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결핵과 허릿병으로 13년을 병상에서 지낸 아가씨가 있었다. 살가죽과 뼈가 서로 닿을 만큼 앙상해진 몸과 퀭하니 들어간 눈으로 살아가던 그미에게 눈을 준 한 청년이 청혼을 해왔다. 꿈에도 바라던 일이었지만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때 가질 수 없는 꿈 앞에 선 것이었다.

그래서 매몰차게 거절했다. 사랑을 줄 수도 없으며 짐만 될 뿐인데 값싼 동정심은 필요 없다고 절규하듯 뿌리치는데도 청년은 포기하지 않았다.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울음과 심각한 표정으로 정말 사랑한다고 지속적으로 고백해왔다. 할 수 없이 다른 소리 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마지못해서 살림을 차렸다. 

청년의 사랑은 지극했지만 생활능력은 보잘 것 없었다. 그미는 가게를 차려서 물건을 팔았는데 아주 잘 되었다. 그런데 그 옆에서 먼저 하고 있던 가게는 상대적으로 장사가 덜 되었다. 마음 착한 남편은 살아갈 만큼만 벌고 옆집 가게를 살펴주자는 제안을 하였다. 그미는 그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여 물건 숫자도 줄이고 필요한 만큼 팔고 나면 손님을 옆으로 보내주었다. 그러고 나니 시간이 남게 되고 남는 시간에 소설을 써서 신문 창간기념 원고모집에 응모해서 대상을 받아 가게에서 벌어들인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한꺼번에 벌게 되었다. 배려가 낳은 세속적 이익의 좋은 보기이다. 그미의 이름은 미우라아야꼬(三浦綾子), 소설은 빙점(氷點).

그미의 또 다른 소설인 눈고개(雪嶺)에는 배려보다 더 진한 인간애와 멸사봉공이 그려져 있다. 본래 기차역무원의 실화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고개를 오르던 기차가 눈길을 더 오르지 못하고 뒤로 미끄러져 내려가자 수많은 어른 승객들은 가슴만 졸이고 울거나 기도하는 사람들만 있었다. 그런데 나이 어린 소년이 기차를 빠져나가 기차바퀴 아래로 몸을 던졌다. 기차는 소년의 몸을 으깨며 멈췄다. 소년은 사람들을 살려냈지만 자신은 주검으로 변했다.

 

과정과 절차의 정의를 생략하면 반드시 
사회적 기회비용을
많이 지불해야 하고 
사고라는 리스크를 반드시 겪게 되어 있다.
그래서 살펴야
한다. 살펴서 바르게 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그 춥던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이 돌아왔다. 그야말로 갖가지 꽃들이 피어나고 벌 나비가 춤추며 꿀을 찾고 사이사이로 새도 벌레도 짐승들도 노라리하며 지내는 에덴이요, 극락이 아닌가 싶다 하는 사람들이 많다. 봄이 와야 날씨도 따뜻하고 비도 와서 씨앗들도 움을 틔우고 나비도 벌도 날아다니며 저 먹고 싶은 꿀을 빨아먹는다는 것이 다른 쪽으로는 새 희망을 불어넣는 가루받이(受粉)를 하는 것이다. 이른 바 소통이 가져오는 즐거움이요, 열매가 바로 이런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 내 이익에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이가 가장 처세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영국 격언처럼 살피면서 살았으면 하는 새김질을 스스로에게 먼저하고 권한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도 함께 새겼으면 하는 것은 바로 살펴서 배려하는 마음 곧 윤리의식이다. 고리타분하며 산업과 경제적 이익 더 나아가서 생명을 보호하는 일에도 크게 관련이 없거나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이 윤리라는 낡은 생각을 가지면 곤란하다. 우리가 이미 압축 성장 시대에 겪었듯이 과정과 절차의 정의 곧 윤리를 배제하면 아주 짧은 시간에는 이익이 발행할 수도 있지만 길게 보면 반드시 손해라는 것이 지각 있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사패산과 천성산 터널을 뚫으면서, 사대강 사업을 하면서, 금강산과 개성공단에서 철수하면서 우리가 잃은 것들을 미시적 관점이 아닌 거시적 관점에서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디자인 베이비, 빅데이터 등을 시행하기에 앞서 반드시 윤리적 고려를 해야 한다. 에너지원을 우선 쉽게 생각해서 원자력 등 화석원료를 중심으로 발전하려는 것은 길게 생각하면 돈도 많이 들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과정과 절차의 정의를 생략하면 반드시 사회적 기회비용을 많이 지불해야 하고 사고라는 리스크를 반드시 겪게 되어 있다. 그래서 살펴야 한다. 살펴서 바르게 보아야 한다. 조금 더 살펴야 할 것은 21세기 3만불 시대의 우리 국민들이 아직도 지난 세기의 의사표현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집회에서 보았듯이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운 가운데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관련 기관에서는 들어야 할 말은 들어서 반영하는 새김질문화를 반드시 세웠으면 한다. 크기가 작을 때 살피면 커서 살피는 것보다 훨씬 적은 힘, 적은 돈으로도 더 큰 효과와 열매를 거둘 수 있으며 위험하지 않고 안전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먹거리, 생태, 국방, 통일, 교육 모든 분야가 다 그렇다. 그 과정에 구시대적인 비 윤리를 행하는 사람이나 집단은 적은 규모의 벌금이나 제제를 통해 넘어가기보다는 재기하기 어렵게 해서 바로잡도록 국민적 합의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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