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은 콩과식물이다. 그러다보니 척박한 토양에서 잘 자라는 성질이 있다. 더군다나 햇빛을 아주 좋아하는 나무이다.

 


 

서울에 1989년에 올라왔다.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올라가야 성공한다는 말씀에 군말 없이 따랐다. 서울 올라와 처음 기거한 곳은 왕십리, 왕십리에서 몇 년 살다 신당동으로 이사했다. 신당동에서 꽤 오랫동안 살았던 것 같다. 그곳에서 대학을 졸업하였다.

 

졸업 후 신림동으로 이사했다. 친구와 함께 살았다. 생태보전시민모임에 인연을 두기 시작한 때다. 은평구 구파발동까지 2시간 가까이 걸렸다. 너무 먼 거리라 사무실에서 잠자는 날이 늘었다. 자연스럽게 은평구 삶이 시작된 셈이다. 사무실도 몇 차례 이사했다. 구파발동 앵봉산 중턱에 있던 사무실이 꼭대기로 이사했다. 나의 거처도 동시에 옮겨진 셈이다. 몇 해 지나지 않아 다시 진관외동 기자촌으로 옮겼다. 옛날 704번 종점 차고지 바로 옆이다. 그 곳 옥탑방에서 살았다. 그리고 결혼했다. 신혼집은 불광동 독바위역 인근 작은 빌라. 그곳에서 1년 정도 살다 기자촌 사무실 2층 집에 전세를 얻었다. 단독주택이니 가능했으리라.

 

그곳에서 오래 살고 싶었지만 은평뉴타운 개발로 다시 거처를 옮겨야 했다. 사무실도 우리도! 사무실은 진관내동 백화사 인근으로 이사했고, 나는 처음으로 서울을 벗어나 양주시 장흥면으로 이사했다. 장흥면에서도 한 차례 더 이사했다. 그러다가 5년 전에 고양시 효자동으로 이사했고 1주일 전 다시 이사했다. 전 집에서 겨우 100여 미터 떨어진 곳으로.

 

서울로 올라온 이후로 거처를 옮긴 걸 셈해보니 어림잡아 13번이다. 평균 2년마다 한 번씩 옮겨 다닌 셈이다. 이번 이사를 하면서 정말 힘들었다. 나도 내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매번 이사를 했지만 좋은 집으로 옮겨 다녔다고 생각한다. 결혼 후에는 더욱 그랬다. 모든 과거는 아름답게 채색되는 것일까? 북한산 언저리를 맴돌았다. 지금도 북한산이 보이는 자락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매일 매일 숲과 나무를 만난다. 집은 내 집이 아니지만 주변에 숲과 나무가 많아 좋다.

 

이번에 이사한 집 근처에 처음 보는 나무가 있었다. 나무의 정체를 두고 옥신각신하기도 했다. 집 주변 숲에 흰 꽃이 만발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 영락없는 아까시나무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터다. 근데 부인이 흰 꽃 핀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궁금하다면 나에게 물어본다. 그거 아까시나무인데 했는데, 자기가 아까시나무도 모르겠냐며 핀잔을 준다. 어, 그런가? 그래서 짬을 내어 나무를 찾았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 아까시나무가 아니다.

 

칡은 왼쪽으로감고

등은 오른쪽으로 감아

서로 얽힌다면 풀기 어려워

 

그럼, 무엇이지? 찬찬히 보니 등을 닮았다. 등나무라고도 하는데 사전에는 나무 이름이 ‘등’으로 되어 있다. 등을 모를 리 없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덩굴성 식물이다. 정자와 같은 구조물을 올라 타 멋있는 그늘과 여름철 꽃향기를 연출하는 장본인이다. 그 나무를 모를 리 없다. 등은 연보라색을 꽃을 피운다. 향기도 무척 강해 꽃을 본 사람을 등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앞의 나무는 흰 꽃이다. 흰 꽃을 피우는 등이 있었던가?

 

자연에는 없는 게 없을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흰 꽃을 피우는 등을 ‘흰등’으로 표시하고 있다. 내가 본 나무는 ‘흰등’이었던 것이다. 아, 처음 본다. 흰등을! 아마 품종으로 보인다. 등나무 꽃이 너무 예뻐 꽃을 개량한 나무라 생각할 수 있겠다. 북한산 언저리에는 조경업자들이 운영하는 나무 정원이 많다. 굳이 유추하자면 아마 그래서 일 꺼다. 흰등이 이곳에서 자라는 이유가!

 

등이나 흰등이나 꽃 색깔만 다를 뿐 다른 것은 대부분 같다. 옛 선비들은 등나무가 다른 나무를 타고 오르는 덩굴성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가장 멸시하던 소인배에 비유하기도 했단다. 줄기는 지팡이를 만들었고, 가는 가지는 바구니를 비롯한 우리의 옛 생활도구를 만들었다. 껍질은 매우 질겨 종이의 원료가 되었다. 부산 범어사 앞에는 천연기념물 176호로 지정된 등나무 군락이 있는데, 이는 스님들이 종이를 만들기 위해 가꾸고 보호한 것으로 추정된다.

 

등이란 이름은 중국이름 등(藤)을 차용한 것으로 위로 감고 올라가는 모양을 본떠서 만든 상형문자라고 한다. 등은 난온대 상록활엽수림에 사는 오래 사는 덩굴성 목본식물이다. 특히 밝은 빛과 따뜻한 입지를 좋아하기 때문에 음습하거나 냉습한 기간이 긴 지역에는 분포하지 않는다.

 

등은 콩과식물이다. 그러다보니 척박한 토양에서 잘 자라는 성질이 있다. 더군다나 햇빛을 아주 좋아하는 나무이다. 몇 년 전부터는 이런 성질을 이용해서 공사 후에 나타나는 절개지 비탈면에 등을 많이 심는다. 등이 자라서 절개지 사면을 보호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절개지 사면이 가장 많이 나오는 공사는 단연 도로공사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다 보니 터널을 뚫을 수 없는 작은 산에는 절개지가 만들어진다. 이런 곳에 등을 식재하여 사면 안정화 공사를 진행한다. 고로 등을 보고 싶다면 눈을 부릅뜨고 고속도로를 달리면 된다.

 

마지막으로 갈등이란 말이 칡과 등에서 유래했다는 사실 하나쯤은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둘 다 잘 자라고 오래 사는 덩굴성 식물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칡은 왼쪽으로 감고 등은 오른쪽으로 감는다. 이 둘이 한 장소에서 우연하게 서로 얽힌다면 쉽게 풀 수 없게 될 것이다. 바로 여기서 갈등이란 말이 유래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는 갈등이 참 많다.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갈등!

 

자연계에서 가끔 흰색을 띤 생물체가 발견되면 상서로운 것이라 모두들 귀하게 여겼다. 선천성 색소결핍으로 인한 알비노 현상인데, 흔하지 않다 보니 의미 부여를 그렇게 했나 보다. 마지막 이사였으면 좋겠다. 집 없는 설움이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소원 쯤 흰색 꽃이 만발한 등이 기꺼이 들어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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