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죽나무는 이름의 유래가 여러 가지다. 줄기가 거무튀튀한 모습이 때가 잔뜩 낀 모습이라, ‘때가 죽이는 나무’라는 뜻으로 때죽나무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그 중 하나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연상되는 옛 기억이 있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에 정기적으로 신체검사를 했었다. 당시 윗옷을 벗고 팬티만 입은 채 키와 몸무게를 쟀던 것 같다. 다행이 여자애들은 윗옷을 입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는다는 것 자체가 어딘지 불편했지만 정작 공포의 순간은 그 다음이었다. 모든 아이들을 제자리에 세운 담임선생님은 사인펜을 들고 아이들 사이를 순시하셨다.

 

모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몸 이곳저곳을 살펴본 후 자주 씻지 않아 때가 있는 곳을 찾아내면 사인펜으로 표식을 남겼다. 이유인즉슨 그렇게 표시해두면 창피해서라도 씻을 것이라는 의도였다. 얼마나 아이들이 씻지 않았으면 그랬을까 싶다. 씻지 않으면 건강에 해로우니, 나름대로의 선한 의지를 갖고 행한 행위였지만 지금의 인권감수성으로 보면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다.

 

우리 반 담임선생님만 그랬던 건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모습이 일상이었던 것 같다. 어느 누구도 그런 행위가 아이에게 커다란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었나 보다. 난 다행히 사인펜의 공격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렇지만 공포였다는 건 지금도 기억난다. 때죽나무는 개인적으로 그런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나무다.

 

 

하얀 꽃이 땅을 향해 피는 때죽나무의 다양한 이름 유래

 

때죽나무는 도시인근 산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이다. 은평구 봉산, 이말산, 앵봉산, 백련산 등 등산로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어떤 이는 도시환경에 적응력이 높은 나무라고 이야기한다. 건조하고, 끊임없이 대기오염의 공격을 받는 서울에서,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많은 식물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지는데 때죽나무만은 그런 환경을 견디어 낸다. 좋아하는 건지, 적응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런 환경에서 용케 살아가고 있다. 그런 때죽나무가 난 고맙고 안쓰럽다.

 

때죽나무 이름 유래가 많다고 이미 이야기했다. 다른 이름 설을 들어보자. 5월이 되면 하얀 꽃이 땅을 향해 핀다. 한 두 개가 아니라 수백, 수천에 가까운 꽃이 땅을 향해 핀다. 뭐가 그리 부끄러운 건지, 아니면 땅을 동경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여하튼 무더기로 핀 하얀 꽃이 무척 아름답다.

 

그래서일까? 꽃이 땅을 향해 떼로 피는 모습이 정말 죽인다(?)는 뜻으로 때죽나무란 이름이 붙었단다. 꽃이 지고 나면 바로 열매가 맺힌다. 열매 또한 꽃처럼 땅을 향해 무더기로 달린다. 그런데 열매의 머리 부분은 반질반질한 연한 회색이다. 마치 스님의 머리 같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보면 마치 스님이 떼로 몰려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떼중나무로 부르다가 나중에 때죽나무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또 있다. 때죽나무는 에고사포닌이라는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일종의 독이다. 열매를 씹으면 그래서 떨떠름한 맛이 난다. 그런데 이 열매를 빻아 물에 풀면 기름때를 말끔히 없애준다고 한다. 과거 아낙네들은 시냇가에서 때죽나무 열매를 빻은 물로 빨래를 했다고 한다. 이때 옷에 묻은 때를 쭉 뺀다는 뜻에서 ‘때쭉나무’로 불리다가 때죽나무가 된 것이란 이야기도 있다.

 

에코사포닌은 독성이 매우 강해 작은 동물을 마취시킬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게으른 사람들이 냇물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사용했다. 열매나 잎을 돌에 찧어 냇물에 풀면 물고기가 기절해 떠오르는데, 이렇게 떠오르는 물고기만 건져내면 된다. 이때 물고기를 떼로 죽인다고 해서 때죽나무란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우리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린 때죽나무의 쓰임새

 

이런 성질을 동학혁명 때 농민군이 이용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동학혁명에 참여했던 농민들은 무기가 부족해지자 총알을 직접 만들어 썼는데, 그때 바로 때죽나무의 열매를 빻아 반죽하고 화약과 섞어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열악한 조건이었던지라 동학혁명은 미완의 혁명으로 끝난 건 아닐지!

 

이름의 유래가 많다는 건 그만큼 우리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린 나무였다는 반증일 것이다. 몇 가지 쓰임새를 들어보자. 동백나무가 자라지 않는 지방에서는 때죽나무가 대용이 되었다. 열매에서 짠 기름은 머리를 단장할 때 바르거나, 등잔불 기름이나 도료로도 사용했다.

 

이런 나무에는 때죽나무 외에도 쪽동백나무, 생강나무가 있었다. 그래서 어떤 지방에서는 생강나무나 쪽동백나무를 동백이라 부르기도 했다. 예로 김유정의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꽃은 이른 봄에 노랗게 피는 생강나무 꽃이다. 제주도에서는 때죽나무 가지를 띠로 엮어 항아리에 걸쳐놓은 후 빗물을 모은다. 이렇게 받은 물은 오래돼도 썩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때죽나무 줄기는 매끈하면서도 곧고 단단해 목기와 같은 작은 생활용구나 조각물, 농기구와 양산자루, 지팡이 따위를 만드는 재료로도 그만이다. 혹시 이번 주말에 산에 오를 기회가 있다면 때죽나무를 꼭 한번 만나보시길. 그래서 이름의 유래가 그렇듯 정말 때가 잔뜩 끼었는지 꼭 눈으로 확인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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