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푸레생태교육센터> 유갑순 청개구리 선생님이 세대를 이어 교감하는 법

“우리 할머니는 야채 삶은 뜨거운 물도 못 버리게 했어요, 땅 속 생명이 죽는다면서. 안 보이는 것도 다 연결되니 귀히 여기라 이르셨어요.”
 
청개구리 선생님이라 불리는 유갑순 씨는 60대 중반이다. <물푸레생태교육센터>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할머니 선생님이다. 숲에 갈 때마다 그 옛날 할머니가 들려준 생명의 귀함을 오늘도 잊지 않고 전한다. 40년 가까이 은평에 살며 변화를 속속들이 보아온 유갑순 씨는 아이들에게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살아있는 메신저이다.
 
손주와 놀기 위해 생태강사가 되다
 
유갑순 씨가 생태강사가 된 건 손주와 재밌게 놀기 위해서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상심을 달래려고 불교 정토회에 입문했다. 불교 공부를 열심히 했고 법륜스님에게 계도 받았다. 만인에게 덕을 베풀며 살라는 배움을 얻으며 자원 활동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어느 날 자원 활동을 열심히 하던 동료가 손주를 돌보아야 한다며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유갑순 씨에게 동료의 사정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조만간 할머니가 될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었다.
 
‘나도 앞으로 손주를 가르쳐야 되는데 어떻게 하나’ 고민을 하다 ‘손주와 놀려면 배워야 겠다’고 결심을 했다. ‘사찰생태’ 공부를 시작했고 평소에 관심 있던 풀, 나무, 숲, 놀이 활동을 하러 다녔다. 환경단체 <생태보전시민모임> 회원이 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생태강의'를 지속적으로 듣다 보니 손주와 놀거리가 풍성해졌다. 
 
생태활동 이력이 쌓이면서 아이들에게 생태수업을 했다. 은평에 살며 멀리 청계산까지 수업하러 다녔다. ‘길바닥에 시간을 버리지 말고 산도 있고 숲도 있는 우리 동네에서 놀자’고 마음먹은 뒤 은평에서 활동의 터를 닦았다. 유갑순 씨가 <숲속자연학교>에서 청개구리 선생님이라 불리며 아이들에게 인기 높은 할머니 선생님이 된 지도 벌써 7년이다. 
 
자연의 맛과 향을 잃지 않고 산다
 
“어릴 때 밭에서 금방 뽑은 홍당무의 향을 못 잊겠어요. 시골에서 농사지어 먹던 야채의 싱싱한 맛, 직접 캔 딸기의 맛을 아직도 기억해요.” 
 
어릴 적에 배어 있던 맛과 향을 잃지 않으려 유갑순 씨가 술을 담근 지도 오래되었다. 막걸리를 담가 드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일찌감치 술 담그는 법을 배웠다. 토종 쌀을 버무려 누룩을 섞고 장독에 담아 이불을 두르는 전통방식을 지금도 따른다. 매년 겨울에 막걸리를 빚어 1년 동안 제사상에 올리고 주변 사람들과도 나누어 마신다. 
 
농약도 화학비료도 없던 때의 농사와 수확을 잊지 않은 유갑순 씨는 텃밭농사도 짓는다. 집에서 5분 거리에 향림텃밭이 있다. 아침거리로 파가 필요하면 금세 텃밭에서 뽑아온다. 가까운 향림텃밭을 내 밭처럼 이용한다. 퇴비는 화학비료가 아닌 자연퇴비를 만들어 쓴다. 마당에 있는 지렁이 밭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나오는 양질의 분변토를 텃밭 퇴비로 사용한다. 
 
화학성분이 섞이지 않은 깨끗한 물을 마시고 자란 유갑순 씨는 화학세제를 쓰지 않겠다고 결심한 뒤 비누와 수세미를 직접 만든다. 깨끗한 재료로 만든 비누와 수세미를 주변에 나누는 일도 아끼지 않는다. 이 일을 십 수 년 지속하며 물의 오염 줄이기를 널리 퍼지게 하고 있다. 
 
손녀에게도 전하는 숲의 기억
 
<숲속자연학교>에서 유갑순 씨는 주로 유아를 담당한다. 나이 차이가 많은 유아를 좀 더 이해하고 싶어 유아들의 생태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손녀딸과 재미있게 놀며 아이가 잘 자라도록 방향을 잡아주고 싶어 한 선택이기도 하다. 손녀가 세 살일 때 <꼬마숲동이> 모임에 데리고 나가 숲에서 놀았다. 애초에 목적한 대로 손주와 놀아주는 할머니가 된 셈이다. 
 
처음 숲에 간 날, 손에 흙이 묻자 탈탈 털어내던 손녀딸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할머니도 앉아’라고 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땅의 기억, 오랫동안 새겨진 숲의 감수성이 손녀에게도 나타났음을 알았다. 손녀가 만지는 흙과 호흡하는 숲속에 그 옛날 할머니가 일러주던 생명의 귀함이 있음을 손녀에게 두고두고 전해주고 있다.
 
세대를 이어 배움이 실행되는 숲 
 
은평에 40년 가까이 사는 유갑순 씨는 뉴타운이 개발되기 전의 모습도 알고 있다. 일찍이 폭포동에 살면서 자녀들은 산에서 바위를 타고 냇물 속 개구리, 올챙이와 놀았다. 개발이 시작되자 맨날 다니던 길이 없어졌고 냇물과 바위는 시멘트에 막혔다. 자연의 친구가 사라지자 아이들은 기계와 게임에 몰두했다. 개발이 주는 변화를 유갑순 씨는 기억한다. 
 
40년을 한 곳에 살며 은평의 숲과 산, 허물어진 길을 잊지 않는 유갑순 씨는 아이들에게 세대를 연결하고 과거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풍요로웠던 산을 기억하고 개구리와 친구하며 올챙이를 놀려대는 기쁨을 새기고 있는 사람이 숲의 감수성을 알려주는 일은 유아들에게는 행운이다. 개발이 주는 변화를 체득한 할머니가 들려주는 긍정적 발전 가능성은 아이들에게는 세대를 잇는 배움이 된다. 
 
자연 그대로의 맛과 향속에서 자란 어린 유갑순은 은평의 자연에서 어른이 되고 나이도 들었다. 할머니에서 손녀로, 그 손녀에서 손녀로 이어지며 세대를 아울러 풍요를 공유하는 일은 숲이 맡았다. 유갑순 씨와 손녀도, 청개구리 선생님과 아이들도 숲의 생명에 답하며 세대를 잇는 교감을 매일 이루고 있다.   
 
할머니의 기억을 체득하는 아이들의 미래
 
나이 들면 주눅 들고 세상사에 뒤쳐져 존재 가치가 희미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숲을 겪으며 자란 이는 나이 들수록 더해지는 풍족한 자산이 있다. 유갑순 씨는 매일 산을 걷고 숲을 다니며 아이들과 흐뭇하다. 몸 또한 건강하다.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신선한 맛과 향의 기억이 오늘도 그를 살아있게 한다. 아이들은 할머니 선생님이 체득한 자연의 기억을 현재로 받아들인다. 그 아이들이 생산해낼 미래는 숲의 소리처럼 다양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그 옛날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유갑순 씨가 들려주는 풍요로운 기억이 아이들의 미래를 만들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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