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마다 정치인들의 선거준비가 한창이다. 초선 단체장 은 재선준비에 바쁘고, 재선 단체장들은 다음 자리를 찾아 떠날 차비를 하고 있다. 그 빈 자리를 둘러싼 경쟁도 치열하다. 필자가 살고 있는 충남 아산시의 경우, 현 시장은 도지사 선거에 나선다하고, 다음 시장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필자가 잘 알고 지내던 한 시민운동가도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한다고 한다. 유능하고 성실한 인물이라 시장에 당선된다면 정말 잘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가 당선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시장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격과 능력을 잘 갖추었지만, 딱 한 가지가 부족하다. 그런데 부족한 그 한 가지가 아주 치명적이다. 그의 고향이 충남 아산이 아니라 부산이라는 점이다. 근 30년 동안 아산지역에 살면서 시민운동가로서 지역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일해 왔고, 아산에서 가정을 꾸렸지만, 대다수 아산 유권자들은 그를 지역사람이 아니라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아산의 유권자만 그런 것은 아니다. 현재 지방 유권자들이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지역연고는 주소지가 아니라 출신지이다. 외지 유입인구가 많은 서울과 일부 수도권 지역에서는 정치인의 출신지를 굳이 따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방에서는 일단 그 지역 사람이어야 하고, 그 기준은 거주지가 아니라 출신지이다. 그래서 지방에서는 타 지역 출신자가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 장으로 선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릴적 지역을 떠나 수도권에 정착한 사람들, 소위 서울가서 출세한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와 정치대표자로 선택받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 지방정치 문화이다. 

소위 지역감정에 기반한 3김 정치시대가 마감했지만, 지역 간 균형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영남출신 대통령은 호남출신 총리를 인선했다. 장관인선에도 지역배려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역의 기준은 주소지가 아닌 출신지였다. 그러다보니 국회의원과 정부 고위관리 대다수가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거주지보다는 출신지를 중시하는 정치문화는 언론에 의해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장차관인선을 보도한 언론은 지역균형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그 기준으로 장차관들의 출신지역을 기준삼았다. 그 사람들이 현재 어디 살고 있는지는 청와대나 언론에게나 모두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지방 거주자 중 장관으로 발탁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따지는 언론은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언론보도를 비판하는 사람도 없었다.

자기의 현재 거주지 보다 자기의 고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추석연휴에 고향을 찾는 사람들보다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 아닌가? 그럼에도 현재 여기 살고 있는 사람보다는, 여기 살지 않아도 여기가 고향인 사람이 보다 더 지역에 많은 이익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방유권자들은 판단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사회의 정치엘리트들의 출신지역은 전국적으로 분포되었다 하더라도, 거주지역 면에서는 거의 모두 서울과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그들에게 지방은 정치를 위해서 잠깐 들리는 장소일 뿐이다. 시장에서 배추 한 포기 사본 적 없는 사람들이 선거 때가 되면 시장에 가서 상인들과 악수하며 서민을 대변한다는 인상을 주는 꼴이다. 그들의 가족들은 대부분 서울 강남권 고가아파트에 살고, 자녀들은 8학군이나 외고에 다닌다. 그들에게 지방은 외국이나 다름없는 이방이다.

진정한 지방분권시대가 되려면 출신지역 보다는 거주지역이 지역균형 안배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호남 출신 장관이나 영남 출신 차관이 아니라, 광주에 사는 장관과 대구에 사는 차관이 나와야 한다. 중앙 정치가 출신지 폐습을 버리면 자연 지역 유권자 사이에서도 그러한 의식이 사라질 것이고, 호남출신 강원도지사, 영남출신 충청도지사가 나오는 시대가 될 것이다. 그러면 부산출신 아산시장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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