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민학살, 분단과 독재정권
- 효순·미선이 죽음도 미국 작품


80년대 말 남산에 있는 숭의여고를 다녔습니다. 명동에서는 매일같이 데모를 해서 오후 5시쯤이면 페퍼포그 매캐한 냄새에 눈물, 콧물을 흘렸지요. 왜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최루탄만 안 터뜨렸으면 좋겠다던 고딩이었습니다. 졸업하고도 선배들 쫓아다니며 술 얻어 마시기 바쁜 대학생이었고요.

대학시절, 사범대 단과대 학생회실에 자주 놀러가곤 했어요. 아무도 없던 그 날 탁자에 놓여있던 만화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어요. 표지도 세련되지 않고 그림도 뭔가 거친 느낌에, 제목도 <친미양요>라니. 무엇에 홀린 듯 집어 들었을까, 그저 심심해서 펴보았을까. (스마트폰이 없던 때라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첫 장을 열면서 혼란스러웠고 중반 이후부터 눈물이 솟구치는데 내 몸이 아닌 듯 제어되지 않았어요. 미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침략한 역사를 만화로 그린 1989년 책이었습니다.

미국이 이런 나라였다니. 수많은 양민학살이 미국의 작품이었으며, 주둔하던 미군들은 마치 멧돼지 사냥을 하듯 우리나라 양민들을 몰아넣고 쏘아대다니 이것이 진실이란 말인가. 대한민군은 군사작전 지휘권 하나도 없는 무력하고 비참한 나라였단 말인가. 일본이 구축해놓은 식민지 체제를 그대로 미국이 받아 이용했으며 분단과 독재정권을 지원하고 문화 경제 군사 모든 방면에서 드러나지 않는 식민지를 만들려는 것이었다니. 온 몸으로 분노가 끓었습니다. 이후에 학교에 전시된 광주항쟁 사진을 보았을 때와 같은 충격의 크기였어요. 대학에 들어와서 나름대로 책 읽고 공부했지만 머릿속으로 재편될 뿐이었던 역사가 화살처럼 가슴에 박히던 날이었습니다.

이 책으로 나의 역사에서는 2부를 쓰게 되었습니다. 진실을 알고 난 후의 나는 이전의 나와 같을 수 없었어요.

가슴에 넘실거리는 분노를 안고 학교 앞은 물론 동대문, 종로, 시내로 매일 직장처럼 시위를 나가던 91년엔 많은 학생들이 거리에서 죽어갔습니다. 강경대, 김귀정 열사… 같은 처지이자 내 또래였던 그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에 ‘저 사람이 나일 수도 있었어!’, 무서웠고 분노는 더 커졌습니다. 바로 다음 해에 주한미군 전용클럽 종업원이던 윤금이 씨가 마클 이병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한 기사를 접할 때, 10년 뒤 효순, 미선이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음을 당했을 때, 또 15년 뒤 박근혜가 탄핵된 이 시점까지도 치욕과 비통함과 분노를 이어오게 한 것의 시작엔 책 한 권이 있었습니다.

역사는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이잖아요. 그 발자국 위에 또 내 발자국을 포개며 밟아가다 보니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보였습니다. 많은 타인의 손길과 죽음이 내가 살아 지내는 것과 연결되어 있구나, 타인의 삶이 나에게 바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회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죠.

처음엔 가족의 건강을 위해 생협에 가입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발자국을 보았기에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관계를 이어주는 것이 생협의 정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런 곳이 있는게 참 고마워서 오랫동안 생협 이사로 봉사하는 길까지 연결되었던 것 아니겠어요? 그것은 또  ‘나와 다르기 때문에 협동이 필요한 것이구나!’하는 생각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다른 삶의 모습을 인정하기, 나의 편견일 뿐이라는 것을 자각하기, 차별을 차별로 알게 하는 감수성을 갖기,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그 책이 이어준 여러 생각을 품고 여러 인연과 함께 오늘도 한 발자국 내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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