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철회되어야 한다.

지난 수요일 자율활동 시간에 아이들에게 교육부에서 나온 ‘올바른’ 역사 교과서 홍보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현행 교과서에 유관순 열사가 나오지 않는다는 바로 그 동영상이다. 동영상을 본 아이들은 하나같이 ‘우리 유관순 누나 배웠는데요!’, ‘역사 시간에 배웠어요!’라고 항변했다. 

확정 고시가 발표되기도 전 정부는 예비비 44억 원을 국정교과서 발행을 위해 편성했고, 국정교과서 추진을 위한 비밀 TF팀도 운영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국정 교과서 홍보를 위해 전국의 반상회 조직을 동원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홍보하는 내용도 거짓과 왜곡으로 가득 차 있다. 그 과정도 비민주적이다.

10월 12일 교육부는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만들겠다고 행정 예고하였다. 계획대로라면 2017년부터 정부가 만든 단 하나의 교과서로 전국의 학생들이 역사를 배우게 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계획이 발표된 이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비롯하여 전국 10여 개 대학의 역사학 전공 교수들과 교과서 집필진, 교사 단체, 역사학회들을 중심으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반대하고 국정교과서의 집필을 거부하는 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역사 전문가 대부분이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시도를 반대하고 있다.

정부와 집권 여당은 현행 교과서가 문제라며 국정교과서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과서에는 역사 전문가들이 오랜 기간 연구한 내용으로 학계에서 대다수가 인정하는 역사적 사실과 해석이 담기게 된다. 그 내용과 해석에 대해 이견이 있다면 학계에서 전문가들이 연구와 토론을 통해 해결할 문제다. 그리고 그것이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절차와 방법이다. 정부와 정치인들이 대다수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교과서 내용이 맘에 안 든다고 일방적으로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그 내용을 바꾸겠다는 것은 옳지 않다.

지난 해 초등학교 사회 5-2교과서 실험본이 일부 학교에 배포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대해 서술하면서 일본이 쌀을 ‘수탈’해간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수출’했다느니, 일제가 의병을 ‘토벌’했다는 식으로 써놓은 그 교과서이다.

교과서에서 실린 내용을 하나 살펴보자. 교과서 149쪽에 실린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참고 사진이다. 이전 교과서에 실려 있던 계엄군의 진압과 발포, 시민군의 저항을 보여주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광주 시민들을 향해 발포한 것이 진압군이며 그 책임이 군사정권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새 교과서에서는 관련 사진이 도청 앞 군중들과 영정을 들고 있는 어린아이의 사진으로 대체되었다.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독재 정권의 책임을 감추거나 줄이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를 서술하면서 ‘독재’란 표현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반면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서까지 칭송해 마지않는 새마을 운동은 그 분량이 대폭 늘었다. 이 교과서는 박근혜 정부가 처음으로 만들어낸 국정교과서이다. 집권 여당 대표는 ‘왜 만들지도 않는 교과서를 가지고 반대를 하냐’고 하지만 이 정부가 들어서 낸 첫 국정 역사 교과서를 보면 앞으로 쓰여질 국정교과서에 대해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현재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확하게 말하면 정부에 의한 역사 왜곡은 박근혜 정부만의 작품이 아니다. 2008년 뉴라이트 단체의 대안교과서 출간과 근현대사 교과서 특히 당시 채택률이 제일 높았던 금성 교과서에 대한 좌편향 몰이, 2011년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 수정 강행에 이르기까지 역사 교과서를 제 입맛에 맞게 바꾸기 위한 저들의 노력은 지속적이었다. 그리고 나온 것이 바로 작년 교학사 교과서이다. 이 교과서가 학생과 시민, 교사들의 반대에 의해 거의 모든 학교에서 채택되지 않자,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우리도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어요’라며 손팻말을 든 학생들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가 한창일 때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촛불의 배후가 누구인가?’ 중고생들이 촛불을 들고 나오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작금의 역사 교과서를 바라보는 저들의 입장도 비슷하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부정적 역사관’을 배웠기 때문에 정부 정책에 반대하고, 집권 세력에 반대한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역사 교과서를 통해 배운 것은 ‘부정적 역사관’이 아니라 ‘친일과 매국’, ‘반민주, 독재’에 대한 부정이다. 역사를 통해 국민을 거스른 세력은 심판을 받고, 제 운명을 다한다는 것을 배운다. 이것이 잘못된 역사관이란 말인가? 우리 아이들도 알고 있다. 교복 입은 학생들이 ‘우리도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어요’라며 손팻말을 들고 촛불문화제에 나섰다. 거리에, 정류장에 아이들의 손으로 직접 쓴 반대 구호가 붙고 있다.

정부의 행정 예고가 있은 후 지금까지 매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막기 위한 촛불문화제가 이어지고 있다. 학생, 교사들부터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까지 남녀노소, 지역과 직업에 상관없이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고 나섰다. 촛불문화제에 나오지 못한 시민들은 대자보, 국정교과서 반대 인증샷, 온라인 서명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꿔 친일과 독재의 흔적을 감추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 할 것이다. 정부의 국정화 시도가 계속될수록 국정교과서를 요구하는 저들의 의도가 낱낱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 촛불 문화제에서 한 고등학생이 했던 발언으로 글을 매듭짓고 싶다.

‘촛불이 횃불이 되고, 횃불이 들불이 될 때까지 모여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막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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