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어.” 유명 관광지에 가면 너도 나도 사진 찍기 바쁘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직접 음미하고 체험하러 온 것이 아니라, 사진 찍으러 온 사람들처럼 보인다. 여행이나 관광뿐이 아니라 일상 중 어딜 가도 신기한 것이나 맛있는 것이 있으면 우선 사진부터 찍는다. 즐겁고 행복한 일상을 사는 것보다, 그것을 기록하고 주위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부가 되어 버렸다.
사진은 디지털 기술이 가져다 준 가장 큰 혜택 중의 하나이다. (필름 제조회사와 사진관들에게는 재앙이었지만). 사진을 찍고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주 쉽고 저렴해졌다. 부잣집의 상징적 소유물이었던 카메라가 이제는 볼펜처럼 누구나 들고 다니는 물건이 되었다. 사진 동호인들의 카메라도 과거 사진기자나 사진작가들만 들고 다니던 고급 카메라 수준을 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잘 찍은 사진만을 골라서 액자에 끼워 걸어두거나 앨범에 고이 간직하던 시대도 지나갔다. 1~2만 원짜리 메모리스틱이면 평생 찍은 사진을 저장하고도 용량이 남는다.

사진을 찍고 보여주기가 쉬워지면서 새로운 문화양식이 생겼다. 그 중 하나가 자랑하기이다. 디지털 사진이 페이스북이나 카톡과 같은 SNS와 결합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내가 이렇게 멋진 곳에 와 있다고 자랑하거나, 내가 이렇게 맛있는 것을 먹고 있다고 자랑하기가 쉬워졌다. 겸손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아날로그 세대들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 있지만, 출산사진부터 디지털 저장을 해온 요즘 신세대에게는 자연스러운 생활방식이다.

디지털 사진은 남들에게 자기를 보여주는 방식만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보는 방식도 바꾸어 놓았다. 과거 아날로그 카메라의 단점 중의 하나는 나를 찍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나를 찍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그래서 사진을 찍으려면 남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런데 소위 “셀카”가 가능해지고 “셀카봉”이 등장하면서 “셀피”의 시대가 도래했다. 내가 본 나를 언제든지 저장하고 감상하고 자랑하는 “셀카놀이”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았다.

디지털 사진의 범람은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도 유발하고 있다. 과거 사진이 귀하고 부족하던 시절의 인류는 정보를 교환하고 사실과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해야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지식이 개발되고 언어로 기록하면서 인류문명의 발전을 가져왔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인류역사에 가장 큰 기여를 한 발명품으로 금속활자를 꼽는다. 그런데 디지털 사진의 발달은 인류의 지적능력과 언어능력을 퇴화시키고 있다.

요즘 한국 언론에 유행하는 “카드뉴스”라는 것이 그러한 일면을 보여준다. 뉴스를 전달하되 글자 수를 적게 하고 사진과 그림을 많이 넣는 방식이다. 카드는 원래 유치원생이나 저학년 초등학생처럼 지적능력이나 언어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어린이들에게 사용하기 위해 사용하는 교육방식이다. 한글이나 알파벳, 구구단처럼 기초 단순암기 교육에 효과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다 큰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카드뉴스를 보고 있다. 고등교육을 받은 성인들이 그림책을 보고 있는 꼴이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으로 전달되는 대부분의 메시지들도 아동 그림책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디지털 사진의 보급과 더불어, 몸은 어른이지만 정신은 아동수준에 머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스마트폰 덕분에 점점 지적능력이 퇴화되고 있는 21세기 인류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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