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하는 힘’(앤드루 졸리 & 앤 마리 힐리, 감영사) 그 첫 번째 이야기

‘견고하지만 취약하다(robust-yet fragile, RYF)라는 용어는 예상된 위험이 발생했을 때는 회복력(resilience)을 발휘하지만, 예상치 못한 위협에는 매우 취약한 복잡계(complex systems)를 묘사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공대의 존 도일 교수가 만들어낸 표현입니다. 묘목을 가꾸는 양묘장을 상상해보겠습니다. 수목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양묘장은 완벽하게 효율적인 시스템이나 화재와 같은 재앙에 취약합니다.

불이 일단 나면 삽시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리죠. 그렇다면 수목 밀도가 매우 낮게 설계된 양묘장은 어떨까요? 화재 대응책으론 그만인데 묘목 간 거리가 너무 멀어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문제입니다. 따라서 두 가지 사례를 잘 버무려서 빽빽하면서도 중간에 통로를 배치한 설계 안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보정시스템이 복잡함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시간이 흐르면 이 복잡성으로 양묘장에 전혀 다른 형태의 취약성을 가져올 것이라 말합니다. 외래 곤충종의 창궐 따위 등 말입니다. 보정되고 보완된 시스템은 매우 복잡한 형태를 띱니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 내에선 위험 발생의 가능성 자체는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을 맞을 수 있단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독일 저명한 사회학자 故 울리히 백은 위험사회(risk society)라는 용어를 통해 산업화와 근대화를 통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현대인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험을 몰고 왔음을 설명했습니다. 사회가 진화하고 발전될수록 위험요소는 더욱 커지게 되는데, 이런 위험은 문명의 금자탑을 쌓은 현 시대가 초래한 딜레마라는 것입니다. 그는 무엇보다 예외적 위험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일상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울리히 백의 위험사회와 견고하지만 취약할 수 있다는 양묘장의 시스템적 딜레마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보다 거대한 파국ㆍ재앙이 사회 저변에 내재된다는 데 그 궤를 같이합니다. 저자는 이에 ‘제비활치’의 사례를 통해 ‘평소에는 잠잠한’ 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즉각 대응 가능한 지도자 또는 시스템이 필요함을 설파합니다.

제비활치는 ‘비활동 기능 집단(sleeping functional group)’으로 불리는 어종으로 특수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으나 이례적인 상황에서만 그 역할을 수행합니다. 바다 생태계에 해초가 건강하고 산호가 많은 평소 상황에선 파랑비늘돔이 그곳의 조류를 먹어치웁니다. 그런데 만약 생태계 시스템이 뒤집혀 조류가 해초를 장악하게 되면 파랑비늘돔의 조류 제거능력이 상실됩니다. 이는 해양생태계 먹이사슬 균형이 깨짐을 의미합니다. 이 때, 평소 조류는 거들떠보지 않는 제비활치가 불균형을 바로잡는 임무를 띠고 해초, 산호초 지역에 ’배치‘되어 조류를 제거하면서 한번 뒤집혔던 시스템을 바로잡게 된다는 것이죠.

위험사회는 일상에 숨어 있습니다. 견고한 사회일수록 그 위험도는 증가합니다. 마치 은평구도 그렇습니다. 서울 자치구 가운데 시민운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내부적으로 참 많은 홍역을 겪어온 것도 사실입니다. 복잡한 현대 사회일수록 제비활치 역할이 절실합니다. 우리 은평구 지역에는 누가 그런 역할을 도맡아 해왔을까요? 6월 지방선거를 앞둔 만큼 제비활치 기능을 수행했던 인물을 찾아봐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그래야 은평구가 어떤 위험이 닥쳐와도 회복하는 힘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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