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함께 모여 일을 벌이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시절이었던 1995년 8월, 뜻을 같이하는 부모들과 함께 나는 대구에서 처음으로 공동육아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마포 성미산  공동육아어린이집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였다. 당시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말이 ‘함께 크는 아이’ ‘공동육아’ 같은 단어들이었다. 육아공동체를 직접 만들어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사실이 우리를 매료시켰다. 하지만 시련은 적지 않았다. 내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키운 5년의 세월은 협동조합 초창기의 온갖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거듭했던 시기였다. 

육아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직접 참여하면서 느낀 점은 공동체를 만들어 운영하는 일이 참 쉽지 않다는 깨달음이었다. 공동체를 만들고 가꾸는 일에는 여러 사람의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애써 가꾼 공동체가 어떤 문제에 대한 의견 차이와 다툼으로 쉽게 파괴되어 버릴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후 대구지역에는 공동육아협동조합 어린이집이 몇 곳이나 설립되었고, 모두 안정된 터전을 마련하여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건강하게 자라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초창기 내가 관여했던 어린이집은 방과 후 학교를 만든데 이어 사회적 기업, 마을공동체로 발전하였다. 나로서는 씨앗을 뿌리기는 했지만, 공동체로 성장하여 지역사회에 뿌리내리는 그 과정에 함께 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사람 냄새가 나는
따뜻한 공동체로 가꾸어 나가는 일을
신명나게 해나가고 싶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내 아이를 함께 키워갈 공동체사회를 건강하게 가꾸어나가는 일에는 턱없이 무관심하거나 소홀하다. 반대로 내 아이만 잘 키우면 된다는 욕심은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자녀교육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지나친 교육열로 나타나기 일쑤이다. 소득수준에 비해 과다한 사교육비 지출이 가정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기도 하며,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여 평생 살아온 삶에 오점이 되기도 한다.

지금과 같은 교육현실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사는지가 궁금한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넘어지고 깨지면서 스스로 깨달아 나가야 할 존재 이유와 자아정체성 확립은 어떻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이 허구한 날 교실에서 겪을 소외와 모멸감이 비뚤어진 반항심으로 이어지는 것을 어떤 방법으로 바로잡을 수 있을까. 감정조절이 잘 안 되는 아이들,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아이들, 이타적인 삶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아이들, 나만 잘 먹고 살면 세상 따위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로 가득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상상해보라.

어떤 직장이든 열심히 일하면 집이나 병원비, 교육비 걱정은 안 해도 되게 보장을 해주고,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된다면 어떨까. 그때도 죽자고 자식 교육에 목숨 거는 사람들이 많을까. 양극화 해소, 20대 80 사회의 변화, 이것이야말로 진정 우리가 온 힘을 기울여 바꾸어나가야 할 본질적인 문제가 아닐까.

아이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행히 은평에는 아이들을 품어주려고 만든 청소년공간들이 있고, 서울시 교육청과 함께하는 교육혁신지원단도 있어 대안교육을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에서도 활발한 청소년자료실 운영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학교연계 사업이 진행 중이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사람냄새가 나는 따뜻한 공동체로 가꾸어나가는 일을 신명나게 함께 해나가고 싶다.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험난하지만, 공동체를 향한 꿈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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