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부터 간간이 논의되던 ‘협치(協治)’와 ‘시민협력플랫폼’이 하반기 들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협치’와 ‘시민협력플랫폼’은 전혀 다른 개념이지만 수레의 양 바퀴처럼 어느 것 하나만으로는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거버넌스(governance)’, 여기저기 ‘거버넌스’란 말이 쓰이는데 일반인에게는 너무 학술적이고 이해하기도 어려워 ‘협치’라는 말을 쓰고 있다. ‘협치’란 여러 정의가 가능하지만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의 경계영역을 가로질러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와 연대, 소통의 과정을 통해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신뢰를 형성함으로써 공통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발전방향을 모색해 나가는 대안적인 통치체제 또는 협력적 관리체제”를 말한다. ‘협치’란 말이 여전히 어렵다면 ‘민관협력’이라고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은평구 민관협치 활성화를 위한 기본조례(안) 주민의견 수렴회가 지난 12월 21일 은평사회적경제허브센터 즐거운 소통방에서 열렸다.

서울시는 ‘시민이 시장이다’라는 슬로건에서 알 수 있듯이 일찍이 정책 개발, 집행, 평가의 전 과정에 시민을 참여시켜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원전하나 줄이기’ 정책이다. 협치를 통한 사업성과도 검증되었다. 하지만 시민참여와 민관협력은 여전히 행정의 일부에서만 추진되거나 활성화되어 있을 뿐이다.

협치는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과거와 달리 사회문제가 굉장히 복잡해지면서 행정만의 노력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한편으로 시민의식이 높아지면서 행정의 일방적인 문제해결 방식은 오히려 문제를 복잡하게 하고 갈등을 유발하게 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통치체제로서 협치가 매우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고 실험되고 있다.

서울시는 협치를 시정의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로 설정하였다. 서울시 행정에 협치를 기본철학으로 뿌리내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협치의제, 협치예산 등 다양한 정책과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서울시는 25개 자치구로 구성되어 있다. 자치구 단위의 협치가 중요한 이유이다. 풀뿌리 행정에서부터 협치가 일상화, 문화화 되지 못하면 서울시 협치는 사상누각이다. ‘지역사회혁신계획’ 사업은 자치구의 협치 문화를 구축하기 위한 서울시의 지원사업이다. 풍부한 예산 지원을 통해 자치구의 협치 문화를 일구겠다는 전략이다. 행정과 시민사회가 협력을 통해 지역사회의 핵심과제를 도출하고 과제해결을 위한 혁신계획을 수립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3년에 걸쳐 예산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와 행정이 핵심문제를 함께 도출하고, 혁신계획을 함께 수립하며 힘을 모아 실행하고 그 결과를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협치문화가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에 뿌리 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은평구를 포함해 8개 자치구가 ‘지역사회혁신계획’ 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은평구가 가장 먼저 사업을 시작해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는 상태다.

서울시의 흐름과 별도로 은평구는 2010년 이후로 민관협력의 성과를 구축해왔다. 구산동도서관마을, 은평누리축제, 신나는애프터센터 등 다양한 영역에서 협치의 성과가 축적되어 25개 자치구 중 가장 모범적인 민관협력 자치구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2015년 말부터 시민사회와 행정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면서 민관협력이 잠정 중단되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시민사회, 행정 모두 냉각기를 거치면서 협치는 여전히 중요하며 좀 더 탄탄하고 건강한 협치가 필요함을 공감하고 협치를 주요 정책과제로 설정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민과 행정이 함께 참여하는 ‘은평협치준비위원회’를 발족하게 되었다. ‘은평협치준비위원회’는 협치가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 마련, 그리고 협치를 현장에 뿌리내리기 위한 방편으로 ‘지역사회혁신계획’ 수립과 ‘협치추진기본계획’ 등을 수립할 예정이다.

협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도마련과 인식증진 등 여러 노력이 필요하지만, 행정의 파트너인 시민사회의 역할 역시 매우 중요하다. 행정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위임할 의사가 있더라도 권한을 행사할 시민사회가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협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다. 시민사회의 성장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이다. 서울시는 시민사회와 시민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시민협력플랫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 풀뿌리사회에서 시도하는 시민사회 성장을 위한 다양한 실험과 노력을 적극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이 사업 역시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은평구를 포함한 9개 지역 시민사회가 참여하고 있고, 은평은 은평지역사회네트워크와 (사)은평상상이 11월부터 사업을 시작하였다.
 
▲은평시민협력플랫폼 네트워크 파티가 지난 12월 20일 은평사회적경제허브센터 즐거운 소통방에서 열렸다.

은평구 시민사회는 다른 지역보다 탄탄하고 역량이 높다는 평가를 받지만, 내부 진단으로는 굉장한 취약한 구조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시민사회를 어떻게 건강하게 성장시킬 것인가는 오래전부터 은평 시민사회의 화두였다. 2013년부터 그 고민을 본격화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간지원조직으로 (사)은평상상을 창립하기도 하였다. 그동안 미미하지만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다 서울시의 ‘시민협력플랫폼’ 사업을 적극 활용하면서 은평 시민사회는 한단계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은평 시민사회가 자체적으로 진단하는 핵심과제는 크게 세 가지이다.

하나는 탄탄한 물적 토대 마련이다. 공간과 기금이 핵심이다. 안정적인 공간은 플랫폼으로서, 활동과 활동이 연결되며 상상력이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공간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안정적인 공간이 확보된다면 좀 더 활발하게 상상력이 구현될 것으로 보인다. 기금 또한 중요하다. 지역의 공익활동과 공익활동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지지하는 안정적인 기금이 마련되면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공익활동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시민사회 활동가를 어떻게 성장시키고 지원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좀 더 나아가서 지역 주민의 시민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지역혁신에 대한 상상력과 이를 구체화하는 의제 생산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위의 세 가지 과제 어느 것 하나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깊은 문제의식과 명확한 해결과제 설정은 은평 시민사회의 노력이 단순히 선언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

오래전부터 꿈꾸어 왔던 지역적 과제가 2016년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되었다. 2017년도에는 협치와 시민협력플랫폼 사업의 구체적인 성과가 가시화되기 바라며, 이를 통해 은평구가 좀 더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기반을 다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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