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지만 청소년 기관에 있는 우리에게 오월은 가출의 계절이다. 길 잠을 자도 근육통을 제외하면 몸에 그다지 치명적일 게 없을 따뜻한 시절이 오면 아이들은 집을 나오기 시작한다. 우리가 J패밀리를 만난 것도 가출의 계절이 무르익을 때였다. 

기존 작공 아이들 역시 가출을 하곤 했지만 길어야 열흘이면 상황이 종료되었다. 그래서 J패밀리는 우리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주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아이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고, 아이들은 잡혀 들어가는 것을 호환 마마보다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른들 입장에서 보자면 위법행위로 인한 과오들을 어서 깔끔하게 해결하고 인생의 다음 스텝을 밟았으면 했지만 아이들은 두려움을 차일피일 피하려고만 했다. 

세상은, 어른들은 절대 자기 편이 아니며 자신들의 말을 믿어주지도 않을뿐더러 행하지도 않은 일들까지 덮어씌우려 한다고, 아이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또래 아이들이 무서워 피할 이 아이들은 세상을, 어른들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 후 6개월이 지났다. 아이들은 그 동안 분류 심사원에 다녀오기도 했고 재판을 받기도 했다. 보호 관찰소에 가기로 한 날 가면 잡혀 들어간다는 생각에 도망쳐 우리를 안타깝게 하기도 했고, 번번이 유사한 사건을 저지르는 자식이 감당하기 힘들어 집에 들이지 않는 부모님을 보호관찰 담당 선생님이 설득하여 마침내 집에 들여보내기도 했다. 물론 다시 집을 나온 아이도 있지만.

밥은 먹었는지, 잠은 따뜻한 곳에서 잤는지, 사고 치지는 않았는지….. 우리가 이 아이들을 만났을 때 제일 먼저 점검하는 것은 언제나 이 것이었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날마다, 때로는 일주일에 몇 번 얼굴을 보여주었고 작공이 무엇을 해주면 좋겠냐고 물으면 없어요, 지금처럼 마음 붙일 데로 있어주면 된다고 답하고 했다. 

밀린 숙제를 하겠다고 마음먹기까지 길 위에서 보낸 이 아이들에게는 녹녹하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아이들이 잘못 꿴 단추를 풀어 다시 꿰고 싶어졌을까? 함께 인문학 공부를 하자 손을 끄니 모르는 척, 아니 은근슬쩍 기다려왔다는 듯이 끌려와 주었다. 마이크 앞에서 서로가 생각하는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고, 사진을 감상하기도 했다. 노동 인권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그 동안 알바 경험을 해석하기도 했고, 타인의 입장에 서 보기도 했다. 

공부다운 공부를 해본 지가 너무 아득해서 일까? 아이들은 내 기대를 추월했다. 김현주 샘의 여행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으며 여행 사진에 느낌을 적극 피력하였다. 우리 여행갈까? 생계형 알바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재판을 앞 둔 J를 어쩌면 한 동안 보지 못할 수도 있어서 순식간에 마음이 모였다.

여행경비도 시간도 여의치 않았지만 탁 트인 곳에 가서 숨을 쉬고 싶다는 J를 그냥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일박이일 서울 도심으로의 여행을 감행했다. 벽이 없는 곳을 찾아 가기로 했다. 카메라를 들고. 그 결과 12월 4일 PM 6:00에서 12월 5일 PM 5:00까지 함께한 시간의 기록, <나에게 나를 보낸다> 사진 전시회를 작공에서 가졌다. 

카메라를 든 이 청춘들은 풍경과 사람을 프레임에 열심히 담았다. 스쳐 지나가는 시간에 의미를 도금하고 싶은 듯 기록에 충실했다. 가출 청소년이 아니라 여행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담아보는 아이들은 아름다웠다. 남산 길에 오르며 머리를 빡빡 민 J가 일본에서 온 교복 입은 빡빡이 부대를 만나 이산가족 상봉하듯 반가워하며 도플 갱어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사랑의 자물쇠 중 잘린 자물쇠를 발견하고서는 자물쇠 주인의 삶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게스트 하우스에서 필리핀에서 온 사람들과 바디 랭귀지로 소통해보기도 하고, 남대문 시장 보리밥 골목에서 전투적인 호객 행위에 무서워 도망가기도 하고, 한강 유람선을 타고 겨울바람을 맞기도 했다. 

가출을 하면 딱 일주일만 날아갈 듯 기분 좋다고 아이들은 들려주었다. 그 이후로는 두 다리 뻗고 곤한 잠을 자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골목길 건장한 어른 두 명만 보아도 자신을 잡으러 온 형사 같아서 지레 겁먹고 도망가기 일쑤였고, 자다가도 화들짝 놀라 눈을 뜨기를 두 세 번씩 했다고 했다. 

갈 곳 없는 자신들에게 따뜻한 잠자리와 먹을 것을 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을 이야기 해주기도 했고, 시계 바늘을 되돌릴 수 있다면 처음 사고를 치기 전 즉 부모님의 가슴에 못을 박기 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아직 부모님께 들려드리지 못했을 편지를 쓰기도 했다. 남대문 시장을 사진에 담다 “선생님, 사진을 더 못 찍겠어요. 포장마차 철거하라는 플랭카드를 보니 마음이…” 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밝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해맑았다. 함께 동행한 김현주 샘과 나는 이 아이들을 열심히 도촬하였다. 피하지 않고 자기 삶을 직시해가는 아이들이 고맙고 예뻐 현주 샘과 서둘러 전시 준비를 하였다. 아이들이 카메라에 담은 세상을 전시하였다. 가출과 여행, 공통점은 자유에 대한 갈망이라고 아이들은 말했다. 

하지만 ‘길잠 자던 시절의 자유– 불안함 = 음미하는 자유’가 여행길의 자유라고 말했다. 아이들과 함께한 여행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이 많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참았다. 대신 가출 팸이 여행 길에서 느낀 것들을, 사진 옆에 수줍게 달아 놓은 멘트들을 몇 개 공개하여 여러분들의 상상력을 자극해볼까 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남대문 시장 보리밥집 골목. 세상에서 가장 전투적인 삐끼 선배들. 30년간 한자리에서 한가지만…. 배웠습니다. 그 뚝심!! / 내 안의 괴물, 잡았어요!! / 하늘과 바람과 강물과 우리들…. 삶이 가까이 흐르고 있었네요…. / 사랑의 자물쇠. 누군가 톱으로 자른 자물쇠도 있다. 사랑도 삶도 한편의 희비극일지도 모른다. / 서울 한 중심가로 여행을 갔어. 게스트 하우스의 아침. 필리핀에서 온 사람들과 몸짓으로 이야기하고 놀았어. 다 다른데… 다 같더라고…. / 담배 피는 줄 알았지? 잘 봐.. 갇히는 건 싫어. 그곳이든, 편견이든, 선입견이든… / 세상에 맞짱뜨고 싶었던 적 사실 별로 없었어.사람들이 날 피했지, 내가 사람들을 피한적은 거의 없었어. 날 잡으러 오는 형사나 경찰말고는… / 하늘과 바람과 강물과 우리들…. 삶이 가까이 흐르고 있었네요….

다녀올게. 밀린 숙제 얼른 하고 올게. 이 자유의 맛을 기억할게. 
저 너머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내 인생을 내가 맞으러 갈게…
J야, 잘 다녀와. 우린 이 자리에서 널 기다리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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