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양말은 엄마가 챙겨주는 거라고?

분주한 아침이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는데, 아침에는 기상 시간과 상관없이 왜 늘 바쁠까?’라는 생각과 함께 목소리가 높아져가고 있다. 

“딸~ 얼른 먹자. 아들~ 옷 다 입었니?” 
“엄마! 양말 꺼내줘!”
“어디 있는지 알잖아. 매일 잘 꺼내 신더니 오늘은 왜 그러실까?” 
“원래 아들 양말은 엄마가 챙겨주는 거래!” 

모든 일을 제쳐두고 순식간에 아들 앞에 섰다. 

“누가 그런 말했어?” 

아들은 내 눈치를 살피며 냉큼 서랍장에서 양말을 꺼내 신는다. 

“엄마가 혼내는 거 아니고 물어보는 거야.” 
“우리반 선생님이.” 
“언제 그런 말을 하셨을까?” 
“정확히는 기억 안 나고 1학기 때! 자기 물건 정리하는 거가 책에 나왔는데 그 때 선생님께서 선생님 아들 양말 챙겨줘야 된다고 하셨어.” 
“선생님의 말뜻은 그게 아니셨을 것 같은데…….” 

그랬다. 1학기 생활 습관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때 선생님께서는 “자기 물건은 자기 스스로 정리해야 한다는 건 우리반 친구들 모두 알지요? 그런데 선생님 아들은 고등학생인데 아직도 엄마가 양말을 찾아줘야 해. 아이고 참~!”하고 농담하신 것을 올해 1학년인 우리 아들은 ‘아들의 양말은 엄마가 챙겨서 줘야 한다.’로 왜곡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순간 궁금했다. 같은 말을 들은 8세 여아들도 이 내용을 이렇게 왜곡했을까? 그냥 우리 아들이 남녀 상관없이 한 인간으로서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했던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생각이 다르잖아!

그 날 저녁 다시 한 번 상황을 설명했지만 아들은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았다. 우리의 실랑이가 길어지자 옆에 있던 6세 딸이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이 다르잖아!” 

이런 식으로 수많은 남녀이분법적인 사고가 고착화되어 온 것인가? 아들양말 일화에서 성불평등까지 이르는 내 사고의 흐름이 비약일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나는 정말 별 거 아니라고 보일 수 있는 작은 일상에서 충격을 받았다.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가치관과 ‘페미니즘의 감수성’을 가지고 아이들과 생활하려고 노력해 왔다. “부모로서 무한한 사랑과 책임감을 가지고 많은 순간을 인내하며 너희를 보살피고 있단다. 너희들도 함께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에게 예의를 좀 갖추면 좋겠다.”는 엄마의 바람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우리 사이에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까?

이 세상을 다 안겨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엄마 물!”
“식탁 위에 있잖아. 물은 셀프.” 
“엄마 이거!” 
“니가 까먹은 과자봉지는 니가 직접 휴지통에!” 
“엄마 옷!” 
“단추 푸는 것만 도와줄게. 스스로 벗어서 세탁바구니에 갖다 넣어줘.” 

딸아, 아들아,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싶고 이 세상을 다 안겨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엄마는 참을게. 나는 너희들을 주도적이고 자율적인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누구라도 오랫동안 곁에 있고 싶은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오늘도 그냥 늘 살아왔던 것처럼 고민없이 살 것인가? 힘써서 여성주의의 감수성으로 자기검열을 하며 살 것인가? 끊임없는 내적갈등에 맞닥뜨리며 아이들과 토닥거리는 일상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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