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한 번밖에 없는, 학창시절의 마지막으로 평생 기억해야 할 충암고 졸업식. 학생들도, 참석한 학부모들도 귀를 의심했다. 축사를 위하여 단상에 선 사람의 입에서 학생들에게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발언이 나온 것이다.

이 축사의 당사자인 이홍식 전 이사장은 1999년 횡령과 병역비리 뇌물죄로 유죄선고를 받으며 2011년에는 교육청 감사에서 각종 비리가 밝혀져 두 번씩이나 이사장에서 쫓겨났다.

그런데 충암학원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법적으로 이사장을 할 수 없게 되자 아내, 아들, 딸 등을 차례로 명목상의 이사장으로 앉히고 배후에서 실질적인 이사장 행세를 한 것이다. 모두 그를 이사장으로 부른다. 최순실에 의한 대통령 비선실세가 대한민국 국정을 농단한 것과 똑같은 일이 충암학원에서 수 십 년째 이어져 오면서 교육을 농단해 온 것이다.

이씨는 설립자의 아들로 충암학원의 실질적 주인 역할을 수 십 년간 해왔다. 대물림에 의한 족벌운영은 2대에서 그치지 않고 3대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다. 큰 딸이 이사장, 큰 아들은 행정실장, 큰 며느리(행정실장 부인)는 교감, 둘째 며느리는 유치원 실장이다. 중간에 둘째 딸과 둘째 아들이 이사장을 했고, 행정실장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4대(전 이사장의 손자들)가 이 학교에 다닌다.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숙부, 숙모 등이 근무하거나 근무한 학교에 자녀들이 다니는 것이 옳은 일인지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비리로 쫓겨나도 다시 복귀하고 한 가족이 요직을 독차지하는 학교

몇 번에 걸쳐서 비리로 쫓겨나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복귀하고, 아내, 아들, 딸 등 가족들이 이사장을 돌려막기를 하고, 한 가족이 이사장, 행정실장 등 요직을 독차지하고 대물림하면서 족벌로 운영하고 그 자식들까지 학생으로 다니는 것이 가능한 곳, 그리고 쫓겨난 이사장이 비선실세로 학교를 좌지우지하면서 학생들에게 부동산 투기를 말하는 학교. 이것이 충암학원이 보여주는 대한민국 사립학교의 품격이다.

쫓겨난 이사장이 자기 아들과 딸, 며느리 등을 이사장과 행정실장, 교감 등 요직에 앉혀 놓고 실질적인 이사장으로 비선실세 역할을 하고 있는 충암고에서 ‘부동산 투기를 하라.’는 졸업 축사를 하고 있는 현실이 결코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비단 충암학원 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교장이 학생들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종업식에서 탄핵을 비판하는 1시간 동안 토론회를 빙자한 정치 강연을 하고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겠다는 서울디지텍고 역시 비슷하다. 이 학교도 설립자 부모는 초대 이사장과 교장이었고, 이들의 뒤를 이어 아들이 교장, 며느리는 행정실장, 교장의 손위 처남은 이사장을 하면서 대물림 족벌운영을 하고 있다. 전국 유일의 국정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된 경북 문명고 역시 설립자 아버지에 이어 그 아들이 이사장을 하고 있는 대물림 족벌 사학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내부 비판의 기능, 내부 견제와 감시의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 사립학교라는 점을 빼고는 설명이 쉽지 않다. 물론 대한민국의 모든 사학이 이런 것도 아니지만, 대물림 족벌사학이라는 구조가 이런 비정상이 되풀이되는 것과 무관하다고 볼 수도 없다. 그 결과는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들이 보여주는 현실이 대한민국 사립학교의 품격이라고 하면 너무 서글프다. 족벌로 운영되면서 내부 견제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가 계속되는 한 이런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족벌사학의 각성과 더불어 사립학교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사립학교법 개정이 더욱 필요한 이유이다. 대통령 탄핵 선고에 따라서 곧 대선이 이루어질 상황이다. 각 후보들은 각종 교육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사립학교 개혁에 대해서는 크게 이슈가 되는 것이 없어 없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에서 사립학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 세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높다. 그래서 사립학교 개혁은 공교육의 절반을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립학교 개혁의 핵심은 족벌대물림 사학으로 대표되는 사학의 폐쇄성을 개혁하여 그들만의 리그를 끝내는 것이다. 충암학원이 우리 사회와 교육계에 온몸으로 보여주는 반면교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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