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설계자 박종원 씨가 아이들과 자유롭게 노는 법

 
* ‘조화로운 삶과 사람’은 은평에서 대안적 삶을 꿈꾸는 사람들(곽선미, 문명희, 강은주)과 은평시민신문 편집국이 함께 기획하는 연재입니다.
 
▲놀이설계자 박종원

 
 “아가씨, 아가씨." 아이들은 아가씨라 부른다.
 동네 사람은 고길희라 부른다. 코끼리를 우리말로 풀어쓴 별명이다.
 동료들은 쌤쌤이라고 한다. 
 "이봐요. 고기." 
 한쪽에서는 고기라 불리기도 한다.
 "뭐 하는 사람이유?" 
 그의 직업이 궁금한 집주인 할아버지가 물었다.
 여러 별명으로 자유로이 불리는 골목놀이연구소 연구원 박종원 씨는 스스로도 딱히 뭘 하는 사람이라 못 박지 않는다. 
 "아이들과 놀고 있고 더욱 잘 놀고 싶은 사람입니다."
 
쓰레기에서 장난감을 찾다
 
골목놀이연구소가 있는 옥탑에서 박종원 씨를 만났다. 깡통난로에 오징어를 구워 먹으며 인터뷰를 했다. 난로는 그가 주운 깡통으로 직접 만들었다. 
 
박종원 씨는 몇 년 전부터 쓰레기를 주우러 다녔다. 놀잇감을 구하기 위해서다. 모은 페트병으로 아이들과 팡팡총이나 바람개비를 만들었다. 병뚜껑으로 딱지치기를 했다. 깡통난로로 라면도 끓여 먹었다. 죽부인을 가져와 스탠드 갓으로 씌웠다. 틀을 깨는 자유로운 놀이를 구상하다 쓰레기를 줍게 되었다. 줍고 모으다 보니 놀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이들한테는 손에 잡히고 발에 차이는 게 장난감이 됩니다. 놀아봤던 아이들은 쓰레기가 아니라 놀거리로 보입니다."
 
되는 대로 놀다
 
어렸을 때도 그렇게 놀았다. 흑산도 옆 다물도에서 자란 박종원 씨는 집 앞 마당이 바다였다. 전기도 없고 TV도 나오지 않았지만 놀거리는 지천이었다. 깡통 주워 쥐불놀이하고, 작대기 주워 낚시하고, 비 오면 흙탕물에서 놀았다.  
 
지금도 아이들과 그렇게 논다. 일주일에 한번 동네 아이들과 숲이나 공원으로 간다. 아이들은 넓은 데서 마음껏 소리 지르며 뛰어다닌다. 나무에 오르고 농구골대도 탄다. 싸우고 달리고 쫓고 쫓기며 마음대로 돌아다닌다. 선생님은 순서를 정하지도 조율하지도 않는다. 싸우는 아이를 말리기보다 한 호흡 더 기다려 준다. 
 
"도시의 골목은 차가 주인이 되었어요. 놀이터는 그곳에서만 놀라고 한정짓는 느낌이 있고요. 넘나듦이 자유롭고 움직임의 경계가 없는 데서는 하고 싶은 것이 막힘없이 나옵니다. 그게 놀이입니다."  
 
그의 놀이에는 정형화된 프로그램이 없다. 실내처럼 공간이 협소한 장소에서 놀기 위해 페트병 등 놀잇감을 준비한다. 팡팡총을 만들려 하지만 아이들이 입으로 불면 나팔이 된다. 바람개비를 만들려 하지만 발로 차면 축구가 시작된다. 골목에서도 손에 잡히는 대로 논다. 돌이 있으면 돌로, 종이가 있으면 종이로, 가능한 뭐든지 놀이가 된다. 박종원 씨는 기왕이면 놀잇감 없는 놀이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자연스런 본성이 흘러나오는 건 스스로 만드는 데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뭐 해야 되요?"라고 아이들이 묻는데, 뭘 할지 묻기보다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놀고 싶은 대로 놀다 보면 스스로 찾는 법도 배웁니다."
 
동네 아이들과 놀고 싶어 놀이설계자로 나서다
 
틀이 없는 그의 놀이처럼 박종원 씨도 목적이나 이루고자 하는 바 없이 지금까지 왔다.  
 
20대 때는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와 봉천동 공부방 아이들의 학습지도를 하며 아이들과 엮이고 묶이고 연결되었다. 체험학습단체인 고무신학교에서 일하며 아이들과 노는 데 눈이 뜨였다. 선생님을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는 곳, 놀면서 스스로 배우는 고무신학교에서 놀면서 수업하는 새로운 방식을 배웠다. 은평에 와서 아이들과 동네에서 마주치는 게 좋았고 동네 아이들과 계속 놀고 싶었다. 여태까지 배운 걸 풀어보고도 싶었다. 본격적인 놀이설계자로 나선 건 이때부터였다.
 
박종원 씨가 연구원으로 있는 골목놀이연구소에서는 그리 대단한 연구를 하지는 않는다. 
 
"골목에서 뭐하고 놀까, 뭘 하면 재밌을까 연구합니다. 모닥불 피워 놀고 별 보고 놀며 생각합니다." 
 
내가 애들과 노는 게 아니고 아이들이 나와 놀아주는 거다
 
아이들이 ‘아저씨’라고 부르면 ‘선생님으로 불러’라고 할 법한데 박종원 씨는 ‘나 아저씨 아니야, 아가씨야󰡑라고 한다. 아이들은 깔깔대며 '아가씨'라 불러댄다. 격이 없는 관계를 원하는 그는 아이들에게 만만한 어른이고 싶다. 
 
아이들이 박종원 씨와 노는 걸 본 부모들은 한 번씩 충격을 받는다. 거침없이 놀고 막힘없이 뿜어내는 아이들의 에너지는 꽉 짜인 사회 시스템에 맞추어 살아가는 어른들이 잊고 있던 자연스런 본성을 깨닫게 한다. 숲에서는 숲과 하나가 되고, 넓은 데서는 광장과 하나 되는 아이를 목격하며 ‘아, 저게 원래부터 있는 우리 모습’이라며 놀라워한다. 정형화되지 않은 그의 놀이는 자연인으로 태어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내가 애들과 노는 게 아니고 아이들이 나와 놀아주는 거예요."
 
그가 자주 하는 말이다. 뒤집어 바라보고 거꾸로 생각하는 박종원 씨는 한계를 밀어내고 보편이라 믿는 사고를 다시 한 번 살피게 한다. 제한 없는 놀이를 통해 아이들의 본성이 막힘없이 드러나듯 박종원 씨도 아이들과 놀면서 살아있다고 느낀다. 
 
자유로움을 잊지 않은 비범함 
 
규정되지 않은 나는 불안하다. 형식이 없으면 혼란하다. 안정을 찾으려 틀에 기댄다. 대다수가 그렇다. 박종원 씨는 틀을 깨고 있다. 쓰레기를 줍고 되는 대로 놀며 거꾸로 사는 것 같지만 그는 단지 자유를 잊지 않을 뿐이다. 그는 처음부터 자연인이었고 경계 없이 움직였다. 우리도 그랬다. 다만 잊고 있을 뿐이다. 아저씨보다 아가씨로 불리는 그는 원래부터 자유로웠다는 걸 잊지 않고 살아가는 흔치 않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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