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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스며들다
  • 김태은 / 은빛초등학교 교사
  • 승인 2017.01.0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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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9일 금암문화공원에서 열린 제 4회 금암문화예술축제에서 한 학생이 떡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운명이었던 걸까? 나는 평생 한 번도 와보지 않은 동네로 이사를 왔고 은빛초등학교에 안달난 듯 지원을 했었다. 아이들도 교사도 행복한, 꿈꾸던 학교에 다니며 가슴이 뛰었다. 처음엔 그랬다. 기쁨과 더불어 긴장감. 아이들에게 좋은 교사로 보이고 싶어 초조했다. 학부모나 마을, 이런 건 살필 겨를이 없었다. 얼핏 보니 대단하다 싶었다. 우리 학부모들 말이다. 늘 와글와글 시끌벅적 무언가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들, 난 혁신학교 교사로서 살기도 바빴다. 그걸로 족하고 행복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받아들여야 한다고들 한다. 은빛에서 5년의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동네 사람이면서 정체를 감추고 마을의 학교를 다니는 것이 편할 리는 없으니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결국 내 발목을 스스로 묶어버렸다. 은빛살이가 좋으니까. 또다시 5년, 남은 자가 민망하지 않으려면 남들이 두려워하는 일을 해야지.

그랬다. 내가 검바우 마을학교와 엮인 건. 은빛에 재부임 1년차에 맡은 업무였다. 검바우마을학교가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가끔은 나도 살짝 거들기도 했지만 나와는 조금 먼 당신이었기에 뭔가 재밌을 것도 같았고 호기심도 있었다. 저들은 왜 맨날 와글와글 시끌벅적 무언가를 하는 것일까? 

복잡하면서도 삭막했던 서울 변두리에서 줄곧 살아온 나는 마을 사람들끼리 어울려 지낸다는 것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내게 이웃이란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마주치면 예절을 지키며 조용히 인사를 하는 관계였다. 그런데 우리 학교 학부모를 중심으로 한 이 마을 사람들은 낯설고 신기하다. 마을 가게에 몇몇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반갑게 인사하며 둘러앉는다. 지치지도 않고 마을과 학교,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고 무언가를 작당한다. 거의 늘 불이 밝혀진 ‘동네부엌’에서는 함께 음식을 만들어 이웃들과 나눈다. 물론 아빠들도 종종 참여하는 것 같긴 한데 마을 여인들의 깨알 같은 이야기 소리가 분수처럼 부서져 흩날리는 듯 하고 잔칫집 같은 부산함이 느껴진다.

학교에는 기타, 장구, 식물도감이나 동화책을 들고 모여 다니는 학부모가 맨날 보인다. 눈이 와도, 비가 내려도, 바람이 불거나 햇볕이 이글이글 뜨거운 날에도 운동장 모퉁이에서는 ‘와글와글 놀이터’가 열린다. 아버지들은 퇴근을 하고 모여 ‘은빛가족캠프’, ‘베짱이음악회’, ‘금암문화예술제’와 같은 마을 잔치를 준비한다.

우리 학교와 마을은 조용할 날이 없는 것 같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은 토요일에 모여 ‘녹색장터’를 열어 아이들 스스로 쓰지 않는 물건을 들고 와서 파는 마당을 열고 음식을 만들어 나눈다. 올해에는 기타와 장구와 식물도감과 동화책과 굴렁쇠를 들고 다니던 학부모 동아리 회원들이 학교에 더 깊숙이 들어왔다. 아이들의 동아리 활동을 지원한 것이다.

아이들은 마을의 이야기를 가지고 국어 공부를 했으며 마을의 산과 하천에서 과학 공부를 했고 마을의 아름다운 조형물을 찾아다니며 미술 공부를 했다. 마을의 이야기를 가지고 공부를 하니 누구 하나 뒤로 빠지는 아이가 없다. 마을의 어른들과 내 삶의 터전인 마을을 공부하니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가까이 다가가 만나게 된 저들은 내게 너무나 큰 감동이었고 아름다움이었다.

 나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마을 공동체란, 마을이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것은, 마을에서 학교는, 마을에서 교사는 무엇일까? 때로는 이미 단단해져서 흩어질 수 없는 마을 공동체가 그려지기도 했고, 경쟁이 사라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만 남은 건강한 교육이 펼쳐지는 그림이 그려지기도 했다. 이 마을에서 자란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 마을의 일꾼이 된 모습을 그려보며 혼자 가슴이 뛰기도 했다. 그럼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혼란스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흔들어 댄다. 에이 모르겠다. 그냥 같이 스며들어 일하고 가르치고 놀다보면 나도 어느덧 마을 공동체의 굳건한 일원이 되어 있지 않을까? 나만 혼자 즐거울 수 없으니 동료교사들도 꼬드겨 같이 누려야겠다. 오래도록 더불어 즐겁게 살아보고 싶다. 마을과 학교, 학부모와 교사, 아이들이 경계 없이 어우러지는 곳에서. 
 
 벌써 한 해가 저문다. 검바우마을학교의 학교 대표로서의 나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면서 조금은 바쁘기도 했고, 정신없이 1년이 지난 것 같다. 무엇을 했는지, 어떤 성과를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미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들고 끼어들었던 느낌이다. 그래도 지난 1년 검바우마을학교를 떠올리면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고, 마을공동체의 건강함을 생각하게 했다. 내년엔 마을 사람들과 더 자주 만나야겠다. 앞으로도 쭈욱 이어져야할 우리 마을 공동체의 모습에 대해 더 깊이 이야기를 나누고 그림을 그려야겠다. 마을 가운데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 심어야겠다.    

김태은 / 은빛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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