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산골마을' 장양훈 대표가 전하는 개발보다 변화로 사는 법

▲응암산골마을 장앙훈 대표.
오래된 집들이 사라진다. 낡은 집은 개보수의 길을 겪게 되어 있다. 최근 몇 십 년 사이 개발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흔하게 이루어졌고 다세대주택 또한 급속하게 생겨났다. 유서 깊은 집성촌은 대규모 빌라촌이 되어 흔적도 없어졌다. 오래된 집의 운명은 허물어져 대단지 아파트가 되거나 빌라로 변신해 주인에게 월세를 주며 임대업자가 되게 했다. 집은 개발되어야 하고 시세와 투자를 더해 금전적 이익을 낼 때만 가치 있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응암산골마을> 장양훈 대표는 개발 대신 변화를 택했다. 산골마을은 개발로 이웃이 흩어지거나 새로운 집이 들어서지도 않았다. 오래된 집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고 몇 십 년 된 이웃이 여전히 살고 있다. 개발보다 변화의 길을 걸으며 산골마을은 몇 년에 걸친 노력으로 에너지자립마을이 되었다. 그 한가운데에 장양훈 대표가 있다. 
 
서로 보살펴주고 싶은 욕심이 생기다
  
올해 예순 살인 장양훈 씨는 50여 년을 나전칠기 이수자로 전통가구에 옻칠 일을 했다. 먹고살기 위해 기술을 배웠고 그 기술로 여태까지 살았다. 산골마을에는 30년 넘게 살고 있다. 그가 주변을 돌아보게 된 건 동네 선배의 권유로 응암1동 자율방범대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13년 동안 방범대장을 맡아 동네를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어려운 이웃이 눈에 띄었다. 혼자 사는 노인을 보면 신경이 쓰여 다시 들여다보았고, 저소득 가정 아이들은 부모 같은 마음으로 자주 찾아보았다. 타고난 손재주로 수도가 고장 나면 고쳐주고 화장실이 막히면 뚫어주고 전등도 갈아주며 ‘맥가이버’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가 산골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이웃들 때문이었다. 
  
“내가 멀리 가면 누가 이 사람들을 도와주나, 하는 생각이 드니 여기를 못 떠나겠더라구요.”
  
그동안 돈을 벌려고 사업도 해봤지만 사기도 당했고 큰돈도 잃었다. 돈에 대한 욕구는 이웃을 돌아보면서 희미해졌다. 이제는 돈보다 사람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서로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이 욕심이라면 욕심이지요.”
 
재건축업자를 막아내다
 
20년 넘은 노후주택이 대다수인 산골마을은 ‘서울시 주거환경개선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었다. 주민투표를 거쳐 장양훈 씨가 대표로 선출되었다. 매주 한번 주민회의를 열었고, 그동안 응암1동의 주소로만 불리던 동네는 <산골마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주거환경개선사업’을 받아들일 즈음 산골마을은 개발의 고민에 들어갔다. 재개발은 조사과정에서 타당성 부족으로 드러났다. 그러자 재건축을 바라는 부동산업자들이 몰려왔다. 빈집을 구입해 집값을 올리고 재건축을 부추기는 그들을 장양훈 씨가 막았다. 분위기를 띄워 주민의 마음을 흔들려는 부동산업자를 차단하려 무던히 애썼고 그들의 진입을 막았다.  
 
“이 동네는 저소득 가정이나 기초생활 수급자들이 많아요. 재건축이 되면 그분들이 갈 데가 없어요. 그래서 여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소수에게 돌아가는 개발 이익에 맞서 다수의 생존을 한동네에 사는 이웃이 지켜냈다. 장양훈 씨도 이들도 여기 산골마을에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에너지 교육으로 오래된 집과 친해지다
 
▲응암산골마을 공동주택에 설치된 미니 태양광.
평균 연령 65세인 산골마을 이웃들이 주거 환경을 바꾸려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마을 청소였다. 예전에 무허가판자촌이 철거된 뒤 남은 쓰레기가 동네 곳곳에 있었다. 몇 달에 걸쳐 폐자재와 쓰레기를 치우고 난 자리에 텃밭을 만들었다. 시작은 거기서부터였다. 10평 남짓한 텃밭을 정성스레 돌보며 자주 만나 밥도 먹고 김치도 함께 담그니 정이 쌓였다. 동네 위 석축을 정비해 사과나무와 배나무, 감나무를 심고 가꾸기 시작했다. 
 
겨울이 되자 노후된 집들에 추위가 몰려왔다. 에너지 컨설팅과 교육을 받아 문에 방한용 뽁뽁이를 붙이고 멀티탭을 달아 단열과 절전을 시도했다. 덕분에 칼바람이 불어 잠을 자기 어려웠던 방에서도 두꺼운 옷을 벗고 지낼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 무조건 아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절약하고 절전하는 방법을 배운 산골마을 이웃들은 오래된 집과 차츰 친해졌다. 
 
조정과 설득으로 에너지마을에 발을 들이다
 
산골마을은 다수 세대가 조명을 LED로 교체했고 태양광을 설치해 가구당 전기요금이 30%가량 줄었다. 옥상을 흰빛으로 칠해 여름철 실내온도를 2~4도 낮추었고 지붕도 수리했다. 여기에는 장양훈 씨의 손재주와 열의가 크게 한몫을 했다. 평소 이웃의 집수리를 도와주던 실력으로 전등을 갈아주거나 절수기를 달아주며 설득에 설득을 더해 마음을 열었고 에너지 마을에 발을 들여놓게 했다. 
  
허물어진 담장을 고치거나 경사가 심한 골목에 계단을 놓는 일 하나에도 장양훈 씨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갈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서로 원하는 것이 다르면 불화가 생기는 건 당연했다. 같이 하나씩 조정하며 수리를 하고 해결해갔다. 
 
그는 왜 고생을 무릅썼을까? 마을대표는 월급은 물론 활동비도 받지 않는다. 생활은 평생 하던 옻칠 일을 하며 유지하고 있다. 고생스럽게 설득하고 갈등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동네가 변하니 내 삶도 변하고 있어요. 나는 여기 살고 있고 계속 살아야 하니까요. 이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너지 절약으로 이웃과 가족이 되다
  
▲응암산골마을 장앙훈 대표와 주민들.
작년에는 마을회관이 문을 열었다. 옥상엔 태양광발전기로 전기를 생산하고 1층 쉼터에는 황토방을 놓았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쉼터에는 이웃들이 늘상 와 있다. 무엇보다 장양훈 씨는 함께 모여 지내기를 권유한다.  
 
“같이 있는 것이 에너지 절약입니다. 한 공간에 모여 있으면 개별 집의 에너지 사용도 줄어듭니다.”
 
그렇게 몇 년을 모인 이웃들은 에너지 절약은 물론 가족처럼 친해졌다. 예전에는 인사도 하지 않고 지낸 때도 있었다. 요즘은 이 집이나 저 집이나 들어가도 밥을 줄 만큼 한 식구같이 지낸다. 마을 부녀회장은 오늘 누가 외출했는지, 누구 집이 비었는지, 누구네 집 제사가 언제인지도 안다고 한다. 서로 보살펴주고 싶다는 장양훈 씨의 욕심은 누구 집에 들어가든 내어주는 밥만큼 산골마을에는 흔해졌다. 
 
개발이 결코 할 수 없는 일, 보살핌
 
누구나 이익을 원한다. 얼마나 이익이 되는지를 말하기 전에 누구의 이익인지 먼저 살펴본 사람이 있다. 개발이 주는 이익이 이웃을 거리로 내몬다면 나의 이익과도 멀어지는 걸 피부로 절감한 사람이 있다. 나의 이익은 이웃의 이익과 동일하다. 장양훈 씨가 개발보다 변화를 선택한 이유이다. 개발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서로 보살펴주는 일. 산골마을 사람들이 그와 함께 움직이는 이유이다. 여기에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사람은 장양훈 씨이기도 하지만 바로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갈지를 선택한 그들은 여기 산골마을에 살고 있고 계속 살아갈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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