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늦은 오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검은 옷 챙겨입고 내려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냉이를 넣고 된장을 게워 끓여낸 국이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다.

할머니가 담그고 엄마에게 주어, 나의 서울방으로 이어진 맛이었다.

된장에선 늘 흙 내음이 올라왔다.

할머니가 머물 던 시골집 텃밭 냄새였을까.

된장도 얼마 안 남아있던데...

국물을 입에 떠 넣으며 이 흙 맛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할머니의 급격한 노화는 봄과 함께 시작되었다.

병세보다 노화의 진행이었기에 병원에서 치료받을 부분은 크지 않았다.

엄마는 할머니 댁에서 한달반을 함께 생활하였다.

시어머니 입원과 퇴원에 엄마의 노동이 이어졌다.

할머니의 자녀들은 여러번 드나들었지만,

소변을 보는 것, 옷을 갈아 입고 밥을 떠 넣는 구체적인 일에는 무력했다.

드나듬만으로 임종을 함께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앉아계신채로 돌아가셨다고 엄마는 말했다.

 

 

할머니 임종사진뒤로,

다섯남매와 각 슬하의 아들과 딸들이 검게늘어섰다.

한 여성의 자궁에서 이어진 검정 뿌리들은 깊고 넓게 느껴졌다.

그 뿌리 한 쪽에 내가 있었다.

뿌리들은 꾸벅 절을 하고 아욱국을 한술 떠넣었다.

장례식장에서 끓여 낸 된장국은 조금 달고 들떠있었다.

 

묘비에는 할머니의 마지막 하루 2017년 6월 10일이 새겨졌다.

생이 마감되는 구체적인 하루가 있다는 사실이 생경했다.

할머니가 마침표를 찍은 6월 10일 이후에도 나의 삶은 이어지고 있다.

된장 한 국자속에 이어지는 맑은 흙내음이

나에게로 이어지고 있었다.

끼니속에 혈연은 흐르고 있다.


<작가소개>


그림 5년차, 자취 10년차. 살림에 재능 있음을 더 확신하고 있는 요즘이라 주부작가를 꿈꾸고 있습니다. 올해 그려둔 작업을 묶어 그림집 <아직, 해가 저무는 시간>을 출간하였습니다. 일상과 사회를 보는 호흡을 이어 은평시민신문에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창작은 말을 거는 행위. 아직 순수를 간직한 사람들에게 그림과 글로 말을 건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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