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전이다. 젊은 중국인 부부가 찾아왔다. 한국에 유학을 온 아들이 잠시 돈을 벌려고 자동차 세척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다. 스티븐즌슨증후군이라는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스티븐즌슨증후군은 온 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10명중에 1명은 온 몸을 긁다가 죽는 치사율이 높은병이다. 산재라고 생각을 해서 산재 신청을 했는데, 근로복지공단은 중국에서 온 환약을 먹었고, 회사에 트리클로로에틸렌(TCE)양이 적었으며, 의무기록상 발병일과 인과관계를 찾기 어렵고, 위생상태의 문제도 심각한 것 같다고 하며 불승인을 했다. 

2달 정도 일을 하다가 발병을 했다가 2달 정도 있다가 사망을 한 것이다. 먼저, 불승인 결정을 내린 근로복지공단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의무기록, 회사가 어디인지, 어느 정도 자료가 제출됐는지 확인을 했다. 

TCE는 보통 세척작업을 하는데 사용하는 물질로 매우 위험한 독극물로 분류된다. TCE의 사용양의 기준은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되어 있고, 1년에 한번 작업환경측정이라는 것을 하게 되어 있으며, 피부에 닿으면 당연히 중독이 될 수 있고, 공기중 호흡으로도 중독이 될 수 있는 물질이다. TCE에 의한 중독으로 ‘스티븐즌슨증후군’이 나타날 수 있으며, 이것에 대해서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명백히 규정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TCE의 사용량을 찾아야 하며, 중국의 환약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왜 의무기록의 발병일은 이해할 수 없게 되었는지 찾아야 했다. 위생상태문제는 병원입원이후의 문제이기 때문에 별 상관은 없었다. 사업장은 천안이고, 나는 중국말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상황에서 모든 대화와 진술서 등은 통역과 번역을 통해서 이뤄졌다. 

근로복지공단은 사업장 생산부장의 말에 근거해서 TCE 사용양이 적었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동료노동자들의 말은 적지 않게 사용하고 있다고 말을 했다. 노동부에 사업장의 작업환경측정 자료를 요구했고, 유족과 함께 사업장으로 가서 사장을 만났고, TCE를 사용하고 있음에 대한 확인서를 받았다. 유족이 사장을 만나고, 사업장을 돌아보는 모습을 뒤에서 볼 때 너무 찡한 마음이 들었다. TCE의 양은 산업안전보건법상 기준보다는 낮았으나 작업환경측정과 사장, 동료노동자들 모두 사용하고 있음을 말해주었고, 직업환경의학과 선생님은 기준치 이하라도 충분히 병에 걸릴 수 있다는 소견을 밝혀주었다. 

중국의 환약 그것이 무엇인지 밝혀야 했다. 같이 일했던 동료를 통해서 그 약을 찾았고, 약의 설명서를 찾아서, 그 약이 ‘풀민’이라는 중국에서 공인된 약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의사선생님에게 자문을 구해보니, 그 약과 스티븐즌슨증후군은 관련이 없다고 확인을 해주었다. 

이제 문제는 발병시점이 언제인지가 관건이었다. 근로복지공단에서는 병원의 의무기록상에 입원하기 ‘1달전 발병’, ‘2주전 발병’ 등의 문구가 있기 때문에 TCE 접촉시점이전에 발병한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매우 두꺼운 의무기록들을 살펴봤다. 어느 곳에는 ‘1달전’, 다른 곳에는 ‘2주전’, 다른 곳에는 ‘10일전’ 발병에 대해서 제대로 적어놓은 곳이 없었다. 담당 주치의를 만나보니 ‘중국인이어서 말이 통하지 않았다’며 발병시점을 적어야 하기 때문에 의무기록에 적은 것이지 정확한 날짜는 아니라고 말을 했다. 발병시점의 문제도 해결된 것이다.

산재심사위원회에 관련 서류를 접수했고, 담당 심사장에게 관련한 내용들을 설명해나갔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거친 사건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심사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노동부 산하 재심사위원회로 접수 할 수 있는데, 왜 심사위원회에 제출했는지 물었고, 지금까지 질병판정위원회를 거친 사건은 한 건도 심사위원회에서 인정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재심사위원회로 접수를 했어야 하는데, 잘 못 한 것인가,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다 떠올랐다. 하지만 제대로 판단되지 않은 것을 제대로 판단해야하는 것이 산재심사위원회라고 생각하고, 담당 심사장에게 위원회에서 판단하게 해달라고, 이 정도면 충분히 입증이 된 것 아니냐고 말을 했었다. 다행히 산재심사위원회에서 이겼다. 질병판정위원회를 거친 사건 중에서 산재심사위원회에서 인정된 첫 사례가 된 것이다. 

천안에 있는 공장, 병원, 경찰서를 찾아다니고, 동료 노동자들을 만났으며, 이 모든 일에 통역과 번역이 함께 했다. 젊은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과 젊은 부부의 슬픈 눈빛이 생각이 난다. 노말헥산에 의한 앉은뱅이병 등 이주노동자들이 독극물 산재에 더 위험하게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입증을 하는 것이 만만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 사건은 부족하지만 더 안전한 사회, 일하다 다치거나 병들지 않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을 하게 됐던 계기가 됐다.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의무기록상의 온 몸의 붉은 반점이 기억하는 그를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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