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현 노무사의 노동상담 이야기 2]

최승현 노무사

따르릉 전화가 울렸다. 당장 급하다고 한다. 여러 가지 할 일들을 제쳐두고 달려갔다. 중국인들 10여명이 건설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바로 내일 출국이란다. 나는 바로 시계를 봤다. 오후2시,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임금체불은 노동부에서 관장하는 업무이다. 사업장 소재지의 관할 노동지청이 관할이 되고, 주소지별로 담당근로감독관이 있으며 임금체불 사건을 접수하면 근로감독관이 배정된다. 처리기한은 25일. 하지만 1, 2차례 연장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보통 2, 3달이 걸린다. 노동부에 진정이나 고소를 하면 진정인(또는 고소인) 노동자와 피진정인(또는 피고소인) 사용자를 노동부에 출석하라고 하여 근로감독관이 임금체불에 대하여 사실 확인을 한다. 

한 명 한 명 상담을 했다.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내가 통역을 통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더 힘들었다. 한 쪽에서는 위임장과 위임약정서를 써달라고 했고, 다른 쪽에서는 신분증을 복사해달라고 했고, 나는 상담과 동시에 진정서를 작성해 나갔다. 1인당 약 500-1000만 원 가량, 1, 2달의 임금과 퇴직금이었다. 수 년 동안 땀 흘려 일한 것을 받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대략의 서류가 완성된 이후 10여명의 중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부 서부지청으로 달려갔다. 5시 40분인가 50분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다행히 노동부 사업장 소재지 담당근로감독관이 있었고 현장에서 바로 접수 후 근로감독관에게 사정이야기를 했다. 문제는 바로 ‘출석일자’였다. 노동자 주장과 사용자의 이야기가 동일하면 3자 대면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만약에 다르다면 근로감독관은 난처해질 수밖에 없고,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근로감독관에게 ‘내일 오후에 출국이니 내일 오전에 출석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담당근로감독관은 전체를 총괄하는 근로감독관 등과 상의를 한 이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한 번 얘기해보겠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처음에 우르르 근로감독관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부담스럽다고 하니 밖에서 서성거리다가 어느새 복도에 앉아서 기다린다.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불안한 마음 가득, 수 년 동안의 노동 중 일부를 잃을 수 있다는 안타까운 마음도 많았을 것이다. 

회사는 다행히 오전에 시간이 된다고 하고 내가 9시에 회사에 가서 임금체불액을 맞춰보고 10시에 출석하기로 했다. 9시에 회사에 가니 ‘퇴직금은 14일 이내에 지급하면 되는 것이고, 건설현장에서 임금은 일한 다음 달이 되어야 지급하는 것이기에 임금체불이 아닌데 진정을 제기하냐’ 며 화를 냈다. 나는 내일 출국하는 노동자들이 임금을 지급받지 못할까봐 불안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이해를 구했고, 받을 금액만을 확인하자고 하여 확인해 보니, 대부분은 동일했다. 

10시 조금 넘어 노동부에 함께 도착하니 노동자들이 역시 복도에 앉아서 상황이 잘 됐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다행히 임금과 관련한 부분이 확인이 됐다. 하지만 문제는 회사가 당일 지급할 여력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노동부가 받을 임금을 확인해주고, 회사가 보통 임금지급일에 지급을 할 것을 약속했다. 우리는 중국인들의 계좌를 받았고, 만약에 회사가 지급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변호사 위임장도 작성을 했고, 회사가 지급하면 작성할 노동부 진정취하서도 작성해 두었다. 지급기일 날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다행히도 회사는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했다. 

이틀 동안 집약적으로 이뤄진 이 사건은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가 진정을 제기하지 않았으면 회사는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했을까? 퇴직이후 14일 이내에 지급해야 한다는 퇴직금 지급규정은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맞는 것일까? 그래도 이 사건은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노동자들, 근로감독관, 회사, 그리고 나까지 딱 맞아 떨어져서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게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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