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과 함께짓는 마을학교 15]

연극의 3요소는 희곡, 배우, 관객이다. 이렇듯 단편적으로 기억나는 연극이라는 장르를 시도하다니 조금은 모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서는 설렘이 일렁거리고 있는 건 왜 일까? 생활연극이라고 했다.
 
그리고 동네배우 놀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이완되기 시작했다. 그래! 마을극단의 3요소는 일상(희곡), 마을사람(배우), 이웃사람들(관객)이라고 설정하고 시작해 보자. 마을살이를 하면서 정리되지 못한 이야기를 이슈로 하여 마을이라는 무대에서 서로를 이야기하는 한 바탕 푸닥거리 같은 무대라면 어떠랴!
 
단골 술집에 앉아서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며 안주 삼아 나누던 이야기를 무대 위에 올려 볼 수 있겠다. 아이들 교육이야기를 하고, 동네 변화를 말하고, 직장의 애환을 나누고, 이웃을 걱정하듯이 그렇게 서사적인 형식으로 꾸며보는 생활연극, 마을극단이라면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덤벼들었다.
  
동네 배우 할래요?  
 
마을에는 무척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 이런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마을에 나와서 방향을 공유하고 뜻을 모아서 공동체를 이루려면 커뮤니티의 확장이 필요하다. 판을 크게 펼친다는 뜻이 아니라 소중한 이를 위해 차려놓은 밥상을 덮는 조각보와 같은 정성이 필요하다. 다양한 의미와 작은 이야기들이 알록달록 빛을 발해야 하고 그 조각을 모서리를 잘 맞대서 경계선을 꿰고 짜고 지어야 그 작은 조각들이 드디어 큰 보자기로 완성된다.
 
우리 마을에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피어나면서 어울려 산다. 이 이야기들이 문화가 되기까지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인문학이 바탕이 되고 증거가 된다. 이를 꿰어서 발현하는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신문이나 문집 같은 글의 형식, 음악회나 문화제 같은 보여주는 장, 토론이나 강연처럼 이야기로 풀어내는 형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축적된 삶의 이야기나 이슈를 서사적인 연극형식으로 풀어보는 것을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말이 더 적확할 것이다. 그러던 차에 은평시민대학 진관캠퍼스를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디자이너 ‘르봉’이 올해 초에 느닷없이 훅...! 하고 제안했다. “동네 배우 어때요?”
 
“동네 배우 어때요?”
 
“음... 좋을 건 같은데... 누가 선뜻 나설까요?”
“내친 김에 마을극단 어때요?”
“으음... 일단 모집부터 해 봅시다...!”
이렇게 망설이면서, 주저주저 하면서 돛을 올렸다.
 
연극이라고 해야 일 년에 겨우 한 두 편을 보는 처지인지라 저어하기도 했고 잘 모르는 분야라서 불안감이 앞섰다. 여러 가지 단편 지식을 모아갔다. 특히 문학청년 시절에 문학공부를 하면서 잠깐 빠져들었던, 브레히트의 민중연극으로 삶을 기초한 서사적, 서술적 형태의 연극이론이 떠올랐다.
 
우선 우리의 도시적 소외와 헐벗은 일상을 꺼내서 서사적이면서 에피소드 같은 삶을 무대에서 이야기하고 토론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시대의 삶의 고뇌와 희노애락을 담담하게 창작극으로 풀어 볼 수도 있겠다. 아니면 까짓거 <햄릿> 한 번 도전 해보지 뭐!. 역량이 안되니 주변의 도움을 청하면 되겠다 싶다. ‘동네 배우’, ‘마을 극단’인데 잘 못하면 어때? 하는 마음으로 서로 용기를 주고 받으며 일단 일을 벌이기로 한다. 
 
‘눈사람’ 등 몇몇 주민들과 은빛초 선생님들과 상의하여 의기투합하고 ‘르봉’이 포스터를 디자인해, 드디어 동네 곳곳에 모집광고가 나붙었다. 여러 가지 반응이 되돌아 왔다. 차마 안스러운 표정부터 무척 고대했다는 극과 극의 반응이 나왔다. 물론 대부분이 걱정해 주는 멘트였다.
 
마을 극단 어때요?
 
“인디언, 또...?”
“아니... 이번엔 ‘르봉’이 저질렀어...”
“너무 낯선 장르여서 사람들의 호응이 있을까요...?”
“그러게, 걱정이네! 주변에 끼가 있는 사람 있으면 소개해 줘...!”
“그렇지만... 동네에 마을 극단 하나 있으면 좋을 거는 같아요!”
“그렇지요? 동네 배우 어때! 마을 극단 함께 할래요?”
 
이렇듯 노심초사로 시작했다.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마을 일이 비슷하게 진행되지만 이번 극단 일은 새로운 도전과 가치 창출을 염두에 두고 기획했다. 사물이나 사건은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표면이 있지만 그 한 겹 속에는 사회적 함의가 있다. 더 깊은 곳에는 심연이 배태하고 있는 가치와 지향을 지니고 있다. 연극이란 매개체를 통하여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리해 보았다. 깨어있는 시민, 시대 읽기, 공동체 다지기, 시민 교육 등 다양한 지향적 어휘들이 도출되었지만, 일단 이면으로 내려놓고 도틀도틀한 맨 바닥에서 생각을 모아가기로 하자.
 
한 축은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연극 활동을 하고 ‘배우 되기’를 꿈꿔 보는 것이고, 다른 한 축에는 공동체라는 마당에서 마을과 시대라는 시공간에 존재하는 이슈를 꺼내서 대사를 통하여 동네 사람들인 관객과 ‘시민 되기’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참가자 각자의 참여하는 동기와 목적이야 어찌되었든 크게 상관이 없다. 연극으로 가는 ‘생각’이 있으면 무엇이든 괜찮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떤 도구로 ‘생각’을 생각하던지, 어떤 통로로 ‘생각’하던지 마을과 시대상이 있으면 된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이 생각들을 모아서 우리의 생각으로, 우리 극단의 목소리로 빚어보면 되리라고 뜻을 모아갔다. 
 
‘불어 터진 만두’가 탄생하다.
 
우와! 이렇게 모인 사람이 20여명이다. 은빛초와 북한산초 학부모, 학교 선생님, 동네 거주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여 형형색색의 표정으로 조각보를 만들 재료가 꾸려졌다. 그리고 이제 우리만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먼저 <기초 이론 및 연극놀이>라는 틀에서 다양한 공부가 7강으로 꾸려졌다. 성미산마을극단 ‘무말랭이’의 배우 유창복 씨, 늦깎이 영화배우 김정수 씨, 극단 ‘현장’의 성대복 대표 등의 여섯 강사를 모시고 마을 극단 만들기와 배우와 연출의 기초 공부를 하고 대학로 연극관람도 함께 하였다.
 
이렇게 기초공부를 하는 도중에 가까운 펜션에서 1박2일 워크숍을 갖게 되었다. 모두들 자기를 색깔을 드러내고, 꽁꽁 동여맸던 끼를 풀어놓았다. 밤은 깊어갔지만 모두들 투명해졌다. 아침에 드디어 마을극단의 이름이 지어졌다. ‘불·터·만’이란다. ‘불어 터진 만두’라니... ‘열정을 모두 불태워 빈 터만 남았다’라나? 이렇게 검바우마을극단 <불터만>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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