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가자.”
 
일곱 살 먹은 조카가 얼마 안 남은 엄마의 립스틱을 사겠다며 꼼짝하기 싫은 저를 결국 일으켜 세웁니다. 얼마 전 인형과 제 얼굴을 모델삼아 립스틱으로 난장판을 만들어 놓더니 그 때의 야단이 효과를 거둔 모양입니다. 화장품가게에 서 주인이 내놓은 립스틱을 평소와 다른 신중한 표정으로 둘러보더니 고개를 내젓고 돌아섭니다. 더 큰 마트로 가보자는 의도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고까짓 것을 사는데 마트는’, 잠깐 짜증이 났으나 엄마를 생각하는 조카의 마음에 제 마음이 보여서 그럴 수만은 없었습니다. 
 
큰 마트에 온 조카는 제 세상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환한 표정은 집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얼굴이었습니다. 
  
누구나 이러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준비한다는 것은 받는 사람은 물론 주는 사람도 그 기쁨을 함께 느끼게 됩니다. 받는 사람이 그 의미를 알고 누릴 수 있다면 선물을 준비한 사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겠죠.
  
전 장애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돌려주고도 싶고 바꾸고도 싶었지만 그럴만한 재주도 없었고 낮은 마음으로 바라보니 오히려 뜻하지 않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는 행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기쁨과 즐거움만이 전부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아픔과 두려움마저도 기다릴 줄 아는, 그로 인해 얻을 환희에 동참해 주고 함께 해 주는 한결같음도 배웠습니다.
 
이를 알게 된 시점이 장애라는 녀석과 한솥밥을 먹으면서부터입니다. 그래서인지 아프고 나서 알게 된 인연들이 더 소중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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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마을기자단'이란 이름아래 모인 장애당사자와 장애자녀를 둔 부모가 직접 쓰는 '장애'이야기 입니다. 당사자가 생각하는 장애, 당사자의 일상에서 드러나는 장애는 어떤 느낌인지 함께 나누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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