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는 남루한 농어민들이 일터에서 흘린 땀과 허기를 때우기 위해 마시던 술이다. 그래서 디지털 첨단 한국 사회에, 도시국가나 다름없는 한국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술이다.

대기업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한국사회에도 어울리지 않는 술이다. 몇 년 전 일본관광객들이 선호한다고 해서 국내에도 막걸리 열풍이 불자, 대기업 주류회사들이 막걸리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아직도 지역의 영세 막걸리 제조업자들이 지역시장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획일화되고 표준화된 한국 사회에서 그 나마 지역 고유의 정체성, 즉 읍면 단위에서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이 막걸리이다

얼마 전 TV 채널을 돌리다 가내 막걸리 양조장을 운영하는 노부부의 애환을 다룬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수 십년 동안 한결같은 방법으로 막걸리를 양조해 판매했는데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힘든 넘기 힌든 장애물이 생겼다.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나서 외지에서도 막걸리를 사러온 손님들이 적지 않은데, 이들이 도시에서처럼 신용카드결제를 원하기 때문이다. 카드결제기를 갖다 놓았지만 복잡한 사용방법을 익히기가 쉽지 않다. 그들에게는 막걸리 만들기보다 카드결제기 버튼 누르기가 훨씬 어려웠다.

세대 간 디지털 격차는 막걸리 양조장 노부부와 같은 지금의 60-70대 노인층이 사라지면 자연 해소가 될 것이다. 지금의 청년들은 노인이 되어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디지털 노인들이 될 것이다. 해소되기 어려운 문제는 지역 간 격차이다. 디지털 기술의 지역 간 격차,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격차가 좁혀지기 보다는 오히려 심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디지털 선진국이 되었지만, 지역 간 불균형은 오히려 심해졌다 

스마트폰과 같은 혁신 제품이 한 사회 내에서 확산되는 속도는 다양한 사회적, 기술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미국의 에버렛 로저스 교수가 1960년대 정립한 이론에 따르면, 혁신 기술의 확산은 4가지 요인에 의해 달라진다. 첫째는 혁신 기술 자체의 적합성, 둘째는 그 기술을 확산시킬 경로나 수단, 셋째는 시간, 넷째는 교육이나 문화와 같은 사회적 제도이다.

로저스 교수에 따르면, 사회 구성원들은 혁신기술 수용정도에 따라 혁신자(innovators), 초기수용자(early adopters), 초기 다수(early majority), 후기 다수(late majority), 낙오자(laggards)로 구분된다. 요즘 스마트폰 사용자들을 그의 이론에 대비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새로운 스마트폰을 만드는 삼성전자 종업원들은 혁신자이고, 신제품 출시를 기다렸다 곧바로 구매하는 소수 청년층은 초기 수용자, 신제품의 가격이나 품질 등을 충분히 고려한 후 구매하는 다수의 청년층은 후기 수용자, 값이 더 내리기를 기다리는 장년층은 후기사용자, 폴더폰이 편하다고 버티는 노년층은 낙오자에 속한다.

혁신기술 확산의 차이는 지역 간에도 나타난다. 수도권과 대도시는 디지털 혁신기술을 신속하게 수용하지만 비수도권, 농어촌 지역은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한편 디지털 기술 초창기에는 디지털 기술이 지역 간 격차해소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그러한 증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한민국은 디지털 선진국이 되었지만, 지역 간 불균형은 여전한, 오히려 더 심한 나라가 되고 있다. 규모의 경제와 네트워크 효과가 결합된 디지털 기술은 지역 간 격차를 오히려 더 심화시키고 있다.

중앙에 집중된 자본과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 결합하면서 지역경제는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 경제 양상을 띠고 있다. 전통적 독립 자영업자들이 지역상권에서 사라지고, 대부분 서울에 본사를 둔 프랜차이즈 영업장으로 대체되고 있다.

동네 구멍가게와 슈퍼는 대기업 계열의 편의점으로, 동네 통닭집은 치킨 프랜차이즈의 분점으로, 동네 다방은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으로 바뀌고 있다. 프랜차이즈 대기업들이 디지털 혁신기술의 우위를 이용해 지역의 상권까지 장악한 것이다.

그나마 프랜차이즈 사업자로 전환되지 않는 것이 막걸리 제조업이다. 그래도 그 수익의 일부는 서울의 대기업 은행계좌로 들어가고 있다. 노부부가 수 십년 동안 변함없이 해온 방법으로 막걸리를 만들지만, 이제는 그 이윤을 카드회사와 단말기회사와 인터넷전송망 사업자와 나누어야 한다. 디지털 식민지로 변해버린 지역상권의 우울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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