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편지

어디에선가 아픈 소식이 들렸습니다. 무너졌고 불에 탔고 또는 폭발 했습니다.

이런 소식들은 늘 조간신문의 첫머리를 장식하거나 9시 뉴스의 맨 첫머리에 보도가 되었지요. 그리고 그것이 전부 였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아픈 소식이란 마치 뉴스 생산을 위한 하나의 도구 외에 다른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입니다.

그 아픔의 자리 한 켠 에는 늘 내가 있었음을 망각하고 있는 사이 아픈 사람의 고통은 바라볼 틈도 없이 또 다른 아픈 소식이 그 자리를 채우는 악순환의 반복 그것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 버렸지요. 어쩌면 우리가 사는 계절은 망각의 세월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망각을 강요당했는지도 모릅니다.

남과 북의 갈등이 심상치 않습니다. 분단의 꼭지점 위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킨 게임을 벌이고 있습니다. 다시 언론은 금세 전쟁이라도 날것처럼 공포 분위기를 만들어 갑니다. 전쟁은 순전히 지배자의 몫입니다. 오스트리아의 평화학자 베너 빈터스타이너의 말처럼 전쟁은“지배자가 준비하고 조직하고 실행” 합니다. 그저 우리 같은 서민들은 지배자들의 이익 놀음에 동원되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도 목숨을 내놓는 도구지요.

시인 이면우의 “그 저녁은 다시 오지 않는다“ 를 읊어 봅니다 무언가 용서를 청해야 하는 저녁은 그래서 나에게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사회에게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일수도 있을 듯합니다. 각종 언론과 소위 거대담론이 만들어내는 이슈 속에서 아픈곳을 늘 잊고 사는 일상에 대한 경고 같은 것 말이지요. 부산한 여름을 보내느라 편지가 늦었습니다. 8월을 보내며 무릎 꿇고 누군가의 발을 씻겨 줘야할 저녁이 있다는 사실을 깊게 곱씹어 봅니다.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이 면우

무언가 용서를 청해야 할 저녁이 있다
맑은 물 한 대야 그 발밑에 놓아
무릎 꿇고 누군가의 발을 씻겨줘야 할 저녁이 있다
흰 발과 떨리는 손의 물살 울림에 실어

나지막이, 무언가 고백해야 할 어떤 저녁이 있다

그러나 그 저녁이 다 가도록
나는 첫 한마디를 시작하지 못했다 누군가의

발을 차고 맑은 물로 씻어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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