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과 함께 짓는 마을학교 19]

우리 공동의 미래?
 
미을이라는 학교는 현재의 꿈을 쌓는 현장이며 미래를 뿜어올리는 펌프장이다. 현재의 학교 교과서가 평면에 가깝다면 마을은 부피를 가진 입체에 가깝다. 우리에게 마을은 사유의 뿌리이며 생각을 저장하는 뿌리이다. 대부분이 고향이 아닌 낯선 마을에 이사와서 삶을 부려놓고 타향생활을 하지만 아이들에게 고향을 마을을 만들어 주자는 것이 마을공동체 운동의 시작이 아닐까? 거기에 어른과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을 함께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은 ‘우리 공동의 미래’인 것이다. 
 
수막 카우사이(Sumak Kawsay)라는 개념이 이 시대의 새로운 지향성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에콰도르 원주민 케추어족 언어로 ‘잘 살기’, ‘좋은 삶’이라는 뜻을 너머 자기가 발을 딛고 있는 사회적 의미에서의 땅, 다시 말해 생태계를 존중하는 지역사회를 기반 한 삶의 철학과 문화에서 비롯된다 하겠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삶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이며 성찰이다. 여기에서는 자연권을 이해하고 공동체적 가치와 생태적 균형, 문화적 감수성을 기반 한 ‘부엔 비비르’를 내포한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귀뜸하고 있다.
 
이는 지역을 기반으로 해야 하고 마을이 터전으로서의 역학을 뒷받침해 주어야 가능하다.
마을에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생산지로써의 토양을 만들고, 마을이 문화를 길러내는 텃밭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거기에 건강하고 다양한 씨앗들을 심고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가꾸어 간다면!  
 
무엇이 지속이고 어떻게 가능할까?
 
교육에 있어서 문화적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지속성과  인류의 지혜의 축적과 향상적 차원에서 이야기 하는 발전이라는 개념이 복합화 하여 교육의 과정이 이루어진다. 교육이라는 현재성은 오늘을 살지만 과거를 딛고 미래를 내다보아야 하는 동시성과 교육현장이 학교를 포함한 지역사회, 국가, 세계를 연결하는 공간적 확장성 때문에 교육을 둘러싸고 있는 시·공간은 가변적이고 융통성에 대한 요구가 항상 열려 있다. 오늘날 특정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일지라도 지나 온 날에서 축적된 지혜의 대지에 뿌리박고 있으며 내일을 동시에 품고 있고, 장소성은 평면적으로 퍼져나가며 팽창하고자 하는 속성을 동시에 지닌다.
 
유네스코(UNESCO)에서 2004년에 ESD를 정의한 바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이 질 높은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와 사회 변혁을 위한 필요한 가치, 행동, 삶의 방식을 배울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교육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에 다음 세대의 삶과 사회를 예측하고 그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 교육의 내용을 연구하고 제공함으로써, 미래 세대를 살아갈 인류가 세계화 시대에 당면하고 있는 사회, 환경, 경제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기능을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정리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실현하기 위해서는 학교뿐만 아니라 마을의 역할이 일정 부분 필요하게 된다. 국가나 지구적 차원에서의 지속가능발전교육의 목표와 교육과정은 학교에서 담당할 수 있지만, 지역사회가 가지고 있는 복잡한 지속가능성 문제에 대하여 학교가 고민하기에는 쉽지 않은 영역이다. 지역과의 연계성을 효율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사회, 환경, 경제를 심층적으로 이해하여야 하며 내재되어 있는 지역문화의 가능성을 발견하여 미래지향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쓰는 마을 신문
 
벌써 6년 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주변에 이웃한 아이들을 모았다. 마을과 함께 생각하고, 느끼고, 놀고, 쓰는 이른바 <우리들 신문> 만들기 프로젝트 수업을 시작하였다.  여름과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인디언이 직접 마을 방과후 모임을 꾸렸다. 일기도 함께 쓰고, 시도 짓고, 동화도 쓰고, 동네 가게 인터뷰도 하면서 노는 ‘우리들 신문 만들기 프로젝트’ 이다. <물푸레>라는 동네 공간에 모여 매주 수요일 오후 반나절 방과후를 진행하였다. 지금의 <검바우마을신문>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 모임이자 씨앗 프로젝트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기자를 위한 기초를 일러주고, 서로 발표하고 품평회를 하면서 글쓰기 공부를 함께 하였다.
 
이렇게 나온 결과물을 타이핑을 하지 않고 직접 고사리같은 손으로 꾹꾹 눌러 쓴 육필 원고를 스캔을 떠서 편집을 하여 신문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가까운 이웃과 나누고 3호부터는 동네 가게에 비치하고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몇 명 안 되는 참가 아이들이었지만 ‘기자’라는 명칭을 주고 책임감과 자부심을 동시에 부여해 주었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과 공개 모집된 아이들이 보태어져 3년 전에 시작한 비로소<검바우마을신문>을 창간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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