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1헌혈 겨울나기'를 제안합니다

고교시절 어느 날, 학교 운동장에 헌혈차가 들어섰다. 공식적으로 수업을 면제받고 달콤한 간식도 나눠준단 소식에 급우들과 난생 처음 시뻘건 생명수를 내주었다. 내 삶에 첫 ‘1초의 찡그림’은 이같이 보잘 것 없는 이유에서 시작됐다. 

그 후, 나는 뭔가에 흘린 듯 정기헌혈회원이 됐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35살을 한 달여 앞둔 2017년 연말이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자축할 일이 생겼다. 간식 정도는 제 지갑 털어 얼마든 사먹을 수 있는 나이에 100회 명예 유공장을 받게 된 것이다.

100회 정도 헌혈한 사람의 몸엔 그간 헌혈의 흔적이 뚜렷이 박혀있다. 내 경우엔 왼팔에 문신처럼 선명한 주사바늘 자국이 움푹 패여 있다. 100시간가량 침상에 누워있으면 여러 생각이 맴돈다. ‘가끔’ 시선이 왼팔을 따라 기계에 걸려있는 주머니로 흘러가는 혈액을 향할 때면, ‘아주 가끔’ 그 시뻘건 액체가 혈액관리본부를 거쳐 누군가에 전달될 것이란 생각에 미치기도 한다. 모범적으로 살아오지 않은, 실제로도 그렇게 착하지 않은 나지만 때론 누군가에 쓸모 있는 존재가 되었다니 마음이 간지럽다.

그런데 나는 왜 헌혈을 계속 해온 것일까. 사실 다 큰 성인에게 영화 무료관람권 또는 30, 50회 기념 은ㆍ금 유공장은 그다지 탐스러운 유인책은 아니다. 그럼 도대체 왜. 혜민 스님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통해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사회봉사활동을 점수 때문에 시작했어도 하다 보면 봉사활동 자체에 의미를 느끼고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자비심을 어느 순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좋은 일은 어떤 계기로 어떻게 시작했든 상관없이 무조건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몇 회째부턴지 기억나진 않지만 어느 순간 찰나의 간식보다 헌혈 후 ‘보람’이 더 커진 것 같다. 가끔 수혈이 필요한 지인, 정기헌혈회원 카페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 모아둔 헌혈증서를 내줄 때가 있다. 그 때의 기쁨은 마치 마약한 것 같은 황홀경을 선사한다. 기쁘다. 행복감에 젖어든다. 그래서 나는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마지막 날까지 계속 헌혈을 할 것이다. 

최근 서울에 첫 눈이 내렸다. 겨울이 됐음을 실감한다.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계절 관계없이 수혈 수요는 일정한 반면, 겨울철엔 헌혈재고가 부족하다고 한다. 겨울이 헌혈 비수기라는 별명을 지닌 연유다. 이런 시기엔 정기헌혈회원에게 헌혈 독려 문자도 자주 온다. 

“지금 전혈헌혈이 많이 부족하여 부득이하게 (중략) 바쁘시겠지만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침상에 누운 어느 환자는 간절히 누군가의 따뜻한 혈액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동안 동네, 학교, 시내의 헌혈의 집 여러 군데를 다녀봤다. 개인적으로 전자문진 후 즉시 헌혈한 적은 100회 동안 손에 꼽는다. 항시 대기 번호표를 뽑고 2~30분 정도는 책 읽으며 기다린다. 그래도 즐겁다. 그만큼 많은 시민들이 개인, 단체를 통해 헌혈봉사에 적극 동참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번 겨울도 예전처럼 누구에게나 ‘따뜻한’ 겨울나기가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주제넘게 1인 1헌혈을 권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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