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서류를 뒤적여봤다. 아픈 사건이고, 아픈 기억이다. ‘자살’, 삶을 스스로 끊는 것.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모두에게 아픈 기억이다. 여러 건의 자살 사건을 담당했고, 그 모두 가슴 아픈 사연들이 있었다. 심지어 동시에 2개의 사건을 할 때는 나 조차도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3번째 사건 의뢰가 왔을 때는 손사래를 치면서 못하겠다고 한 적도 있다.

내가 사건을 했던 어느 정신과 의사선생님이 나를 소개시켜 주셨다고 하면서 한 여성 분이 찾아오셨다. 담담한 듯 참고 있지만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때였다. 보통의 산재는 근로복지공단에서 담당하는데, 교수는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에 따라서 사학연금관리공단에서 업무상 재해여부를 판단한다. 산재법에는 ‘자살’에 대한 업무상 재해 인정여부 판단기준이 있는데, ‘사학연금법’에는 그런 것이 전혀 적혀있지 않다. 한 번에 인정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처음 서류를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 드렸다.

교수님은 노벨상을 받을 만한 분이셨다. 한국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과학자상도 여러번 타셨고, 세계적인 학술지인 네이쳐, 사이언스 등에도 많은 논문을 내셨었다. 실험실이 넓고, 연구원도 많은 대학에서 모교로 이직을 하시면서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다. 모교는 부지도 좁고, 관련 연구자도 많지 않지만 경영마인드로 충만한 총장님이 스카웃을 하면서 실험장비와 연구원, 급여 이후 대우 등 여러 가지를 파격적으로 약속을 한 것이다.

교수님은 많은 고민 끝에 서울의 모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제대로 된 실험을 하고, 제대로 된 논문들을 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20년 동안 있던 곳을 떠나 생의 마지막 승부수를 온 힘을 다해 던져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직한 대학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2년이 넘게 지난 사망시점까지 연구실과 실험장비가 이전 대학의 절반이 되지 않았고, 연구원도 부족했다. 학교는 연구성과 만을 요구했고, 초 인류대학의 홍보를 위한 뭔가 해주기를 여러 방면으로 압박을 했다. 한창 때는 1년에 연구논문을 50편을 넘게 썼는데, 이직하고는 10여편 정도 밖에 쓰지 못했다.

운동을 열심히 하던 모습도 사라지고, 술 담배를 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하게 됐다. 사람과 활달하게 지냈는데, 사람을 회피하게 됐고, 기억력이 안 좋아지기도 했다. 병원에 가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기본적인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 연구성과는 나오기 어려운 것이었다. 세계적으로 다른 나라에서 본인의 연구 분야를 앞질러 가는 모습이 눈에 보이지만 본교에서는 어떤 실험도 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을 감내하지 못했던 것이다.

과학자가 꿈이었던 나는 이 일에 대해서 무척 분노하고, 이직한 학교에 대한 원망도 많이 했다. 네이쳐, 사이언스에 그렇게 훌륭한 논문을 내시던 분을, 세계적인 과학자를 허망하게 잃다니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을 가르치셨는지 인터넷 강의 올려 둔 것을 보기도 하고, 출판을 준비하던 책자도 읽어보면서 교수님이 하는 학문에 대해서도 조금 느껴봤다.

정신과 의사선생님은 남들은 못 알아보게 일부러 못쓰는 글씨로 쓴다고 하셨는데, 그것을 일일이 타이핑을 해주셨다. 직업환경의학과 선생님은 ‘절망해 있다가 다시 힘을 내서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 순간에 그것을 할 수 없을 때’, 그 때이셨던 것 같다며, 업무관련성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다. 사학연금 담당자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살’을 산재로 인정한 적이 없다고 이야기를 하며, 본인은 산재라고 생각하는데, 심의회의에서 잘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했다. 안타깝게 사학연금에서는 산재로 인정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민사소송(사학연금 대상으로 하는 소송이기에 행정소송이 아니라 민사소송)에서 사학연금에서는 크게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고 무난히 승소하여 업무상 재해로 인정됐다.

‘노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노동 조건’인 ‘약속’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실험’의 결과를 갖고 ‘논문’을 써야하는데, ‘실험을 할 수 없는 조건’에서 논문만을 쓰라고 하니 어찌 답답하지 않았겠나. ‘노동’은 ‘노동자’들의 ‘삶’, ‘목표’인 경우도 있다. 특히 왕성한 연구활동 중에서 성과를 내야할 시점에 하지 못한 그 억울함은 어떻게 말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살’의 경우, ‘해고’ 때문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제 경험으로는 ‘이직’이나 ‘인사이동’ 때문에 발생한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따라서 보통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에 비해서 ‘부당인사발령’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직장내 괴롭힘’의 문제 등이 야기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