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과 함께 짓는 마을학교 7]

가을밤에 나누는 음악무대는 메뉴는 비록 조촐했지만 분위기은 절정의 단풍처럼 울긋불긋한 마음들이 모아져 뜨거웠다.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 뭉쳐진 채 웅크리고 있던 가락들이 흥에 겨워 흘러나온다. 빨간 나비 넥타이를 맨 아버지들, 기타를 둘러매고 리허설 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는 어머니들 얼굴에는 이미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었다.

학교의 체육관 겸 대강당인 ‘어울마당’에서 음악회를 하기로 하였다. 음악회하기로는 음향시설과 공간구조가 적절하지는 않았지만, 라이들과 함께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이기로는 이만한 장소도 없었다. 하나 둘씩 리허설 때부터 관객이 모여 들더니, 시작 할 무렵엔 거의 차고 있었다.

“이걸 어쩌죠, 인디언?”, “벌써 오백 명은 넘은 거 같은데!”, “우리 식구 총출동 했는데, 떨리네요. ;;” 이렇게 객석을 바라보면서 한 마디씩 걱정을 풀어 놓더니... 드디어 “이왕 저지를 거, 한 번 해봅시다!”로 귀결되었다. 대중강연에 익숙한 인디언도 낯설은 음악무대에 서는지라 떨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어머니의 재롱잔치 

그러나 이러한 아마추어들의 무대 울렁증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동네음악회를 해야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름대로 줄여서 말하자면, 우선 음악의 일상성을 회복해야하기 때문이다. 성과사회에 살아가면서 일상적 피로에 익숙한 현대인들, 다시 말해 아버지, 어머니, 아이들이 동네에서 만만한 무대를 꾸미고 즐기는 사이에 음악이 일상속의 치유공간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이다. 또한 외부 초청공연을 통해 질 높은 공연을 동네에서 감상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어느 정도 음악에 대한 식견이 있지 않고서는 티브이에 나오는 음악프로그램을 인내심을 가지고 채널을 돌리지 않기에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음악을 대상화 하지 않고 가까운 장소에서 마을행사처럼 감상하는 방법이라고 여겨진다. 세 번째는 아버지들이 동네에서 아이들과 마을주민들을 위해 행사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주체적인 시민으로써 동행을 견인하며 적극적인 마을살이를 통한 공동체의 주인으로 인식해나가는 것이다.

시골 장터같이 시끌벅적한 공연장이 막이 오르자, 기대와 초조로 금방 조용해진다. 일단 화려한 무대의상과 격조있는 무대매너는 관객들을 몰입시키는 힘이 있었다. 주옥같은 아이템들은 주민들 모두가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되도록 익숙한 영화관련 곡과 교과서에 실린 노래들로 구성하였다. 막간을 이용한 악기와 곡에 대한 설명과 약간의 무대 퍼포먼스도 곁들이며 분위기를 유도해 나갔다.

베짱이, 4년이나 되었네요!

올해로 4회를 거치는 동안 1부 공연을 채워준 재능기부 예술가들이 너무나 많다. 3년동안 개막공연을 해 준 경희대 박영숙 교수 무용단과 연출을 맡아주신 정유라 무용가. 첼리스트 최윤희샘, 피아니스트 양하나로샘, 대금연주가 김숨샘, 생황연주가 김효영샘, 장구 및 판소리 권슬기샘, 대북공연가 김보성샘, 한국예술종합학교 젊은 예술가들, 물푸레 합창단, 꿈꾸는 합창단 등 여러 분들 덕분에 아이들과 주민들은 다양한 공연을 동네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이 고마운 분들에게 이 글을 통하여 감사드린다.

1부 외부초청공연이 끝나고, 그야말로 이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준비한 프로그램이 무대에 오른다. 또한 신청한 가족에 한해서 가족별 음악 솜씨자랑도 열린다. 초기에는 동아리별 무대도 마련되었으나 동아리나 방과후 활동관련 발표회는 분리하기로 하고, 식전행사에 관객들의 재미를 위하여 댄스동아리 무대를 마련해 주었다.

아버지들과 남자 선생님들은 매회 노래와 율동을 적절히 조합하여 세, 네 곡 정도를 연습해서 발표하고, 어머니들은 기타동아리, 플롯동아리 등이 일년 내 연습한 것을 무대에 올린다. 또한 1,2부 막간 행사에는 어김없이 풍물동아리가 흥을 돋군다. 학부모 동아리의 지도는 대부분 오광식샘, 장우원샘 등 은빛교사들이 맡아주신다. 1시간 30분 정도의 본 무대 공연시간이 진행자나 관객 모두가 흥에 겨워 30분 정도 연장되기 일쑤이다.

아람제 전야제로

이 음악회가 나름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학교와 마을이 적극적으로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로부터 4회를 거치면서 안정기에 들고 지속가능한 행사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아버지회와 더불어 학교 선생님들의 적극적 참여에 기인하였다. 개교때부터 지속가능한 학교문화를 만들기위해서는 마을과 학부모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던 선생님들이 행사의 주체로써 적극 나서주셨다. 단순히 응원부대가 아닌 행사 기획에 참여하시고, 직접 무대에 오르거나 공연장 세팅에 참여해주었다. 혁신학교 교사사회의 자발적(?) 피로도를 체감하면서도, 새로운 마을-학교의 그림을 함께 그릴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들이다.

첫 공연을 마치고, 초보적 수준을 겨우 벗은 베짱이음악회 참가자들은 자신감과 성취감을 뒷풀이에서 유감없이 발휘하기에 이른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른다고 했던가! 벌써부터 2회, 3회의 계획을 말하고 나서다니, ‘일취월장, 청출어람’이다. 다음해부터는 공로(?)를 인정받아, 학교의 정식 축제인 ‘은빛아람제’의 전야제 행사로 ‘우리동네은빛베짱이음악회’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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