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국은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첨단기술 국가이다. 휴대전화나 인터넷으로 일상의 모든 것을 쉽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나라이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나 국가예산에서 기술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휴대전화를 비롯한 통신기기는 물론이고 자동차, 조선, 전자기기 등 국산 첨단기술을 탑재한 제품들이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첨단기술이 미래 국가발전의 생명줄이라며 정부도 기업도 모두 신기술과 신제품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첨단기술이 가져오는 심각한 폐해에 대해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고 있다. 기술적 발전은 생활의 편리함과 경제적 풍요를 가져오지만, 그로 인해 치러야 하는 댓가도 만만치 않다. 첨단 기술의 가장 커다란 희생자는 공동체이다. 개인은 편리하고 윤택해지지만, 공동체는 허약해지고 그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 피해는 결국 개인들에게 귀결되어, 첨단기술 사회에 살지만 불안하고 불행한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특히 국가나 가정처럼 명확한 테두리나 정체성이 약한 지역공동체는 첨단기술의 가장 큰 피해자이다. 1990년대 필자가 시민단체에서 활동을 하던 시절, 국내에서 열린 인터넷 관련 국제회의 자리에서 인도네시아 온 시민운동가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는 한국에도 막 인터넷이 보급되던 시절이었고, 시민단체들도 인터넷을 활용하여 보다 효과적인 시민운동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의 질문 중에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은 “인터넷을 하려면 전기가 필요한가요?”였다. 인터넷을 하려면 컴퓨터와 더불어 전기가 들어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는 크게 실망한 듯 보였다. 

 인도네시아 어촌지역에서 활동하던 그는, 인도네시아 가정에 전기가 보급되면서, 정확히는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생긴 부작용을 말해주었다. 가정마다 냉장고를 갖게 되면서, 잡아온 물고기를 이웃들과 나눠먹던 전통적 풍습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자연 이웃과의 교류가 줄어들고, 공동체로서의 유대가 약해졌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도 그러한 예는 농어촌은 물론이고 도시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농촌사회에서도 과거와 같은 공동작업이나 이웃과의 교류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농사기술의 발달로 과거에는 이웃의 도움없이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이제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여 모내기를 하고 추수를 하고 타작하는 광경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각자의 경운기나 트랙터나 이양기로 혼자서 외로이 농사를 짓는다. 쉬는 시간 막걸리 사발을 함께 들이키며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던 농부들이 이제는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휴대전화로 주문한 배달음식을 먹고 있다.    

도시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일터는 각기 달라도 한 지역에 모여 살면서, 동네슈퍼나 재래시장을 함께 이용하고, 같은 노선의 버스를 타고 다닌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이 일반화되면서, 공동체 공간으로서 지역시장이나 상점의 기능은 퇴색해 버렸다. 고층 아파트에 모여살면서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함께 사용하지만 이웃과의 교류는 층간소음으로 다툴 때 뿐이다.   

공동체로서 가정의 위기도 심각하다. 과거에는 전화기 한 대를 온 가족이 함께 사용했다. 그래서 한솥밥을 먹는 식구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서로 잘 알고 살았다. 이제는 각자의 전화기로 자기만의 문자나 카톡을 사용한다. 명절 연휴에 모여도 각자의 휴대전화기를 들여다보기 바쁘다.    

페이스북과 카톡 덕분에 보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교류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더욱 불안하고 사회는 더욱 각박해져가고 있다. 개인을 지켜주고 위로해주는 공동체가 첨단기술로 인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결방법이 있을까? 있다면 무엇일까? 아이폰을 개발한 스티브 잡스의 방법을 사용해볼만 한다. 그는 아이패드와 아이폰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용하라고 권했지만, 자기 자녀들에게는 집안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자신이 개발한 첨단기술이 자기자식들과 자기 가정에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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