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나무와 오디열매
이름의 유래가 정겹다. 뽕나무 열매 오디는 맛이 좋고 변비에도 효험이 좋다고 한다. 위의 소화기능을 촉진시키고 대변의 배설을 순조롭게 해준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먹기도 하는데 먹고 나면 방귀가 뽕뽕 나온다고 해서 뽕나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근거는 명확치 않지만 그럴싸한 이야기이다. 오디는 가난한 시절 훌륭한 간식거리였다. 지금도 길을 걷다 뽕나무를 만나게 되면 오디가 달렸나 유심히 쳐다본다. 보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잘 익은 열매 하나만 먹어도 입술과 혀가 보라색으로 변한다. 손가락도 함께 물든다.
 
오디가 달리는 나무에는 산뽕나무와 뽕나무가 있다. 둘은 아주 가까운 친척이다. 굳이 서로를 구분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도감에는 엄연히 다른 나무로 소개하고 있다. 뽕나무는 식재하여 키우는 나무이다. 반면 산뽕나무는 숲에서 자생하는 나무이다. 그래서 뽕나무는 특별히 재배하는 곳이 가까이 있지 않는 한 보기가 쉽지 않다. 반면 산뽕나무는 도시 인근의 야산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은평의 작은 산에서도 많이 자란다. 둘을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굳이 구분하자면 뽕나무는 어린 가지에 가늘고 짧은 털이 밀생하다가 성장하면서 사라지는 특징이 있고, 산뽕나무는 암꽃의 암술대가 2mm 정도로 발달하고 끝부분이 길게 2개로 갈라지는 것으로 비교된다. 하지만 뽕나무는 대부분 재배하는 것이라 사람이 밭을 일군 곳에서만 볼 수 있어 도시에서 만나는 뽕나무는 대부분 산뽕나무라고 불러도 무방하겠다. 
 
삼한시대부터 한민족과 함께 해온 뽕나무,
서양에선 지혜의 나무라고 불러
 
뽕나무는 꽤 오래 전부터 우리 삶과 함께했다. 뽕나무를 키워 누에를 치고 비단을 짜는 일은 예부터 농업과 함께 농상(農桑)이라 하여 나라의 근본으로 삼았을 정도다. 언제부터 누에를 쳤던 것일까? 옛 문헌으로 보면 삼한시대 이전부터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고구려 동명왕 때와 백제 온조왕 때 농상을 권장하였고, 초고왕 때는 양잠법과 직조법을 일본에 전해주었다는 옛 기록도 있다. 양잠은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더욱 강조되었던 것 같다. 조선 태종 때는 집집마다 뽕나무를 몇 그루 씩 나누어주면서 심기를 거의 강제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이후 세종으로 내려오면서 누에치기를 더욱 독려했는데 각 도마다 좋은 장소에 뽕나무를 널리 심도록 하였고, 누에치기 전문기관인 ‘잠실(蠶室)’을 설치했다. 중종 원년(1506년)에는 보다 효율적인 관리를 위하여 각 도에 있는 잠실을 서울 근처로 모이도록 했는데 그 장소가 오늘날의 서초구 잠원동 일대라고 한다. 이런 양잠의 중요성은 우리의 전통 지리체계인 풍수에도 일정 정도 영향을 줬던 것 같다. 경복궁 남쪽에 위치한 남산은 풍수지리의 안산(案山)에 해당하는데 이 산의 생김새가 누에를 닮아 잠두봉(蠶頭峯)이란 별명이 있었다. 그래서 서울의 정기를 돕고 그것을 유지하려면 누에의 먹이가 되는 뽕나무가 많아야 한다는 생각을 낳게 되었고, 이런 연유로 서울에는 뽕나무를 많이 심게 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이런 기록도 있다. 세종 5년(1423) 잠실을 담당하는 관리가 임금께 올린 공문에는 "경복궁 안의 뽕나무 3천590주와 창덕궁 안의 뽕나무 1천여 주와 밤섬의 뽕나무 8천280주로 누에 종자 2근 10냥을 먹일 수 있습니다"는 내용이 나온다. 기록대로라면 한강의 밤섬에도 나라가 직영하는 뽕나무밭이 많았던 것이다. 여하튼 잠실, 잠원동, 밤섬은 뽕나무를 빼놓고는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지명이다.
 
뽕나무든 산뽕나무든 어떠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고 옮겨심기도 쉬우므로 가지치기만 잘 해주고 병충해 관리만 적절히 해준다면 정원에도 심어 봄직한 나무이다. 서양에서는 뽕나무를 지혜의 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봄에 가장 늦게 싹을 틔워 꽃샘추위에 피해를 받을 염려가 적은 특징을 보고 사람들은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있는 나무라고 생각했나보다. 그래서 고대 로마 인들은 이 나무를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에게 바쳤다고 한다. 영국 정원사들 역시 뽕나무를 ‘지혜의 나무’라 부르며 농부에게 지혜를 준다고 믿었다. 뽕나무의 잎이 나오면 지혜의 나무가 잎을 피웠으니 이제 모든 추위가 사라졌다고 믿고 씨를 뿌렸다.
 
뽕나무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
 
뽕나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원래는 ‘주목’에 대해 쓰려 했었다. 어제 저녁 급하게 뽕나무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었다. 언니가 세 들어 살던 집 근처 텃밭에 아내가 산뽕나무 한 그루를 화분에 심어 키웠었다. 언젠가 실내 화분에 뿌렸던 뽕나무 씨앗이 발아해 애기 나무가 되었다. 씨앗이 싹을 틔우는 모습은 언제 봐도 신기하고 경이롭다. 나무 씨앗은 덩치가 있기 때문인지 더욱 그렇다. 그렇게 움튼 어린 나무를 큰 화분으로 분갈이한 후 야외 텃밭으로 옮겼던 것이다. 해가 다르게 쑥쑥 자라던 나무는 어느 날 화분 바닥을 뚫고 대지 속으로까지 뿌리를 뻗었다. 시간 나면 흙으로 옮겨 심을 생각을 했는데 불가능해졌다. 화분을 품에 안고 살아가는 뽕나무라니 이건 신문기사감이라 생각하며 무럭무럭 잘 자라기를 바랐었다. 키도 2m를 훌쩍 넘어 3m 가까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나무를 집 주인이 잘라 버린 것이다. 언니가 전세 기한이 마감돼 새집으로 이사하고 난 불과 며칠 후의 일이다. 나무를 애지중지하던 아내는 망연자실했다. 가까운 주변에 연고가 없어진 나무라도 엄연히 살아 있는 생명체이고, 나무를 심은 사람이 주변에 살고 있는데 일언반구 없이 잘라버리다니! 아내는 죽은 나뭇가지라도 잘라 가져오길 바랐다. 나무는 살아 있을 때도 아낌없이 베풀지만 죽어서도 그 쓰임새를 다한다고 했고, 다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
 
톱을 들고 베어진 나뭇가지 옆에 섰다. 혹시 나무를 잘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죽은 나무와 산 나무는 자르는 느낌이 다르다. 죽은 나무는 둔탁하고 메마르다면, 산 나무는 물렁거리며 부드럽다. 베인 지 오래지 않는 산뽕나무 줄기를 다시 일정한 크기로 토막 냈다. 천수를 누르지 못한 산뽕나무에게 애도를 표했고 주인으로서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함을 전했다.
 
가지런히 자른 나뭇가지를 집으로 옮겨왔다. 뽕나무는 쓰임새가 많다. 한방에서도 요긴하게 이용한다. 겉껍질을 제거한 뿌리를 상백피라 하여 이뇨제를 비롯하여 소염제, 진해제로 이용하고, 가지는 경기나 부종에 꽃은 뇌빈혈에 잎은 습진이나 월경통에 오디는 변비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상백피를 물에 끓여 누룩을 넣어 술을 빚으면 뽕나무술이 되는데 아주 몸에 좋아 불로장수약으로까지 칭한다. 뽕나무 뿌리 달인 물로 모근을 적시면 탈모증, 지모증, 곡모증, 사모증, 적모증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어린 잎을 나물로 먹거나 식량이 귀할 때면 여름에 잎이 무성할 때 잎을 따서 말렸다가 빻아 곡식 가루와 섞어 먹기도 하였다.
 
뽕나무는 겉껍질은 세로로 깊게 갈라지고 안껍질은 노란 것이 특징이다. 나무속은 황색빛을 띠고 있어서 독특한 정취가 있고, 단단하고 질기며 잘 썩지 않는다. 그래서 옛날에는 밤나무와 같이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위패를 만들었고, 나무배의 겉 판자를 잇는 나무못으로 쓰기도 했다. 뽕나무는 그런 나무다. 가지고 온 나뭇가지를 어떻게 할까 아내는 지금 궁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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