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 민낯 3] 지역 언론 수호를 다짐하는 <은평시민신문> 편집장 편지

▲은평구의회가 항의 공문과 함께 19명 구의원 전 의원이 사인해 보내온 서명부. ⓒ 조호진

오월입니다. 광주 망월 묘역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습니다. 산자여 따르라~,  제37주년 5·18 기념식장 유족들과 참석자들뿐 아니라 수많은 국민들이 눈물 흘리며 목 놓아 불렀습니다. 빼앗겼던 노래를 국민의 힘으로 되찾았기 때문에 감격의 눈물은 더욱 뜨거웠습니다. 

'이명박근혜'로 불리는 적폐 정권은 노래조차 부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자신들을 반대하는 언론인들은 쫓아내고, 예술인들은 블랙리스트로 옭죄고, 국민의 반대에도 4대강사업을 강행하면서 수 십 조원의 예산을 낭비하며 강산을 망쳤고, 국정농단으로 국가와 국민을 파탄으로 빠트렸습니다.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적폐청산을 외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명박근혜 권력의 폭정을 외면했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됐을까요. 국민들은 절망하고, 정의와 양심은 더욱 힘을 잃었을 것이고, 오월의 노래는 부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월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문재인 정부를 들어서면서 나라가 나라답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희망이 생겼습니다. 이제 할 일은 지역을 바꾸는 일입니다. 지역이 바뀌지 않으면 절반의 개혁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은평구의회 구의원 19명 전원이 사인한 서명부와 항의 공문

▲은평구의회가 <은평시민신문>에 보내온 항의 공문. 하지만 은평구의회는 펙트 체크조차 하지 못하고 엉뚱한 내용으로 항의했다.ⓒ 조호진

'은평구의회'(의장 성흠제)가 <은평시민신문>(발행인 이지상)에 '제142호 기사에 대한 유감의 글'이란 제목의 항의 공문을 보냈습니다. 은평구의회는 관련 보도를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짜깁기한 공문을 통해 "귀사의 보도형태에 우리 의회와 의원 개개인은 공식적인 유감을 표하고 귀사의 재발 방지 약속을 촉구" 했습니다. 그래서 은평구의회에 공개적으로 답변합니다. 

항의 공문에 첨부한 서명부에는 자유한국당(새누리당) 소속 구의원은 물론이고 민주당 소속 구의원(성흠제 의장을 포함한 10명) 전원이 자신의 이름과 직위 아래 직접 이름을 적거나 사인했습니다. 이 서명부는 지역의 힘없는 언론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냥 항의 공문이 아니라 연판장 같은 서명부까지 첨부한 의도에는 그런 뜻이 담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명 참여 의원은 아래와 같습니다. 

성흠제(민주당, 의장) 소심향(자유한국당, 부의장) 이연옥(민주당, 운영위원장) 김규배(자유한국당, 행정복지위원장) 문근식(민주당, 재무건설위원장) 조수학(자유한국당,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문규주(민주당), 정병호(자유한국당), 신성진(민주당), 박동규(늘푸른한국당) 유명란(자유한국당) 조정환(민주당) 채근배(자유한국당) 고영호(자유한국당) 구자성(국민의당) 권순선(민주당) 기노만(민주당) 박용근(민주당) 장창익(민주당) 

그런데 은평구의회는 사실 관계조차 틀린 공문을 보냈습니다. 은평구의회가 문제 삼은 기사는 '96명이나 받은 의정대상, 은평구의원도 받았다'라는 제목의 심층취재 기사와 '돈 준 상인지 검증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편집장 편지로 <은평시민신문> 141호(3월 15일 발행)에 실렸습니다. 그런데 은평구회는 엉뚱하게도 142호(3월 29일 발행) 기사에 대해 유감이라고 했습니다. 

제대로 된 항의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최소한 사실 관계는 확인하고 공문을 보내야하는데 은평구의회는 이 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혹시, 사실 관계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시정 질문을 하고 행정사무감사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은평구의회가 항의한 두 기사를 요약하면 ▲소심향-김규배 은평구의원이 받은 '대한민국 의정대상' 보도 자료에 대한 문제 제기 ▲은평구의회 민주당과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의 상 나누어 갖기에 대한 지적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언론사 등 민간단체들의 수상 남발과 지방의원들의 치적용 수상으로 혈세가 새고 있다는 국민권익위의 경고 ▲시상 후보 선정 과정과 평가 방법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상을 주고받는 사람의 이해관계나 거래가 없어야 한다는 전문가의 의견 ▲은평구의원들이 받은 상이 구민의 세금으로 주고받은 상인지 아닌지 검증해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심판을 돕겠다는 내용입니다. 

<은평시민신문> 비판 기사에 못 견딘 은평구의원들의 단체행동

▲은평구의회가 문제 삼은 <은평시민신문> 141호(3월 15일 발행) 기사.ⓒ 조호진

<은평시민신문>이 위의 보도에 이어서 [지방의회의 민낯 1][지방의회의 민낯 2] 등 지방의회 개혁 과제에 대해 <오마이뉴스>에서 동시 연재하자 은평구의원들의 심기가 매우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은평구의회가 대책회의를 열었다',  '신문사 항의방문을 계획하고 있다', '은평시민신문 계도지 예산을 삭감하겠다' 등의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기사에 문제가 있었다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고 그래도 억울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은평구의회는 <은평시민신문>의 보도가 언론중재위 제소도, 명예훼손 고소할 수도 없는 비판 기사 요건을 갖추어서인지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힘없는 지역언론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한 '은평구의회'가 궁리 끝에 항의공문과 서명부로 압력을 가해 온 것입니다. 

은평구의회는 5월 23일 정례회를 개회했습니다. 국회로 치자면 정기국회입니다. 6월 21일까지 30일간 은평구청장과 공무원들을 상대로 구정 질문을 하고 행정사무감사를 합니다. 행정사무감사는 국회로 치자면 국정감사입니다. 정례회를 앞둔 은평구의회의 본연의 역할은 은평구청이 구민의 세금을 제대로 집행했는지, 구민을 위한 행정에 문제는 없었는지 등을 파헤치는 행정사무감사를 준비하는 것인데 은평구의회 19명 전 의원이 사실 관계조차 틀린 항의 공문에 서명하면서 망신을 자초했습니다. 

은평구의원들은 구민 세금으로 연봉 4천 만 원가량 받습니다. 구의원들이 연봉 받은 만큼 일했는지, 부정한 일을 저지르진 않았는지 검증하고 비판하는 것은 지역신문 본연의 역할이자 사명입니다.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책임지겠습니다. 그런 보도를 했다면 책임을 피할 방법도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언론의 자유만 있는 게 아니라 언론의 책임도 져야 하는 법치 국가입니다. 하지만 권력으로 지역신문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한다면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작은 신문사, 은평구의회와 싸우지 않을 것

▲2016년 12월 제245회 은평구의회 제2차 정례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모습.ⓒ 은평시민신문

<은평시민신문>은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작은 신문사입니다. 기자는 편집장인 저와 청년기자 포함해서 단 두 명입니다. 이런 작은 신문사가 무슨 힘이 있어서 구의원 19명(의회사무국 직원 27명)을 상대로 싸우겠습니까. <은평시민신문>은 은평구의회와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언론의 사명을 다해 구의원들을 검증할 것입니다. 

<은평시민신문>은 중앙 언론사들이 지난 대선에서 후보들의 발언과 공약에 대해 펙트 체크했던 것처럼 구청장과 지방의원들을 상대로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지역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에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일손이 부족합니다. 현재 은평구청과 은평구의회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시민운동 단체는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은평시민신문>이 '은평구의회 구민검증단'을 만들려고 합니다. 

구민 검증단원들과 함께 은평구의원들이 성실하게 의정활동을 했는지, 구청과 야합하진 않았는지, 열심히 일해서 상을 받았는지 아닌지, 업무추진비를 제대로 사용했는지 등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해서 검증하려고 합니다. 내년 지방선거는 깜깜한 선거가 아니라 눈 밝은 선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놈이나 저 놈이나'라는 식으로 대충 투표하는 깜깜한 선거가 아니라 구민들의 검증을 통해 좋은 정치인은 뽑고 나쁜 정치인은 심판하면 좋겠습니다. 

▲2014년 7월 제7대 은평구의회 전반기 개원식에 참석한 은평구의회 의원들.ⓒ 은평시민신문

내년 일곱 번째 지방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지방자치제에 대한 불신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미숙아처럼 성장하지 못한 데는 구민의 무관심도 한몫 했습니다. 중앙 권력은 중앙 언론과 시민단체 등이 감시하고 비판하지만 지역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자는 거의 없습니다. 한 동네에 살면서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지역 언론이든, 시민운동이든, 누구든 구청과 구의회와 이해관계가 얽히면 감시와 비판 기능을 상실합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지역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민들이 권력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견제와 감시에서 벗어난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니까요.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민주당이 여당이 됐지만 은평 지역에선 민주당 구의원 10명 전원이 지역신문 탄압에 앞장섰습니다. 세월호와 적폐청산의 촛불을 이제 지역 언론의 자유와 지역 적폐 청산의 촛불로 바꾸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역 언론은 세 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첫째는 운영난이고 둘째는 취재 인력난이고 셋째는 지역 언론의 사명을 다해야 하는  어려움입니다. 운영난 해소를 위해 지역 권력과 유착하면 지역 언론의 사명을 다할 수가 없습니다. 13년 역사를 가진 <은평시민신문>은 세 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지역 언론의 자유와 사명만큼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그게 창간 목적이고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오월은 가고 유월이 다가옵니다. 오월의 노래를 불렀으니 이제 유월의 노래를 불러야겠습니다. <은평시민신문>은 내년 6월 12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검증 그리고, 지역 언론 수호의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지역 권력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지역 신문에게 주어진 비판과 검증의 칼날을 더욱 벼리겠습니다. 지역언론의 펜은 중앙언론보다 힘이 없지만 지켜야할 언론 정의의 몫은 똑 같습니다. 정의의 펜이 살아야 지역 여론이 건강해지고 견제와 비판의 여론이 형성되어야 건강한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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