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의 실상, 무엇이 문제인가?

수능시험과 무관한 교과목 시간에는 전체가 대놓고 잔다. 
사회와 과학 과목 가운데 자신이 수능에 응시하지 않는 교과목 시간과 
철학, 한문, 음악, 미술, 체육, 기술·가정 등의 시간이 대부분 그랬다

과거 근무했던 양정고와 진명여고는 모두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였다. 당시엔 학급당 학생 수가 35명 내외였다. 고3 담임 시절을 회고해 본다. 통상 정규 수업이 오후 4시에 종료된다. 마지막 수업 7교시가 진행될 때, 고3 담임들은 학급 분위기나 수업태도를 파악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의도가 있을 때면 수업 종료 시간을 5분 남짓 남기고 조금 일찍 교무실을 나선다. 담임 교실에 미리 가서 창 너머로 아이들의 수업 태도나 분위기를 잠시라도 보고 싶어서였다. 그래야 잔소리도 할 수 있고 한 명 한 명 공부하는 자세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정말이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항상, 언제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비참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다행히 마지막 수업시간이 국어, 영어, 수학 등 흔히 주요 교과라고 일컫는 수업시간이면 35명 가운데 3~4명은 수업을 듣는다. 나머지 30명이 넘는 인원은 대놓고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잔다. 

그런데 수능시험과 무관한 교과목 시간에는 전체가 대놓고 잔다. 사회와 과학 과목 가운데 자신이 수능에 응시하지 않는 교과목 시간과 철학, 한문, 음악, 미술, 체육, 기술·가정 등의 시간이 대부분 그랬다. 이 수업시간은 어김없이 학급 전체가 엎드린 채 대놓고 편안하게 잠을 잔다.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35명 가운데 모두 엎드려 잠을 자고 있는데, 단 3명 정도만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래서 교실 창가에 다가가서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는 묵묵히 칠판에 판서를 하시며 수업을 하고 계셨다. 그 세 명의 아이들은 해당 교과 수업과 상관없이 제 각기 수학과 영어 문제집만 열심히 풀어대고 있었다. 교사와 학생은 그 어떤 소통도 매개도 없다. 그저 같은 공간에서 제 각기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이 모습이 현재 우리가 전국적으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공교육의 맨얼굴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이런 모습이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만 국한된 모습이라고 단정 짓고 치부할 수 있을까? 이는 전국적인 현상이고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장면이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정말 심각한 사안이다. 

내가 지금까지 15년간 경험하며 근무했던 학교 유형은 다양했다. 이미 오래 전에 평준화된 서울특별시의 일반인문계고등학교에 속한 여학교와 남학교. 그리고 자립형사립고였다가 학교 유형을 단순화하겠다며 자사고의 틀로 옮겨온 남·여 공학 학교 등. 모든 유형의 학교에서 근무를 했다. 중학교 때 전교 최상위권의 학생들이 입학하는 유형의 학교를 제외하면 전국의 인문계고등학교에서 보편적으로 펼쳐지는 일상이다. 

공교육의 문제는 이와 같은 교실 공간의 붕괴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고민 그리고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이 없다면 공교육 문제는 결코 쉽게 해결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 이는 틀림없는 정답이자 진리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공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까? 그리고 바람직한 교육은 어떻게 가능해질 수 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15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15년 현장교육경험.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했던 현장의 문제점들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아울러 함께 고민하며 교육혁신의 방법을 찾고자 한다. 이 글은 그러한 취지에서 작성한 글이다.      

나는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대학원에서는 고전문학, 정확하게는 한문학을 전공해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생계를 위해 대학의 시간강사로 여기 저기 출강했다. 동시에 동양고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전통문화연구회의 상임연구위원으로 근무했다. 동양고전국역 관련 업무를 병행하며 대학에도 출강했다. 그러다가 몇 년 후 서울시 양천구 목동에 자리 잡고 있는 진명여자고등학교에 기간제교사로 중등교육에 첫발을 디뎠다. 기간제교사라는 제도가 도입된 초기였던 지라 당시엔 정확하게 그것이 어떤 제도인지조차 몰랐다. 

애당초 나는 기간제교사가 아니라 시간강사로 근무할 생각이었다. 이유는 당시 일주일에 이틀 정도 대학에 출강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알아보니 기간제 교사는 출퇴근 시간을 정교사와 마찬가지로 08시 출근 16시 퇴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강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수업만 하면 행정업무가 부여되지 않기 때문에 바로 퇴근할 수 있다는 말에 대학출강 문제도 있고 해서 시간 강사 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교사'가 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그 시절 지하철 2호선 영등포구청역 근처에 살던 나로서는, 집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학교를 찾겠다고 지하철 노선도를 펼쳤다. 많은 생각을 했다. 근데 도무지 어떤 학교에서 교사가 필요한지 알 수가 없었다. 교직에 먼저 진출했던 몇몇 동기들과 지인들에게 물었다. 교사가 되려면 정보를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그랬더니 교육청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를 알아보라는 조언을 주었다. 

그렇게 교사 초빙 공고를 냈던 학교들 가운데 지하철로 가까운 곳에 있는 학교에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2호선과 5호선이 만나는 영등포구청역에서 양평역→오목교역→목동역. 이렇게 세 정거장 거리에 있는 학교를 찾았다. 거리 상, 딱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그 학교가 바로 진명여자고등학교였다.

 사실은 그때까지만 해도 학교 교사가 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가 없었다. 그랬기에 너무나도 쉽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찌 보면 그렇게 별생각 없이 쉽게 도전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한다. 주저하거나 이것저것 생각만 했다면 과연 소중한 기회와 인연이 허락되었을까? 아마도 어려웠지 않았을까 싶다. 

진명여고는 1906년에 개교하여 1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학교였다. 물론 양천구 목동이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기 이전 진명여고는 청와대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당시에 대학 시간강사로 강의를 병행하고 있었기에 진명여고 국어과 강사로 근무하고 싶다는 의사 표시했다. 지원 서류를 제출했다. 며칠 후 서류전형은 합격했으니 면접전형에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면접 당일 내 차례가 되었다. 면접을 진행하시던 관리자께서는 왜 기간제 교사를 희망하지 않고 시간강사를 희망하느냐고 물었다. 전후 상황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대학의 시간강사만으론 생계가 어렵다. 그래서 조금 더 경제적인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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