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인권, 소녀상이 지닌 의미를 고민하는 과정이 중요

광복 72주년, 전국에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 열풍이 한창이다. 2011년 12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천 번째 수요집회 때 처음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 대사관 앞에 세워진 이후 전국에 90여 개에 이르는 소녀상이 세워졌다.

평화의 소녀상 건립은 평화와 인권을 상징하는 조형물로서의 의미와 함께 역사의 아픔을 잊지 않고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에 평화와 인권을 뿌리내리겠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그 선언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고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마련되어야 의미가 더해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은평에서 첫걸음을 내딛은 평화의 소녀상 건립 움직임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마치 납품 기일을 맞춰야 하는 일처럼 급하게 추진되는 평화의 소녀상 건립은 본말이 전도된 모양새다. 우리 사회의 인권문제, 젠더문제, 성폭력문제 등이 충분히 논의되는 과정이 생략된 채 진행되는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과연 진정한 위안부 문제 해결에 다가서는 길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지역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만들어지고 있으니 우리도 하루 빨리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해야 하겠다는 조급한 경쟁심리가 아니라면 결코 서두를 일이 아니다.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세워지는 평화의 소녀상은 단순한 동상 그 이상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나서는 이들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시간과 품을 내어 이 일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리라. 다만 ‘여성과 인권문제 논의 없이 위안부 문제 해결은 어렵다’는 충고를 따갑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위안부 문제를 연구해 온 은평주민 박정애 씨는 “강제 동원된 징병피해자임을 밝히는 이들은 몇 백 만 명인데 위안부피해자로 나서는 이들은 왜 239명뿐인지 고민을 해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혐오문제와 위안부문제를 떼어 놓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우리사회의 평화와 인권문제, 성폭력문제 등을 충분히 논의하고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평화의 소녀상 건립의 목적은 두말할 것 없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이다. 위안부 문제해결은 피해자들이 당한 고통을 다시 끌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히 의견을 모아야 하는 이유는 평화와 인권을 향한 논의들이 단절되지 않은 채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서기 위해서다. 평화의 소녀상 건립, 결코 서두를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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