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문화 활성화로 함께 밥 먹는 모임 늘어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란 뜻의 ‘식구(食口)’는 가족과 같은 뜻을 지닌 단어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함께 밥을 먹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뒀다. 반대로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은 개인의 고독함과 파편화를 대표하는 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시골에서 자란 사오십대 이상 세대들은 마을회관에 여러 세대들이 모여 마을밥상을 차리고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던 풍경이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도시화가 진행되고 공동체 문화가 사라진 오늘날 도시에서 이런 모습을 보기는 힘들어 졌다.

 

하지만 최근 은평에서는 공동체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함께 밥을 먹는 모임들이 늘고 있다. 각 모임마다 나름의 특색이 있지만 모두들 “함께 밥을 먹어서 더 특별하고 친근하다”고 말한다.

 

 

도시농업 가치 담은  ‘텃밭이 차린 밥상’

 

매달 말 토요일에 열리는 ‘재미난장’에서는 ‘텃밭이 차린 밥상(이하 텃밭밥상)’이 차려진다. 갈현2동 상상골목축제와 재미난장이 함께 열린 23일, 길마공원에서는 무려 100명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큼지막한 밥상이 차려졌다. 텃밭에서 키운 채소와 아빠맘 두부에서 키운 콩나물, 은평두레생협에 구매한 건강한 먹거리로 차린 콩나물 비빔밥과 열무된장국이 축제를 찾아온 사람들을 위해 마련됐다.

 

‘텃밭밥상’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공동텃밭에서 함께 키운 작물로 함께 요리를 만들고, 마을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다는 점이다. 생산에서 소비 모든 과정이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 또 텃밭에서 키운 것이기에 모두 제철작물이 재료가 된다. 6월에는 감자로 상을 차리고 7월에는 당근과 옥수수와 토마토를 수확하여 스파게티를 만들 계획이다. 자연의 순환이 담긴 1년 차림표가 준비돼 있다.

 

‘텃밭밥상’에는 은평도시농부학교에서 2010년부터 함께 공부한 19명의 도시농부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고양시 원흥동 육골마을 400여 평 텃밭에서 흙을 살리는 유기순환농사를 지어 수확한 제철작물로 차린 건강하고 색다른 요리법의 밥상을 준비한다.

 

‘텃밭밥상’은 도시농업의 가치를 마을 주민들과 나누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텃밭밥상’에 참여하는 문명희씨는 “도시에서도 작물을 직접 길러 잘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림으로써 도시농업으로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함께 요리해 더욱 즐거운  ‘신나는 마을 공동부엌’

 

5월 26일 은평뉴타운 9단지 919동의 한 상가 공간에서 15명의 주부들이 모여 뼈감자탕을 끓이고 오이깍두기를 담갔다. 이곳은 은평뉴타운 주부들이 함께 요리하는 ‘신나는 마을 공동부엌’이다. 생긴지 2주밖에 안됐지만 인근 주부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공동부엌’을 함께 운영하는 박정희 대표는 신청자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걱정스럽다고 한다. 설명회를 개최했는데 100여명의 주부들이 참여했을 정도다.

 

‘신나는 마을 공동부엌’에서는 뼈감자탕과 같은 어려운 요리도 손쉽게 할 수 있다. 이곳을 찾는 주부 대부분 은빛초등학교 학부모들인데, 음식 걱정은 크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재료를 공동구입하고 어떤 요리를 만들지도 함께 정한다. 요리법도 배우고, 서로 이야기도 나누기에 요리 시간이 즐겁다.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챙겨줄 수 있다.

 

‘신나는 마을 공동부엌’은 서울시로부터 마을사업으로 선정돼 요리 강의와 맞벌이 가정 자녀들의 저녁을 챙겨주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아울러 남성 독거 어르신들께 반찬을 나눠드리는 활동도 하고 있다.

 

박정희 대표는 “주부들한테는 매일 무엇을 먹일까가 걱정이다. 그런데 오늘 저녁은 다 해결됐다고 말하고 간다”며 “다른 단지에도 마을 공동부엌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동육아에서 출발한 밥상  ‘숲동이네 한솥밥’

 

‘숲동이네 한솥밥’은 보육시설에 보내지 않고 부모들이 직접, 함께 아이들을 키우는 ‘숲동이 놀이터’ 부모들과 아이들이 함께 밥을 먹는 ‘공동육아 밥상’이다.

 

매번 도시락을 싸가는 것도 쉽지 않고, 식당에 가면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라며 반기지도 않는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아이들에게 편하게 밥을 먹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또 아이들을 키우느라 힘든 부모들도 때로는 남이 해주는 밥이 먹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모들이 각자 밥을 하는 것보다 돌아가면서 그리고 함께 모여서 준비하면 더 수월하고 재미있다. ‘숲동이 놀이터’를 졸업한 선배 회원들이 후배 회원들에게 밥상을 차려주는 미덕도 느낄 수 있다. ‘숲동이 놀이터’에는 3개의 모둠이 따로 활동하다보니 모둠끼리의 소통이 부족한데 ‘숲동이네 한솥밥’을 통해 교류의 장이 만들어진다. 곽선미씨는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서로의 맘을 열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은평상상허브 ‘지혜의 점심’

 

함께 밥을 먹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도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데 훌륭한 매개가 되는데 은평상상허브 ‘지혜의 점심’이 그런 경우다. 은평상상허브 30여개 입주단체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매달 두 차례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함께 점심을 먹는다.

 

은평상상허브 입주단체 활동가들은 모두 바쁘기에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쉽지 않다. 중국음식, 피자, 떡볶이 등 배달음식을 먹지만 그래도 밥 먹을 때 가장 친해지는 것 같아서 시작했다고 한다.

 

‘지혜의 점심’에서는 입주단체 대표들이 각 단체의 활동을 설명하거나 사업들의 사회적 의미를 풀어내는 워크숍이 진행된다. 에코맘 이은경 대표는 EM주방세제 만들기 수업을 하며 주방세제가 왜 안 좋은지 설명했고, 생태보전시민모임 민성환 공동대표는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반짝반짝 사진방 최영교 대표는 사진을 잘 찍는 법 등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고, 케이로드넘버원 곽미영 대표는 성격검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지혜의 점심’을 기획한 사단법인 씨즈 강민지 매니저는 “입주단체들이 교류를 통해 서로의 이해하고, 관계를 맺어가면서 협력사업을 벌이는 데까지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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