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태타이거즈 팬이었다. 해태가 망하고 야구단이 기아로 넘어간 후에도 얼마간은 팬이었다. 그러다 시들해졌다. 실력도 문제지만 기아야구는 스토리가 없다.

 

어느 순간 그 빈자리를 한화이글즈가 채웠다. 김성근 감독의 영향이 크다. ‘빅데이터 전략지도’란 책을 읽다가 김감독과 관련된 글을 보았다. 김감독은 보는 것을 견(見), 관(觀), 진(診) 3가지로 구분한단다.

 

견은 글자 그대로 ‘그저 보는 것’이다. 보는 대상이 야구공인지, 배트인지, 사람인지 구별하는 정도다. 그 다음이 관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단계’다. 같은 야구공이라 할지라도 실밥이 어떤 모양으로 박혀 있는지, 공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하는 단계다.

 

어느 정도의 관심을 갖고 있다면 관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진이다. 진은 ‘의사들이 환자를 진찰할 때 사용하는 눈’이다. 증상을 보고 환자의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를 정확하게 진단해내는 것이다. 가장 깊은 곳까지 볼 수 있는 눈이다. 치열한 관심과 전문적인 식견이 있어야 도달할 수 있단다.

 

감독에게 필요한 것은 진(診)이란다. 감독에게만 필요한 건 아닐 것이다. 내가 가진 눈은 견인가 관인가 진인가? 견(見) 앞에 시(視)를 놓는 사람도 있다. 시는 흘려보는 것이고, 견은 가려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은? 마음을 얹어보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자면 TV 보는 것은 시청(視聽), 여행하는 것은 견문(見聞), 의사가 환자를 살피는 것을 진찰(診察)이라고 하는 것은 다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보며 세상을 살고 있을까?

 

매번 지나다니는 길이지만 시(視)하지 않고 적어도 견(見) 해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다래나무도 그랬다. 출근길이었다. 그날따라 주변을 찬찬히 둘러봤었나보다. 정원이 예쁜 집 근처에 전봇대가 서 있는데 거기에 기대어 자라는 식물이 보였다. 뭐지 하는 호기심에 좀 더 자세히 쳐다보니 둥근 열매들이 보인다.

 

아! 다래다. 순간 머리보다 혀가 먼저 옛일을 기억한다. 너무나 달콤했던 맛을!

벌써 20여 년 전이다. 대학원 재학 시절, 주말이면 전국의 숲 여기저기를 조사하며 다녔다. 강원도였을 것이다. 숲 속 계곡 근처바닥에 대추보다 조금 큰 열매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이게 뭐지 하며 한 개를 조심스레 집어 만져보았다. 오호라, 이거 다래다. 크기는 작지만 모양은 키위를 닮았다.

 

다만, 갈색털이 빽빽한 키위에 비해 녹색이며 털이 없는 차이는 있었다. 맛을 봤다. 꿀맛이다.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너무 맛있었다. 배고픔도 한몫했을 것이다. 열매의 주인을 찾아보았다. 바로 위로 덩굴성의 나무가 보인다. 맞다. 다래나무였다.





 

대추보다 조금 큰 열매, 한 개 집어 맛을 보니 꿀맛이 따로 없네

 

그 경험 이후로 다래나무는 맛으로 각인되었다. 바로 옆이 북한산이라곤 하지만 숲 속이 아닌 동네 길 가에서 다래를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주인 양반이 심었을 것이다. 조금 건강하다 싶은 숲에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나무이지만, 열매를 보기는 쉽지 않다. 아마, 수나무이거나 열매는 달렸으되 익기도 전에 숲 속 생물들이 남김없이 먹어치우기 때문일 것이다.

 

다래란 이름도 맛과 연관이 있다. 맛이 달다고 할 때의 ‘달’에 명사 만들 때 뒤에 붙이는 ‘애’가 붙어서 이루어진 말이란다. 하지만 다른 견해도 있다. ‘중국에서 미후도(원숭이 복숭아)라 부르는 열매를 조선에서는 달애(怛艾)라고 표기했다’라는 중국의 옛 문헌에 등장하는 달애가 변하여 ‘다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열매만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고로쇠나무처럼 수액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이른 봄에 줄기에서 수액을 채취해 마신다. 또 봄에 돋는 새순은 나물로도 먹는다.

 

다래 종류에는 개다래와 쥐다래, 양다래 등이 있다. 개다래와 쥐다래는 잎 일부가 흰 페인트 칠을 해 놓은 것처럼 무늬가 있어 멀리서도 구분할 수 있다. 키위라고도 불리는 양다래는 중국이 고향인데 서양에서 과일로 개발되어 우리나라에 들어온 나무이다. 중국의 다래를 개량한 뉴질랜드 사람들이 다래 모양이 마치 뉴질랜드 국조인 키위를 닮았다고 해서 키위라 부르게 되었다.

 

창덕궁 후원에는 수백 년이 된 천연기념물 제251호인 다래나무가 살고 있다. 진관동 이말산에도 다래나무가 산다. 진관중학교 뒤편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다. 불행히도 수나무라 열매가 달리지 않는다. 이곳에 살고 있다면 이말산 다른 곳에도 살고 있을 것이다. 그 나무는 암나무이기를. 그래서 視하지 않고 見하거나 觀하는 사람들이 그 꿀맛 같은 다래의 맛을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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