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사람의 십년> | 펑지차이

독서가 일천해서 ‘내 인생의 책’을 함부로 꼽기가 망설여집니다.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책은 가장 최근에 읽은 책입니다. 펑지차이의 <백 사람의 십년>. 중국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이어서 읽다보니 중국의 근현대사에 관심이 생겼는데 마침 독서모임 장소로 이용하는 책방에서 중국 문화혁명 시기에 보통 사람들이 겪었던 실화를 엮은 이 책을 추천해주셨습니다. 부제 그대로 문화혁명 당시의 ‘집단 열정의 부조리에 대한 증언’입니다.
 
저자 펑지차이는 ‘상흔 문학 운동’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신도 문혁 당시 박해를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저자는 우파로 몰려 온갖 고초를 겪다가 간신히 풀려난 친구의 탄식을 듣고 문혁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태어난 사람들은 우리가 이렇게 살았다는 걸 알 수 있을까? 앞으로 세월이 흘러 우리가 모두 죽으면 우리 세대가 겪었던 일들을 누가 알 수 있겠어? 그렇게 되면 우리는 괜히 헛고생만 한 것 아니겠어? 지금 이런 일들을 기록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거야?” 저자는 후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일부러 보통 사람들의 경험을 기록했다. 밑바닥 민초들의 진실이 바로 역사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약 10년 동안, 3만4,800명 사망하고 70만 명 이상이 박해를 받은 (중국정부 공식발표) 문혁은 1976년 사인방이 체포되면서 '공식적'으로 종결되었습니다. 중국정부는 1981년 ‘약간의 역사적 문제’에 대한 당의 결의를 통해 ‘문혁은 마오쩌둥의 개인적 과오로, 린뱌오와 장칭 등 반동 세력에 의해 당과 인민들에게 많은 재난을 몰고 왔다.’고 평가하며 마오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는 과오보다는 공이 더 많은 혁명적 지도자’라고 덧붙였습니다. ‘혁명적인 마오쩌둥’은 여전히 ‘붉은 태양’으로 숭배되고 있지만 끔찍한 고통 속에서 10년의 세월을 지나왔던 인민들에게 그 누구도 공식적인 사과나 반성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결국 중국 역사에서 생략된 문혁 10년의 비극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문혁을 20세기 인류역사에서 파시스트의 폭력과 함께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규정한 저자는 문혁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인간의 약점과 질투, 겁약, 자아, 허영, 나아가 인간 본성의 장점, 용기, 성실함, 진실 등이 모두 동원된 것이 바로 문혁이다. 그것은 내게 정치가 일단 휴머니즘을 벗어나면 사회적 비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 책에 실린 이십 여 편의 이야기 모두 문혁의 거대한 광기에 희생된 인간 개개인의 처참한 삶의 기록이지만 또한 한편의 부조리연극과도 같은 어처구니없는 역사의 증언이기도 합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반혁명분자가 되고 문혁이 끝났다고 왜 어느 날 갑자기 죄가 없어졌는지 또 자신이 겪었던 비극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이해하지 못해 괴로워합니다. 살아남은 자의 행운이 남긴 고통은 죽은 자의 불행보다 가볍지 않습니다. 가해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홍위병 출신은 이렇게 통곡합니다. “그 당시 십대에 불과했던 우리에게 누구도 그런 행위가 패륜적이고 범죄적인 것이라고 말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어른들은 우리를 부추겼고, 우리는 그것이 정말로 위대한 혁명을 하는 일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문혁이 끝난 뒤, 우리는 마오쩌둥의 충실한 어린 혁명가에서 하루아침에 부모와 선생을 고발하고 학대한 패륜아가 되었다.”
 
이 이야기들을 단지 바다 건너 다른 나라의 기이한 역사로만 여길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수십조의 혈세를 쏟아 부은 강은 온통 녹조로 뒤덮이고, 수백 명이 찬 바다 속에 수장을 당했는데도 책임은커녕 진실을 밝히라는 목소리마저 탄압 당하고, 노동자들은 탑 위에서 길바닥에서 밥을 먹기 위해 밥을 굶어야 하고, 빼앗기고 쫓겨난 이들이 연일 자살과 사고로 ‘인신공양’을 하는데도 섹시한 소비와 무한경쟁의 질주를 멈추지 못하는 사회. 그러면서도 인민의 눈과 귀를 막은 채 '애국'을 강요하는 이 황당한 국가가 바로 야만과 광기의 ‘상시적인 문화혁명’의 시대에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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