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댄스로 행복과 사랑 전하는 이주연 협회장

이주연(47)은 이집트국립무용협회장은 벨리댄스계의 대가다. 벨리댄스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이집트에 홀로 찾아가 5년간 벨리댄스를 배워왔다. 이집트에서 그는 벨리댄스의 모태가 되는 아랍의 리듬부터 이집트 민속춤까지 전수받았다. 어쩌면 벨리댄스 교수보다는 벨리댄스 '덕후(1970년대 일본에서 등장한 신조어로 어떤 분야에 마니아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진자를 의미)'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이집트에서 돌아와 은평구에 정착한 그는 이집트국립무용협회를 만들어 생활댄스, 후진양성, 기획공연 등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벨리댄스의 대중화를 위해 방송출연 뿐만 아니라 작은 행사자리에 까지 찾아가 벨리댄스 알리기에 기여하고 있다. 

그의 인생은 무용을 중단하고 모델, 일본어 강사, 카페, 무용과 교수 등을 해왔을 만큼 파란만장했다. 그럼에도 그가 춤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춤을 사랑하고, 춤 출 때만큼은 행복과 자유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파란만장한 젊은 시절

춤이 그리워 놓칠 수 없었던 행복

 

 

이주연 협회장은 어릴 적부터 무용을 배우지 않았다. 대학 진학 때문에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무용을 접했다. 그러다보니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무용을 배운 또래들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또래들이 가장 많이 배웠던 발레는 어릴 적부터 하지 않으면 유연성을 갖추기 어려워 더욱 접할 수 없었다. 그래도 키가 크고 팔과 다리가 길었던 탓인지 빠르게 무용가로 성장해 부산여자대학교 한국무용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대학에 입학한 그는 한국무용에 대한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이주연 협회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무용으로 진로를 택하지 않았어요. 한국무용은 한국인의 한(恨)이 필요한데 전 그보다는 성격이 밝고 현대적인 춤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었죠.”

대학을 졸업한 뒤 그의 인생은 역동적이었다. 5년 넘게 배워온 무용을 중단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일본어의 토익이라 불리는 JPT시험에서 1급을 따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회사원들을 상대로 일본어 회화를 가르쳤다. 20대 후반엔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더운 여름 한증막에 팥빙수를 배달하기도 했다.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했다.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 이주연 협회장은 무용을 다시하고 싶어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무용과 관련되지 않은 일을 하며 돈을 벌었지만 행복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 동기들은 극단의 안무가가 되어있고, 학원 원장이 되어있었죠. 그런 모습들과 함께 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던거에요. 다양한 일을 하며 돈을 벌었지만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요.”

벨리댄스를 제대로 배우고 싶은 고집

파란만장한 20대를 보낸 이주연 협회장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한국무용을 전공했지만 새로운 춤을 배우고 싶었다. 그랬던 그가 처음 접했던 춤은 살사 댄스였다. 살사 동호회에 가입해 춤 인생을 다시 시작했지만 여성은 남성의 리드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던 살사에 대해 거부감을 품었다.

"살사에서 여성은 남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 살사에서 여성은 남성의 리드에 의해서만 움직여야만하죠. 남녀가 동등하지가 못해요. 어릴적 개방적인 가정에서 자라온 저와 맞지 않았어요. 그런 와중에 알게 된 게 바로 벨리댄스였어요."

벨리댄스는 의상이 과감하고 복부를 이용한 춤이다 보니 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춤으로 잘못 알려진 경우가 많다. 벨리댄스의 기원은 고대의 다산의식에서 시작된다. 고대시대 당시 다산은 자식을 많이 낳는 의미보다는 사냥·농사·출산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했다. 특히 작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좋은 기후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벨리댄스는 이 같은 다산을 기원하며 땅의 여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데서부터 시작된 춤이다. 그렇기 때문에 벨리댄스는 남성보다는 여성이 많이 추는 춤이었고, 남녀가 같이 추는 춤이 아닌 독립적인 춤이기도 하다.

이런 벨리댄스를 제대로 배우겠다는 생각만 갖고 이주연 협회장은 이집트를 찾아갔다. 그는 “한국에서만 배웠기 때문에 춤에 한계가 있었고, 벨리댄스에 대한 지식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본고장인 이집트로 떠났고 그곳에서 민속무용 연구가이자 이집트국립무용단 창시자인 마흐무드 레다 선생에게 5년간 벨리댄스 전수를 받았다.”

“북한산이 아름다운 은평에 

평생 살며 벨리댄스를 하고 싶다”

 

 

5년간 이집트에서 벨리댄스를 전수받은 이주연 협회장은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이집트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5년간 이어진 향수는 그를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오게 만들었다.

 

이집트로 가기 전 10년간 서울 강남과 신촌에서 학원을 차렸던 그였지만 친구의 권유로 은평구에 처음 방문했다가 북한산에 반하게 돼 이사 오게 됐다. "처음 은평에 발을 디뎠던 곳은 불광역 9번 출구였어요. 지금 학원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기도 한데요. 출구에서 나와서 바로 보였던 북한산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은평이 평생 머물러 벨리댄스를 할 곳 이라고 생각했어요“

은평구에 정착한 뒤 그는 활발한 활동을 했다. 학원뿐만 아니라 은평누리축제추진위원, 은평구자치부위원장, 은평체육회 위원을 역임하고 은평누리축제, 불광천 벚꽃축제, 은평은혜로운집, 서울시립은평노인복지관 등에서 재능기부공연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재미난장에서 작은 무대도 선보이며 지역주민과 가까워지는 시도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14년부터는 매년 기획공연을 열고 그 수익금을 전액 후원하는 나눔콘서트를 열고 있다. 그는 나눔콘서트를 통해 아프리카 난민에게 태양광 희망랜턴을 구입해 나눠주기도 했고, 우간다와 네팔 지진으로 피해입은 장애인 자립을 위한 기부도 했다. 올해는 우리나라와 몽골  어린이 심장병 환자를 돕기 위한 기부 콘서트를 열었다.

이주연 협회장은 “예술가로서 지역에 재능기부뿐만 아니라 아직 우리나라에는 정착되지 않은 기부 문화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싶었어요. 또 제가 불우한 이들을 도우면서 퍼지는 사랑이 점차 멀리 퍼져나갈 수 있을거라고 믿고 있어요. 기부 활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멀리 퍼져나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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