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달 기획 - 백인보] 서울남대문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 왕태진 경위

▲남대문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 왕태진 경위ⓒ 왕태진
남대문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 왕태진(53) 경위의 고향은 정읍입니다. 시골 면서기인 그의 부친은 박봉으로 5남매를 키웠습니다. 쌀이 떨어지면 고구마를 쪄서 먹었을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궁핍한 살림에 청탁이 들어오면 못 이기는 척하고 뒷돈을 챙길 만도 한데 그의 부친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병사업무를 보던 부친에게 군 면제 청탁이 들어왔지만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강직한 부친은 시골 아파트(24평) 한 채 겨우 남기고 10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닙니다. 자신을 빼닮은 아들도 남겼습니다. 부친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왕 경위는 28년째 하위직 경찰입니다. 
 
28년째 경찰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은평구 역촌동 30평대 빌라에서 아내(53)와 두 딸(24세, 22세)과 함께 10년째 살고 있습니다. 큰딸은 예일여고, 작은딸은 예일여중을 졸업했습니다. 왕 경위가 박봉으로 가족을 책임지면서도 서민 빌라를 장만할 수 있었던 비결은 온 가족이 검소한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담배는 입에 댄 적이 없습니다. 술은 간혹 동료와 한잔합니다. 집과 직장을 오가는 바른생활 덕분에 가정은 화목합니다. 
 
막내사위인 그는 장모를 10년간 모셨습니다. 장인이 돌아가시면서 혼자가 된 장모가 형편이 넉넉한 아들과 큰사위보다 가난한 막내사위를 택했습니다. 그의 온화함이 좋았던 것입니다. 심혈관 질환과 치료 중 합병증으로 위수술, 혈관수술, 뇌경색 등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장모는 2016년 8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병든 장모를 극진히 모셨더니 그의 아내도 남편을 잘 받듭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맞습니다. 
 
18년 동안 60만 명의 학생·학부모·교사에게 학교폭력 예방교육
 
▲덕수초등학교에서 등굣길 안전지도를 하고 있는 왕태진 경위.ⓒ 조호진
왕태진 경위는 청소년 비행예방 전문가입니다. 지난 2012년 여성가족부가 주관하는 '제8회 푸른성장대상'을 수상하고 2016년에는 제1회 대한민국교육공헌대상 아동청소년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청소년학을 전공한 그는 청소년지도사 2급, 학교폭력상담사 2급, 학교폭력예방교육사 2급, 미디어중독상담사, 미디어중독예방교육사 등의 자격증 소유자로서 서울시교육청 명예교사이자 서울시립청소년문화교류센터 기획위원입니다. 
 
그는 18년 동안 비번을 활용해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해왔습니다. 그동안 700여회에 걸쳐 60만 명에게 무료 봉사 교육한 것입니다. 학교폭력을 중심으로 해서 성범죄와 사이버폭력 그리고, 청소년자살 예방 등 청소년 4대 문제에 대해 예방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와 교사들에게도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합니다. 삼위일체로 교육해야 더욱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매일 아침 6시면 사무실에 출근합니다. 관할 구역 학생들의 안전한 등교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상부 지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20년 전, 등교 안전 지도를 하는 자신의 눈앞에서 3학년 초등학생이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 것입니다. 그는 부모 심정으로 등하굣길의 사건사고 예방에 나섰습니다. 5월은 청소년의 달입니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에 청소년 비행예방 전문가인 왕태진 경위를 만나서 학교폭력의 문제와 해법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꿈터'와 '꿈트리' 참가 학생이 풍선에 글을 쓰고 있다.ⓒ 조호진
- 상부지시도 아닌데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18년째 자원봉사하고 있습니다.
"1996년 강남경찰서 소년계(현재 여성청소년계)에 근무하면서 학생 폭력 사건을 조사했는데 학생들에게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받은 적 있냐?'고 묻자 90% 이상이 그런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학교폭력 예방교육이 무방비 상태인 것을 확인하고서 2000년 파출소 근무 중 비번에 학교를 찾아가 예방교육을 시작했는데 어느덧 18년이 흘렀습니다. 학교든 학교 밖이든 청소년 문제는 처벌보다 예방교육이 중요합니다."
 
- 학교폭력은 어떻게 처리됩니까.
"학교폭력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아래, 폭대위)에서 다룹니다. 교감이 위원장, 생활지도부장이 간사를 맡고 학부모와 학교전담경찰관 등 10인 이내로 구성합니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사안에 따라 1호부터 9호까지 처분합니다. 1호 서면사과, 2호 접촉, 협박, 보복행위 금지 3호 교내봉사, 4호 사회봉사, 5호 특별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 6호 출석정지, 7호 학급교체, 8호 전학 9호 퇴학처분하고 이를 생활기록부에 기록하는데 졸업과 동시에 또는 폭대위 심의에 의해 삭제되지만 9호 처분은 삭제되지 않습니다. 
 
- 학교폭력 해결이 어렵다는 말을 듣습니다.
"네, 해결이 쉽지 않습니다. 학교폭력 가해 측은 광역시도교육청 재심위원회에, 피해자 측은 광역시도 자치단체 학교폭력지역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고 여기서도 해결이 안 되면 경찰에 사건을 접수합니다. 경찰에 오면 행정처분이 아니라 형사 처리가 됩니다. 학생들이 부모에게 사건 전부를 말하지 않고 숨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의 말만 듣고 불만을 제기하면서 학교 처분에 불신하다 경찰에까지 옵니다. 그러면 경찰은 증거 확보를 위해 수사합니다. 사건이 확대되면 그때서야 자식을 잘못 키웠다고 뒤늦은 후회를 합니다."
 
학교폭력 해결 4단계… 첫째, 솔직한 인정, 둘째, 진심 어린 사과 
셋째, 적절한 보상, 넷째 재발방지 조치…문제 악화시키는 학부모
 
▲꿈터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 학교폭력 역할극을 하고 있다.
-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1순위로 담임선생에게 알려야 합니다. 2순위는 학부모, 3순위는 학교전담경찰관입니다. 학생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담임선생입니다. 학교폭력 문제를 잘 해결하려면 선생님을 믿고 존중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가·피해자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합니다. 
 
학부모가 명심해야 할 것은 객관적으로 사건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교폭력이 악화되는 경우를 보면 자녀에 대한 과도한 편애가 문제로 작용합니다. 내 아이는 잘못이 없고 상대 아이가 문제라는 식의 편애로 인해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져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자녀가 한두 명이다 보니 과거보다 자녀 편애가 심각합니다."
 
- 학교폭력 문제를 잘못 해결된 사례를 들려주세요.
"4년 전 한 중학교에서 발생한 사례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 집안이 경제적, 교육적, 사회적 수준이 높았습니다. 사소한 따돌림 문제여서 서로 사과하고 용서하면 해결될 문제였는데 부모가 자존심을 내세워 개입하면서 양측이 여러 명의 변호사를 선임하면서 경찰이 사건처리를 하게 됐고 소송으로까지 이어지면서 1년 넘는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은 이 사건으로 외국 유학을 떠났습니다. 부모들의 잘못된 개입으로 양측 학생들이 오랜 시간 동안 고통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웠습니다."
 
- 바람직한 학교폭력 해결 방법은 무엇인가요.
"학교폭력을 해결하는데 4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솔직하게 인정하고, 두 번째,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세 번째, 적절한 보상을 하고, 네 번째 재발방지 조치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겐 승복하지 못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인정하고 승복하면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데 승복을 패배로 인식하면서 문제를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제가 악화되면 가해자, 피해자 학생 모두 피해자가 됩니다."
 
- 잘 처리된 사례도 있었을 텐데요.
"1년 전, 5월 연휴 기간이었습니다. 비번이어서 집에서 쉬고 있는데 117신고(학교폭력신고센터) 접수 문자가 왔습니다. 바로 경찰서에 출근해 피해자 아버지와 1시간가량 전화상담을 했는데 어느 정도 답을 얻은 것 같았습니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학교에 가서 내용을 파악해보니 피해 학생의 주장이 대체로 사실이어서 폭대위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피해 학생 아버지가 처분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자녀의 아픔 때문에 신고할 때까지만 해도 가해 학생에 대한 처분을 원했는데 신속한 상담과 처리 과정을 지켜보면서 마음을 푸셨고 가해 학생 부모는 진정어린 사과를 하면서 아무런 처분 없이 종결됐습니다.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진행 상황을 아버지에게 알려드리고 가해 학생 부모에게도 학교폭력 해결 4단계를 알려드린 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 학교가 학교폭력을 은폐하려고 했다가 사건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있지 않나요. 
"학생뿐 아니라 학교도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은폐하거나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학교 명예가 실추될까 봐 사건을 덮으려고 하는데 최선의 방법은 아닙니다.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에는 은폐가 가능했는지 몰라도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학교폭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학부모들은 인터넷으로도 문제를 제기합니다. 학교폭력 문제를 조사하다 보면 문제를 감추거나 미루는 교사들이 간혹 있는데 그러다 보면 사건이 확대됩니다. 학교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교사들은 감추려고 하기보다 피해자 보호 등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합니다. 그게 학생과 교사, 학교를 보호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이혼, 가정폭력, 가출, 비행, 유급 위기에 처한 불우소년
 
▲'꿈터'와 '꿈트리' 프로그램에 참가한 '희망'이와 왕태진 경위.ⓒ 조호진
- 학교폭력 가해학생을 3년째 돌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학생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2015년 6월, 희망(가명·17)이를 처음 만났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결석이 심했는데 2학년 1학기까지 150여 일을 가출했습니다. 희망이의 등교를 도우려고 집에 찾아갔는데 희망이 엄마(42)는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혼한 희망이 엄마는 공과금이 체납될 정도로 생활이 어려운데도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어서 사회복지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해 기초생활수급자가 됐습니다. 
 
희망이는 58일간 가출팸과 어울리다 쉼터를 전전하다 귀가했는데 유급 5일을 남겨둔 상황이었습니다. 전염병 메르스가 퍼지던 시기였는데 가출 생활로 면역력이 약해졌는지 고열과 기침 증세를 보여서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한 다음에 학교에 데리고 가 담임선생과 생활지도부장에게 사정하면서 등교 절차를 밟았습니다. 그렇게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있는데 가출 중에 발생한 폭행사건이 밝혀지면서 서울소년분류심사원에 들어갔고 판사님에게 선처를 호소해서 풀려났습니다. 
 
그리고는 학교 측에 부탁해서 희망이가 선도부원이 되도록 했습니다. 희망이의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 영화관과 패스트푸드 가게에 데려갔더니 서서히 마음을 열었습니다. 교사들은 희망이가 또 다시 가출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가출하지 않았고 학교생활도 잘했습니다. 교사도 놀랐고 저도 놀랐습니다. 하지만 아빠의 폭력에 의해 전이된 분노조절장애가 여전히 문제여서 순천향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에 부탁해 치료받았습니다. 그러다 동네 선배와 사소한 시비로 싸우다 또 다시 서울소년분류심사원에 잡혀 들어갔고 또 다시 판사님에게 선처를 호소해 풀려났습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희망이는 중학교를 졸업했고 지금은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학교폭력은 학생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학교폭력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위기청소년 문제는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입니다. 가난과 가정폭력, 가정해체 등으로 위기에 내몰린 청소년들이 거리를 떠돌다가 비행과 범죄를 저지르게 되지만 위기청소년들을 보호하고 치료해줄 공간과 시스템이 너무 부족합니다. 위기청소년에겐 그 무엇보다 지지자가 매우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주변의 그런 아이들이 보이면 나쁜 놈들이라고 무조건 낙인찍지 마시고 따뜻한 손길 한번 내밀어 주면서 보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묻지 마 피해 등이 줄어들고 우리 사회도 밝아질 수 있습니다."
 
학생들 꿈을 키우는 학교폭력 예방교육…가족들은 든든한 지원군
 
▲꿈터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들이 풍선을 날리며 환호하고 있다.
- 2013년 주말부터 '꿈터'와 '꿈트리'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들려주십시오.
"'꿈터'는 학교폭력 가·피해자, 학교 부적응 학생, 모범생 등 초등 6학년부터 고교 2학년까지 기수별로 40명을 모아 문화·직업체험과 봉사활동을 하는 청소년 선도·문화 프로그램이고, '꿈트리'는 학교 밖 청소년들의 비행예방과 상담·자립을 돕는 활동입니다. 꿈터 학생들은 격주 토요일마다 '덕수궁 함녕전'(고종황제 침전)을 청소 봉사 등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을 합니다. 
 
연극배우나 연출가 등이 진행하는 역할극을 통해 학교폭력 피해자의 고통을 느끼고, 학교폭력 방관자도 가해자와 마찬가지로 나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자살을 생각했던 한 여학생은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자살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처벌하고 처분하기에 급급한게 현실입니다. 범인을 검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치안서비스는 예방 치안입니다. 그와 같이 학교폭력 예방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예방교육은 아이들을 살리는 활동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치안입니다."
 
- 주말과 비번에 쉬지 않고 자원봉사를 하면 가족들의 불만은 어떻게 합니까. 
"큰딸(24)이 기흉으로 입원한 적이 있는데 하필이면 그때가 희망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해서 큰딸에게 가보지 못했고, 주말 활동 때문에 아버님 제사를 앞당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가족들은 저의 든든한 지원군입니다. 아내는 꿈터 학생들을 위해 40명분의 간식을 포장해주고, 큰딸은 전공인 산업디자인으로 각종 행사 포스터 제작,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는 작은 딸은 PPT 교육 자료를 도와줍니다. 가족들의 도움이 아니면 봉사에 몰두할 수 없었을 겁니다. 만년 경위인데도 남편이 무능하다거나 아빠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할아버지처럼 성실하고 청렴한 아빠라며 좋아합니다. 주말과 비번에 봉사하지만 나머지 시간은 가족들에게 충성합니다."
 
▲꿈터에 참가한 한 학생이 5월 15일 스승의 날에 왕태진 경위에게 편지와 종이 카네이션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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