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 100개 도전기를 넘어 '남정네 작은부엌'의 오너셰프까지

▲불광동에 위치한 레스토랑 '남정네의 작은부엌'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청년 실업률은 10%을 넘어섰다. 청년들은 설자리가 줄어들었고, 먹고사는 문제들로 고민이 많아졌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그 일로 먹고 살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안정을 추구하는 삶은 아니지만 안정을 원하는 사회에서 도전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쉽게 꺼내지 못한다. 하지만 여기 자신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젊은 청년이 있다.

 

바로 불광동에 있는 작은 비스트로 ‘남정네의 작은부엌’을 운영하는 29살의 유성준 오너 셰프다. 그는 불과 3년 전만 해도 대학생의 신분으로 학교를 다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어릴 때부터 요리에 관심은 많았지만 친구들에게 음식을 해주는 딱 그 정도였다.

 

 

“우연히 만든 파스타가 제 인생을 바꿨어요.”

 

대학교 3학년. 회계사를 공부하던 그는 평소에 즐겨 먹지 않던 파스타가 그날따라 먹고 싶었다고 한다. 마트로 달려가 사온 면과 소스만으로 만든 토마토 파스타는 정말 맛있었고 그에게 요리는 스트레스를 푸는 돌파구가 되었다. 그날 이후 그만의 레시피를 정리하고 기록하기 위해 블로그를 만들었다. 블로그를 만들고 나니 파스타를 얼마나 만들지 라는 문제가 생겼다.


“그때 당시 나이만큼 하자니 26개는 너무 적었죠. 그래서 무모하지만 성취감을 주는 100개로 마음먹고 ‘요리하는 남정네의 파스타 100개 도전기’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시간만 되면 파스타를 만들어 블로그에 올렸다. 처음에는 방문자가 많아야 5명이었지만 10개쯤 만들다보니 100명 넘게 들어오기 시작했고, ‘네이트 판’에 올린 게시글은 40만 뷰가 넘어섰다. 댓글만 해도 400개가 달렸고, 어느덧 블로그 방문자 수는 4000명을 훌쩍 넘었다. 점점 공부는 뒷전이 되었고 파스타 요리를 진지하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대신 시중에서 파는 요리가 아니라 무궁무진한 재료를 이용해 그가 하고 싶은 파스타를 하려고 노력했다. 시래기나 팥을 넣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렇게 자신만의 블로그를 만들고 파스타를 만들다보니 요리는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된장찌개의 레시피가 다 같진 않잖아요.”

 

블로그 활동이 풍부해진만큼 요리에 대한 힘을 얻기도 했지만 힘도 많이 들었다. 블로그는 오픈 공간이다 보니 그의 요리를 본 조리학과 학생들이나 현직 요리사들은 악성 댓글을 달기도 했다. 단순히 요리가 좋아서 시작했지만 다른 이들의 질타를 받다보니 한동안 슬럼프도 있었다. 그러던 중 생각난 것이 된장찌개였다.

 

“그들에게 된장찌개 레시피를 물어봤어요. 전국에 된장찌개 레시피는 다 다르잖아요. 파스타도 그래요. 크림파스타에 크림만 넣고 뭘 넣든 그건 크림파스타인거죠.”

 

그때부터 비방 댓글들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6개월 만에 100개의 파스타를 채우며 26살 여름에 시작한 도전을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요리 도전기는 끝나는 듯 했지만 요리에 대한 갈망은 계속됐다. 진로를 정해야하는 시기인 4학년 1학기. 친구들은 취업준비에 들어갔지만 방학 내내 요리에 빠져있던 그는 요리를 더 배우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하지만 스킬도 없고 조리법도 모르는 그가 혼자서 인터넷으로 배우기엔 전문지식이 부족했다.


“한계를 느끼고 나니 현장에서 배우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60곳이 넘는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넣게 되었죠. 하지만 나이가 많으니 이것도 쉽지 않았어요.”

 

보통 조리학과를 졸업하고 현장에 뛰어드는 나이는 23~24살. 경력하나 없는 27살의 그가 막내로 들어가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열정이 닿은 것일까. 한 레스토랑에서 그에게 같이 일해보자며 손을 내밀었고 그곳에서 그는 파스타의 기초를 다졌다. 복병은 다른 곳에서 터졌다. 졸업까지 한 학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학사경고를 받은 것이다. 요리를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15시간씩 요리를 하다 일순간 책상 앞에 앉아있자니 답답할 지경이었다. 그는 자신만의 요리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4년 1월, 불광동의 한적한 주택가에 당당히 오너셰프로 레스토랑을 열게 되었다.


 

▲ 유성준셰프의 모습과 '남정네의 작은부엌'에서 제공하는 2015년 봄 메뉴



“변하지 않는 요리. 맛이 그리워 계속 찾아오는 요리를 하고 싶어요.”

 

레스토랑이 자리 잡은 곳은 그가 살고 있는 단독주택의 반지하 공간이다. 10년이 넘도록 사람이 살지 않던 폐가를 그와 그의 아버지, 목수아저씨가 함께 10평 남짓한 레스토랑으로 만들었다. 인적이 드문 주택가에 있어 레스토랑의 입지조건으로는 최악이었다. 하지만 번화가가 아닌 주택가에 자리 잡으면서 초보요리사인 그가 기초를 다지고 자신만의 요리를 보완해 나가기엔 적합했다. 오픈 당시에는 장어 떡볶이를 만들기 위해 30개가 넘는 떡으로 반복해서 연구하고 요리했다. 현재도 그는 계절별로 약 30%씩 요리를 바꾼다. 그래서 메뉴 짤 때만 되면 항상 진땀을 뺀다.

 

“제 입맛에 정말 맛있어야 남들에게도 맛있는 것 같아요. 그럭저럭 괜찮다 싶으면 그 요리는 남들에게는 괜찮거나 혹은 맛이 없을 확률이 크죠. 그래서 제 입맛에 정말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 이곳(남정네 부엌)에서 끊임없이 레시피 연구를 하고 있어요.”

 

유성준셰프의 목표는 변하지 않는 요리를 하는 것이다. 그는 ‘이 식당 예전만 못하다. 맛이 변했다.’라는 말을 듣기 싫다고 한다. 변하지 않는 요리, 기본을 지키는 요리. 그의 요리가 그리워 손님들이 계속 찾아오는 요리를 하고 싶다고 한다.

 

“TV에서 셰프들이 ‘1%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하세요. 100g짜리 요리를 맛있게 했더라도 1g의 머리카락이 들어간다면 손님은 다시 그 식당을 가지 않는 거죠. 1%는 정말 작은 실수이지만. 그것을 용납하긴 쉽지 않아요. 그것은 맛이 될 수도 있고, 양이 될 수도 있고, 손님이 생각하는 분위기일 수도 있죠. 그 부분을 만족시키도록 계속 노력하는 게 목표입니다.”

 

평범한 대학생활을 하던 대학생에서 파워 요리 블로거로, 그리고 레스토랑의 오너셰프까지. 유성준셰프는 요리에 대한 열정과 노력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그런 그는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꾸준히 할 수 있는 취미를 만들라고 말한다.

“취미가 없다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어요. 아무것도 안하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가질 수는 없죠. 힘들어도 도전할 수 있는 취미를 가지세요.”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정작 청년들은 스스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소한 취미마저 없는 경우가 많다. 여가시간에도 대다수의 청년들은 친구들과 밥 먹고 영화를 보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정말로 무언가에 몰두해서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등 취미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인 것이다. 유성준셰프는 취업하기도 힘든 세상에 취미를 가지라고 하는 건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취미를 갖고 꾸준히 하다보면 그 일을 함께할 동반자를 만날 수도 있고, 뛰어들 용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친동생과 함께 요리를 하며 ‘남정네 부엌’을 운영하고 있는 유성준셰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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