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있는 이야기

 

 

 

 

 

올해도 어김없이 김장의 계절이 돌아왔다. “다음 주말에 김장해야겠다. 경희(가명)도 토요일 당직근무하고 저녁에 올라온단다.” 나는 내심 기대했다. ‘올해 드디어 처음으로 시누이랑 같이 김장을 해 보겠구나!’ 

작년 김장 할 때다. 평소 김장때보다 2배나 많았던 배추에 어머님도 엄두가 나지 않으셨는지 지방에 사는 시누이네로 연락을 하셨다. 급한 연락에 당직 근무였던 시누이대신 아주버님 혼자 초등학생 두 아이들을 데리고 오셔서 김장을 거들었다. 그 때 시어머니와 아주머님이 나누셨던 대화가 기억난다. 

“김서방~ 고생하네~ 그래도 자네 식구들이 먹을 거니까 열심히 도와주시게~!”

 “어머니~ 경희(가명)는 어머님 김치솜씨 배우고 싶어서 해마다 김장 때 맞춰서 근무 바꾸려고 하는데 항상 먼저 해 놓고 가지러 오라고 한다고 아쉬워해요. 다음부터는 미리 날짜 맞춰서 같이해요.”

그리고 올해는 진짜 시누이네도 같이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목요일 퇴근하니 이미 모든 배추가 절여져있었다. 금요일 퇴근해서 3시간동안 배추를 씻었다. 올해는 처음으로 남편이 배추 씻기를 도왔다. 허리가 아프단다. (그걸 이제 아셨나요?) 그리고 토요일 아침부터 김치 속 만들고 점심 먹고 본격적으로 김치 속을 버무렸다. 남편도 당직, 시아버님은 외출. 며느리인 나와 어머님은 점심 한 술 뜰 때를 제외하고 저녁 7시까지 쉬지 않고 김치를 만들었다. 

  “어머님~ 허리 아픈데 우리 잠시 쉬었다가 해요.” 

“얼른 다 해 놓고 쉬는 게 낫지, 이렇게 다 벌려놓고 어떻게 쉬냐~ 힘들면 넌 잠시 쉬어라.” 

  어머님이 안 쉬는데 며느리가 어찌 쉴 수 있나요? 어린 남매도 하루 종일 매운 고춧가루 옆에서 TV만 보고 있는 토요일이 너무 또 속상했다. 그리고 밤 9시. 시누이네가 도착했다. 빈 김치통을 내려놓으며 “엄마! 왜 벌써 다 했어? 아이참~! 같이 하자니까~” 

 서로 마음을 나누는 그 곳에 나는 없었다.

그랬다. 시누이는 친정엄마가 고생하는게 안쓰러워서 일 마치자마자 부랴부랴 달려왔다. 친정엄마는 딸이 일마치고 또 김장하느라 고생하는게 싫어서 부랴부랴 김장을 마치셨다.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딸은 월요일 휴무이고 일반직장을 다니는 시어머니랑 며느리는 월요일 출근하는데……. 

그렇게 모녀가 서로 살가운 마음을 나누는 그 곳에 나는 없었다. 내가 소속감과 배려를 느낄 수 있는 틈이 없어서 매년 나는 그렇게 화가 났던 것이다. “올케도 고생 많았네~”라는 시누이의 다정한 목소리도 다정하게 들리지 않았다. 시누이가 아무리 설거지를 많이 도와주어도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올해 설날 만두를 빚을 때도, 추석에 송편을 빚을 때도, 김장을 할 때도……. 나는 여전히 화가 나있었고 해마다 맞는 명절이나 김장이 싫었다. 

퇴근한 남편은 저녁을 먹고 나서 말했다. “그까짓거 했다고 티 좀 내지 마!” 묵은 감정까지 폭발한다. 그런 상황이 벌어질 때 과거의 나는 보통 짜증으로 되받아치거나 울었다. 하지만 오늘은 침묵했다. 

일요일, 시댁에서 모든 가족들이 한가로이 주말을 보낸다. 늦은 아침을 먹고 TV를 보고 오랜만에 깨끗하고 따뜻한 날씨에 놀이터도 가고 마트도 다녀오고……. 나는 주말에 빨래와 청소를 말끔히 해 놓아야 평일에 회사일, 집안일, 육아라는 일상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 부족한 수면도 낮잠으로 보충하고 싶다. 

그래도 내편은 남편뿐

일찌감치 저녁을 먹은 시누이네는 내 마음만큼 무거운 김치를 싣고 집으로 갔다.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에게 나직하게 말을 걸었다. “당신은 내가 왜 기분이 나쁜지 진짜로 몰라?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거야?” “모르지.” 나는 최대한 차분한 어조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말을 이었다. “난 단순하게 육체노동이 힘들어서 화가 난 게 아니야.” 전업주부로 어머님과 함께 있으면서 있었던 그 간의 상황을 차분히 말로 설명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난 한 번도 내 심정을 남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준 적이 없었다. 남편도 처음으로 내 말을 잘라먹지 않고 끝까지 경청해 주었다. 고개까지 끄덕여가며……. 

“어머님이 가장 많이 고생하신다는 것도 알아. 난 그것도 속상해. 내가 며느리지만 같은 여자로써 어머님이 안쓰럽고 불쌍해서. 어머님 혼자만의 희생을 기반으로 다른 가족들이 모두 편하고 행복하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거든. 그리고 그걸 보고 자란 당신은 은연중에 계속 나에게 어머님과 같은 희생을 기대하고 요구하고 있다고 느껴져. 그게 나한테는 항상 부담인거야.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어머님과 당신이 하루아침에 변할 수는 없겠지만 당신은 노력할 수 있잖아. 그리고 내가 단순히 나 혼자 일 좀 더 했다고 속상해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길 바라는 거야, 그리고 당신이 ‘그래 너도 수고했다. 고맙다.’ 고 말해주면 좋겠어.”

 가만히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남편이 아무런 말없이 손을 잡아주는데 눈물이 났다. 정말 오랜만에 남의 편이 아니라 ‘내편’같다고 느껴졌다. 

여전히 변한 것 없는 일상이지만 가슴이 후련해져서 그런지 전보다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도 어머님께 아직 못하고 있는 말을 여기서 속 시원히 해본다. “어머님~! 어머님이랑 저랑 기분 좋게 조금만 만들던지, 어머님 마음껏 많이 하고 싶으시면 온 가족 다 모여서 같이 해요~”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