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자살 기사가 며칠 동안 메인뉴스 중 하나였다. 기사에 의하면 그이는 “수차례 성폭력을 당해왔고 가해자 중 대다수는 ‘너만 조용하면 아무도 모른다’라는 말을 했다. 오늘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글을 남겼다고 한다. 

이 기사가 자꾸 눈에 들어와 알아보니 아는 이였다. 그이는 다른 사건의 피해생존자였다. 그 때는 당당히 자신의 요구를 학교에 전달하고 대처해나갔다. 하지만 다른 여러 사건들이 그이의 삶에 고통으로 겹겹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기사의 주인공인 내가 아는 이라는 걸 확인한 이후 일정은 성폭력 등 포괄적 폭력예방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교육을 진행하면서 

“내가 누군가(그 사람이 학생이건 비학생이건, 아동청소년이건 성인이건)를 도와주고 싶을 때는 상대방이 2차 고통을 겪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야. 사소한 일이니 잊어버려”
“그것은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거야”
“그렇게 기억이 오락가락 하면 믿을 수 있겠니?”
“돈을 요구하네. 피해자가 맞긴 한 거니?”

이런 식의 이야기는 피해자가 걱정 되어 하는 말이겠지만 피해자에게 2차 고통을 줄 수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14년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최초의 피해보다 친구나 가족, 상담이나 의료기관, 수사기관 등에 의한 2차 피해가 더 큰 고통과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최근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은 2007년 그의 책 ‘남자마음설명서’에서 여성을 성적인 유형으로 나누고 여성성을 왜곡하는 다수의 내용을 담는 등 '여성비하'를 했다는 이유로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이외에도 공저로 출간한 또 다른 책에서는 여중생과 관련된 성적내용을 담은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 시절 여중생에 미안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땐 그랬다’라고 말해서 논란은 더 심화되었다. 그 때 그랬다는 것으로만 끝난다는 것이 중요한 문제지점이다. 그 개인적인 경험이 어떻게 정치적인 것인지 자기성찰 과정이 필요하다. 

대전의 한 중학교에서는 남학생 10여 명이 여교사의 수업 중 집단으로 부적절한 성적 행위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교육청은 부적절한 행동이 있었다면서도 고의로 한 행동이 아니고 장난삼아 한 행동이라는 어이없는 결론을 발표했다. 

탁씨의 30여년전 현실과 지금이 다르지 않기에 피해여대생이 사망에 이르렀다. 피해생존자들이 가해 유발자로 취급되기도 한다. 성별격차지수에서 세계144개국 중 한국이 여전히 115위로 후진국에 머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아동청소년이나 특이한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존중하고 배려하면서도 누군가에게는 무례하게 신경 막 대해도 되고, 불편하면 참거나 떠나라는 식이다. 

이런 일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인가? 가해자들은 관습이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자신의 가해행위 이유를 만든다. 가해행위는 본능 때문이 아니라, 그 욕망을 누군가에게는 조절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사회관습과 구조가 제도와 상식이 성인남성을 기준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다고 한다. 존엄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존엄1급, 존엄2급… 존엄10급이 있는 보이지 않는 신분제를 계속 지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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