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산원까지 다니며 유난을 떨며 낳은 첫 아이를 혼자 키울 자신이 없어 시댁에 맡기고 주말에만 깜짝 엄마 노릇을 하다가 두 살 터울인 둘째를 낳아 맡기면서 서울로 데려온 첫째 아이.‘소리나는어린이집’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엄마정도 못 붙인데다 아토피가 있어 세심한 돌봄이 필요한 세 살 아이를 종일 맡길 곳이 필요했기에 믿을 만한 먹거리와 넓은 마당에 반해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봤더란다. 산으로 놀이터로 꼬질꼬질 다니며 즐거워하는 아이 사진은 육아에 서툰 직장맘의 죄책감을 덜어주었다.

선배조합원들의 삶을 보고 배우며 주변에서 하는대로 수월하게 아이를 키웠지만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퇴근 후 보채는 아이를 등에 업고 땀을 뻘뻘 흘리며 터전을 쓸고 닦았던 그 해, 할 일은 끝도 없고 보이지 않는 갈등을 깊어지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치열하게 논쟁하는 이들 속에서 숨죽여 눈치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던 그 때 ‘나는 왜 이렇게까지, 저들은 왜 저렇게까지…’하며 회의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기나긴 대장정 끝에 남매를 시원섭섭하게 졸업시키면서 비로소 ‘졸업’ 그 자체가 부러움의 대상인 소리나는 ‘졸업조합원’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여전히 주말에 바쁘고 주중에도 마실을 하는 이웃이 있으며 공동체 의식을 운운하는 여러 모임에 소속되어 있다. 그리고 여전히 그러한 삶이 좋고 행복하다.

‘딩동’하더니 옆집 아기 엄마가 방금 만든 반찬을 준다. 우리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동네 꼬마녀석들이 있다. 갑자기 회식이 생겼다며 일찍 퇴근 못한다는 연락이 오면 쿨하게 남편에게 ‘너 잘났다’하며 카톡방에 문을 두드린다. 어떤 때는 서로 봐 주겠다고 해서 남매가 각각 다른 집에 맡겨지기도 한다. 조조영화나 심야영화를 같이 볼 동네 아줌마를 리스트에서 물색한다. 때론 계획에만 그치는 즐거운 모의작당도 한다. ‘우리 아이들 데리고 휴식기 때 어디 여행갈까? 아니 엄마들만 가는 게 어때?’ 

오늘은 또 무얼 먹나? 하며 퇴근 준비를 하는데 아이들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오늘 누구집에서 놀면 안 되냐고. 저녁밥 먹기 전에 돌아오라고 약속은 하지만 속으론 ‘우리사이에 밥 먹여 보내면 나도 나중에 한 번 갚지 뭐’하며 씩 웃는다. 

아이들은 당당하게 묻는다. 누구 집에 모여 어른도 놀고 아이도 노는 파티는 언제 하냐고, 계절이 바뀌니 작아진 옷을 주겠다는 선배님의 고마운 연락도 온다. 그 뿐이랴. 아이학교에서도 직장맘이라고 절대 기죽지 않는다. 전업맘들의 삶에 스스로 관심 없는 척하고 산다. 아쉬우면 하소연 할 이웃들이 있기에, 우리가족을 이다지도 들썩거리게 하는 소리나는 이웃들이 있기에.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동네에 마음 터놓고 지내는 이웃이 있냐고? 그럼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대답한다. 아랫집 윗집 이웃은 아니어도 온 동네 아니 동네 밖에도 있다고. 어린이집 다닐 때는 몰랐다. 졸업 이후의 삶은 오래 공들인 덕에 얻는 소소하지만 소중하고 감사한 일상이라는 것을.

혹시 알았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 운영 이사할 때 발휘된 적극성 뒤에 숨어 있던 소심함으로 생각만 하고 먼저 연락 못하며 지내는 선후배 조합원들, 마냥 낯설게만 느껴지는 새터전의 새식구들 혹은 너무 가까워서 살뜰하게 헤아리지 못하는 이웃들에게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후훗 자연스럽게 결론이 지어진다. 먼 훗날의 미래를 위해 현재 삶에서 애쓰고 있는 소중한 것들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 올해가 가기 전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파티를 한 번 열어야겠다. 단, 음식은 각자 들고 오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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