 : 서지현 검사 인터뷰를 보면서 이미 알고 있던 여성폭력 문제였지만 하나씩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초등학교 때 골목길을 뛰어가는데 어떤 아저씨가 가슴을 확 만지고 지나갔다. 골목에 서서 얼어붙은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한 기억이 난다. 2011년에 한국여성의전화에서 가정폭력 2차 피해 사례연구를 한 일이 있다. 1년 치 상담사례 분석을 다 마치고 든 생각은 두더지 게임이었다. 아무리 많은 여성들이 소리치고 외쳐도 여기저기서 두들겨 패면서 주저앉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동네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많이 만난다. 구청을 취재하면서 구청여직원들이 성희롱에 가까운 말을 듣는 일도 많이 목격했지만 속상하게도 구청여직원들도 나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일도 있다. 그런 걸 생각하면 화가 날 때가 많다. 

인권감수성이 높아지면서 다시 발견하게 된 우리 주변의 문제는 뭐가 있을까? 

이정호 은평지역사회보장협의체 여성분과 실무위원회 여성분과장

이정호 : 사회복지 쪽에서도 여기저기 터지는 성폭력 문제들을 보면 여기도 안전한 곳이 아니구나 싶다. 사회복지 전공자 80%가 여성인데 기관장이나 부장들은 남성들이 더 많다. 이건 뭔가가 잘못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어림도 없는 얘기지만 20년 전에는 구청 직원들하고 단란주점을 가면 사회복지사들이 술을 따랐다. 나는 복지관에 손님이 와도 차심부름을 한 일이 없는데 나중에 위에 계셨던 과장님한테 물어보니 얼굴보고 시키지 아무나 시키냐고 하더라. 돌이켜보니 당시 예쁜 사회복지사 2명이 전담으로 차심부름을 했던 기억이 난다. 

허은영 : 20년 전 학교에서 교수님이 나에게 허양이라고 불렀다. 당시에는 다방종업원을 부르는 거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았다. 몇 년 지나 이해하게 된 게 당시 교수님이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오신 분이어서 허양, 김군 이런 식으로 학생들을 불렀구나 했다. 그러면서  다방종업원으로 취급받았던 걸 기분나빠하는 내가 사실 다방종업원을 폄하하는 인식이었구나, 그런 편견을 갖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고은경 : 안심택배, 안심귀갓길처럼 여성을 대상화하는 일이 사라지는 시대가 오면 좋겠다. 

이정호 : 여성안심택배도 중요하지만 인식개선이 빠진 상태에서 택배사업만 늘어나는 건 문제다. 여성을 계속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는 건 분멍 한계가 있다. 

고은경 : 이제는 양성평등, 성평등 이야기를 하지만 앞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포괄하는 인권의 관점에서 보는 날이 올 거라고 본다. 

허은영 : 사람들은 분위기 좋게 한다면서 외모를 칭찬하는 일이 많다. 공적인 업무로 만난 자리에서도 외모를 가지고 ‘여기서는 대표를 미모로 뽑는군요’ 등의 농담을 건네고 칭찬하는 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성희롱을 하려는 의도로 하는 말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런 위계나 차별을 부각시키는 말로 우리 문화를 일상화시키기 때문이다. 

이정호 : 요즘 정말 말수가 줄었다. (일동 웃음) 우리집은 눈뜨면 농담으로 시작하는 분위기인데 친정아버지도 ‘얘야, 정말 치마를 입고 싶니?’ 이렇게 물어보면서 ‘할아버지가 씨름을 하셨는데 너 다리가 더 두꺼운 거 같다’ 뭐 이런 얘기를 해요. 예전에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던 농담들 앞에서 이젠 입을 닫게 된다. 

박은미 : 나는 경력단절여성이라는 말이 참 마음에 걸린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돌보고 아이들이 크면서 천천히 다시 일을 하게 되는 과정을 겪었을 뿐인데 사회가 나한테 ‘너는 단절된 여성이야. 대학에서 공부한 게 무슨 의미야?’ 라고 비하한다. 육아라는 게 내가 여태 공부한 것의 총합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삶이 단절되었다고 낙인찍듯이 말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사회가 육아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와 관계망들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너희가 경력단절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시간제강사, 돌봄 노동 등을 해 보던지’ 이런 수준으로만 접근한다. 이젠 직업도 평생 7~8개를 갖는 사회라고 하는데 여자들에게만 그런 딱지를 붙이는지, 여성을 주체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객체로 바라보고 대상화해서 바라보는 관점이 참 거슬린다. 

여성친화도시이기도 한 은평에서 다양한 여성정책도 내놓고 있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고은경 여성친화도시조성협의회 위원

이정호 : 여성정책과에 있는 공무원들조차 전문성과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계속 공무원들이 바뀌면서 기존에 하던 일들도 연결이 잘 안 되는 거 같다. 한 두 명이라도 고정적인 역할을 하는 전문공무원이 있으면 좋겠다. 

고은경 : 은평구가 서울시 최초로 여성정책담당관실이 생긴다고 해서 기대가 컸다. 그런데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르겠고 몇 개의 사업만 진행되는 수준인 거 같아 아쉽다. 

허은영 : 2017년 양성평등정책 시행계획을 살펴봤는데 이 속에 어떤 철학이 담겨있는지 잘 모르겠다. 여성관련 정책은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보호주의관점으로 접근할 수도 있고 여성차별 문제로 접근하면 또 다른 관점이 될 수도 있다. 여성정책에 남녀라는 말이 들어간다고 성평등이 실현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물론 성인지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중요한 말이지만 그 성인지에 대한 철학이 없는데 어떻게 정책이 드러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요내용 중에 일가정 양립이 나오는데 어떻게 그게 여성들에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여성한테는 모성과 그 악착같음 그 가정을 지키는 힘을 모두 다 발휘해야 한다는 그 자체가 너무 이상한 신화다. 

고은경 : 여성들도 슈퍼우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 할 수 없다. 

박은미 : 일가정 양립이 가능하지 않다는 걸, 우리 사회가 받아들여야 한다. 여태까지 일가정  양립이 가능했다면 누군가 그만큼 더 노동을 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고은경  : 일가정 양립을 요구하는 건 기본적으로 사회, 국가가 일과 가정이 양립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갖추겠다는 대전제에서 시작하는 건데 개인적인 부분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고. 얼마 전에 여성정책과에서 저출산고령화문제 토론회를 여는 걸 보면서 이게 여성만의 문제인가 싶었다. 저출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차원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안 되는데 자꾸 여성의 문제로,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건 아닌 거 같다. 

박은미 : 최근 여성정책과의 보도자료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사회문제에 대한 대응책으로 ‘작은결혼식 한마당, 가족육아사진공모전, 결혼·출산장려 캠페인’ 사업을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원인은 따로 있는데 작은결혼식을 열고 결혼·출산장려 캠페인을 하겠다는 생각이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 이렇게 근시안적으로 접근하는 정책을 보면 은평의 여성정책에 어떤 철학이 담겨있는지 도통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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