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괜시리 발로 자그마한 돌멩이를 차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 

꼭 차고 싶으면 먼저 돌이 날아갈 방향을 잘 살펴야 한다. 그 쪽에 사람은  없는지, 동물은 다니고 있지 않은지, 가냘픈 꽃이라도 피어있지 않은지, 돌 맞고 깨질 그릇이나 물건들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잘못하면 죽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고 맞아서 화난 동물에게 물리기도 하고 아름다운 꽃이 문드러지기도 하면 마음이 아프지 않은가? 

지나가는 자동차 창문을 뚫고 들어가 운전자나 함께 탄 이가 다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는 운전자를 다치게 해서 다른 차와 사람들도 다치는 수가 있다. 상품들을 진열해 놓은 가게의 유리를 뚫고 들어가 값비싼 물건들을 못 쓰게 할 수도 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기도 하니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무심코 던지는 것이 아니다. 던지는 사람의 의지가 발동하고 근육을 써야만 돌이 던져지는 것이다. 그러니 무심코 던진 돌에 맞는 것이 아니라 마음먹고 던진 돌이 어디로 갈지 모르고 그 돌이 날아가 떨어지는 곳에 어떤 존재가 있는지 모를 따름이다. 

나의 의지는 작용했으나 무엇이 있는지, 어디로 갈지를 몰랐을 따름이다. 정확하게 던진 이의 잘못이다. 돌에 맞으면 아프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그 돌이 나에게 날아 올 수도 있다.

물리적인 힘이 있는 돌이나 물건은 그 힘의 피해가 어쩌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물리적인 힘은 없으나 심리적인 영향이 있고 법률적인 힘이 있는 말이나 글은 어쩌면 돌보다도 더 큰 힘으로 사람들을 크게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잘 쓰면 크게 도울 수도 있는 것이 말,글이다.

말,글이 사람들을 이롭게 도우려면 그들을 생각하는 마음,짝마음(配慮)을 베풀어야 한다. 세상에는 여러 짝이 어울릴 수도 있고 부딪힐 수도 있다. 부딪치고 어울리면서 부대껴가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사는 지구촌 공동체이다. 민족,국가,사회,종교,문화 공동체이다. 살색이라는 표현도 쓰지 않는 공동체 안에 이미 들어와 있다.

한 마디 말을 하면서,한 두줄의 글을 쓰면서도 나와 다른 민족의 한 사람,나와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나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성별을 가진 사람들을 생각하고 배려해야 한다. 성격이 다르고,나이와 크기가 다르고 사랑하는 스타일이 다른 사람을 이상하게 보거나 틀렸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한 때 우리는 서구인들을 보면서 귀신같이 파란 눈을 가졌다고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봤을까? 얼굴을 이루는 가죽이 모자라서 칼집을 내놓은 것 같이 옆으로 찢어진 눈이라고 생각했다 한다. 깜짝 놀랄 일 아닌가? 아니다. 그저 이렇게 다른 것이다.

앞에 나선 이들이 특히 더 잘해야 하겠지만 이 시대는 누구나 앞에 설 기회가 많아진 집단 지성,집단 통치의 시대이다. 개인 각자가 최고의 결정 자리에 있는 만큼 각자 각자가 서로 다른 각자를 배려해야 한다. 내가 내 눈에,혀에,귀에,발가락에 신경을 쓰고 배려하는 것은 굳이 배려한다고 하지 않고 그저 그러해야 하는 의무이자 권리라고 생각하지 않은가?

서로 다른 남들을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사돈,팔촌 같은 친척이며 더 가까이 가서 보면 가족이다. 아니 바로 나이다. 그들에게 힘들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은 스스로를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사랑하고 아끼는 이가 주인이지 마음대로 하는 이가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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