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구, 마포구, 일산 세 지역을 다 합쳐야 500여 대. 개인이 소유한 공중전화 숫자입니다. 은평구 갈현동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15년째 운영하는 저는 올해 들어 고장이 잦은 공중전화기를 10여 차례 AS를 요청한 끝에야 얼마 전 수리를 마쳤습니다. 환갑이 가까운 나이의 직원이 오셨는데요, 전화기를 보시곤 멋쩍은 듯 나를 쳐다보시며, “꼭 수리하셔야 합니까? 쓰는 사람 있어요? 전화기 구하기 힘든데…”라고 귀찮은 듯 지나가는 말로 구시렁거립니다. 전화 요금은 한 달에 만원 안팎, 하루 이용객 두세 명.
“꼭 있어야 하나요?”
“글쎄요. 고장이 나서 고치긴 하는데…. 없으면 제가 너무 허전할 것 같습니다.”
잠시 땀을 닦던 직원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5층 옥상 문을 열어 달라고 합니다. 잠시 후 옥상에서 새 전화선이 내려오고 낡은 선이 잘려져 떨어졌습니다. 날 조수 삼아 잘라진 낡은 선을 걷어 내게 하고, 내려와서는 새 선을 전화기에 연결합니다. 그동안 괴롭혔던 잡음, 충전기 미작동, 동전 걸림 등 불편했던 점들이 한 번에 해결되었죠.
“오래 쓰시고 고장 나면 또 연락하세요.”
거친 숨을 내쉬며 옥상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수고해 주신 형님 같은 AS직원. 처음에 무뚝뚝하게만 보이던 분이, 자신도 정년퇴직 후 다시 일하는 계약 직원이라 관리하는 공중전화기가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다며,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고 하시며 전화기 내부 먼지까지 털어지셨습니다. 고맙기도 하면서 씁쓸하기도 합니다.
케이블 텔레비전이 집마다 자리 잡고 텔레비전 홈쇼핑이 파고들면서 기저귀, 분유 같은 아기용품이 구멍가게 진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동네 비디오 가게도 문 닫은 지 오래죠. 대형 마트뿐 아니라 중앙마트가 동네에 파고들면서 구멍가게에는 채소, 과일도 사라졌어요. 길가에 있던 조그만 가게들이 거의 다 편의점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골목에 있던 작은 가게들이 빈 채로 남아 있고, 간판의 불도 꺼져 있어 골목은 점점 어둡습니다.
아침 8시 30분 출근 가게 문을 열고 먼지를 털고 바닥을 쓸고 15년 된 커피 자판기를 점검하고, 전화기에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고장 유무를 확인하고 그렇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집에서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세 끼를 해결하고 150여 명의 손님을 맞이한 후 자정이 되면 다음 날 주문할 물품을 체크한 후 하루 일과를 정리합니다.
재작년에는 태어나 처음으로 한 달 동안 입원을 했는데 아내가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동안 경제적으로 많은 부담을 짊어진 아내가 장사를 그만했으면 하더군요. 그럴 때마다 전 아내에게 지켜지지 않는 말만 반복적으로 하죠.
“알았어. 조금만 더 기다려 줄래?”
사람들이 묻습니다.
“꼭 공중전화기가 있어야 하나요?”
“장사도 잘 안되는데 건강 해치면서 꼭 해야 돼?”
대답하기 참 어렵습니다. 글쎄요. 잘은 모르겠는데…없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지금 사람들이 필요하지 않다고 불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단지 힘들게 그 자리를 지켜 온 만큼 사람들이 잘 찾지 않을 뿐이죠. 언제까지 이 가게를 할 지 확답을 할 수 없지만, 문 닫기 전까지 공중전화기, 커피 자판기는 함께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골목에서 오랫동안 묵묵히 가게를 지키고 있는 이웃도 함께 해야겠죠.
“참 알려 드릴게요. 공중전화 기본요금은 70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