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과 함께 짓는 마을학교 1]

우연히 어느 건축저널 기자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너무 오랜만입니다. 요즈음 뭐하세요?” ‘요즈음’ 뭐하냐고 물었다. 

“그렇지요, 뭐! 작품하고 학생들 가르치고...... 여전히 술 좋아하고... 그리고..... ” 건축가가 사는 세상은 뭐 다를 게 있을까? 달라야 할까? 그렇게 말하려다가, 그 기자의 표정이 너무 진지하여서 묻는 행간을 다시 살피며 건축에 관련한 활동에 대해 좀 더 성의껏 대답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생태건축, 친환경 건축이나 인권친화건축, 뭐 이런 것들 공부하고 설계도 하면서 지내고 있지요! 라고 대답해 주었다. “역시 지속가능한 건축, 지속가능한 사회를 고민하고 계시는군요.” 라고 반색을 하며 화답해 주었다. 그러나 그 기자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이 나를 향해 돌아오는 순간, 아프게 나의 폐부에 꽂히는 것은 왜일까? 

우리가 이야기하는 ‘지속가능한 사회’라는 담론은 현실 사회에서는 참으로 다양한 모순적 상황이 한꺼번에 용해되어 있다.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서 웬지 모르게 불편하고 지난한 어휘로 다가온다. 마치 앞에 놓인 강팍한 현실을 맞닥뜨려 한 쪽 한 쪽씩 걷어내며 가야할 것 같이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이 시대의 전망의 수치가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년 동안 가장 재미있게 매달렸던 일은 교육을 재료로 하여 마을을 만드는 일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학부모로써 혁신교육을 통한 교육 커뮤니티 만들기 동참기라고 해야 할까? 거창한 것은 아니고, 혁신학교의 철학적 결을 다듬는데, 서로 머리를 맞대고 동네에서 소소한 교육활동을 모아내는 일 정도이다. 건축설계를 하듯이 마을지도 위에 빈 도화지를 겹쳐놓고 여기저기 끄적거리며 스케치를 하는 재미가 투여된 시간만큼 축적되는 것이 보람이다. 

교문을 나온 학교, 학교로 간 마을 상상하기

초등학교 ‘학부모 되기’를 위해 이 학교를 찾아 이사와서 한 마을의 주민이 되었다. 여럿이 뜻을 세우고 마음을 모아서 정한 이 학교가 새로운 교육의 사례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과 더불어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생활, 마을살이이었으면 했다. 마을과 학교가 함께 교육공동체로써의 문화를 형성한다는 것이 현대사회에서는 쉬운 일이 아님에 틀림없다. 돌이켜보면 과거 교육는 마을의 중심이었고, 학교가 공동체의 커뮤니티 센터 역할을 함께 하였다. 그래서 복권이 필요하다. 교문을 나온 학교, 학교로 간 마을을 그려보며 상상하기 시작하였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아파트촌으로 한정된 학구를 울타리로 하는 우리 학교는 마을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공동체를 만들기에는 매우 유리한 환경에 위치한다. 새롭게 조성된 주거단지라서 기존의 관습화된 문화가 없어서 오히려 무엇을 시작하기에는 적당했다. 이렇게 우리들의 마을과 학교 상생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교육적 지향성은 지구적으로는 ‘성장의 한계’ 시대를 직시하고, 1987년 브룬트란트 리포트에서 제시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우리 공동의 미래’를 함께 동참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으며, 지역적으로는 학교와 교육이라는 영역이 담론의 중심이 되고 아이들이 사는 지역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마을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지역을 바탕으로 한 환경, 사회, 경제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교육적 논의와 활동을 학부모이면서 주민의 지위에서 아이들의 교육활동을 북돋아 주고자 하는 것이 우리 마을-학교의 교육공동체 활동의 밑그림인 것이다.

아직 이 분야에서 우리가 벤치마킹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거나 만족할 만한 선행사례가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황무지이다. 그래서 어렵지만 오히려 재밌게 마음껏 펼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된다. 

그리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속가능한 사회는 교육분야에서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지역이나 마을에서도 사회, 경제, 문화, 환경을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 사회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문제를 마을이 학교와 함께 조금이라도 혁신교육이라는 내용과 형식의 변화를 발전적으로 이끌어서 현재와 미래를 더불어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좀 더 안정적으로 미래적 가치를 심어주어야 한다.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학부모 커뮤니티와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이 더욱 절실해지는 이유일 것이다.

<마을학교>라는 시 쓰기

얼마 전에 아이와 함께 노고단을 올랐다. 아버지에게 의지하지 않고 애써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마을 만들기나 가정에서의 교육도 이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두 다리를 대지에 굳건히 딛고 직립의 의지로 한 발 두발 오르는 것이리라. 하지만 함께 시를 쓰면서 나는 또 다시 부모가 아닌 학부모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마을이 필요하고 함께 가꾸는 교육공동체가 균형을 유지시켜주는 평형수 구실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제 이 연재를 시작하면서, 4년 동안 만들어 낸 마을과 함께 한 교육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크게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많은 동네 사람들과 학교 선생님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일궈 놓은 경험이기에 대표 집필자의 자세로 공유하고자 한다. 그리고 올해부터 시작한 <검바우 마을학교>의 이야기도 지상중계를 할 예정이다. 바람이 오고, 꽃이 가고, 햇빛이 노닐고, 나락이 꽝꽝 여물어 간들, 이 세상에 아무것도 저 혼자 된 것이 없듯이 마을학교가 성큼성큼 내일을 향해 나가는 모습을 전해드리고자 한다.

 

<노고단>이라는 시를 쓰고 있는데
아이가, 아빠 좀 도와줘 하면서 왔다.
함께 다녀온 터라
한 편 쓰려고 끙끙대기는 매한가지.

낱말 하나에 티격태격
어휘 하나에 실랑이
드디어, 이미지 불일치로
토라지고 말았다......
(이 부녀, 이럴 줄 알았다.)
글쓰기가 노고단 오르기보다 어렵다.

노고단을 오르는 아이의 뒷모습에 뿌듯했던 생각이
슬그머니 겸연쩍다.
 

손잡아 주는 이 없이
두 다리로 직립하고
두 다리로 길을 내고
두 다리로 올라서
노고단 구름 망토를 두르고
두 손가락 곧추세워 찍은 대견한 사진이
글쓰기에도 있다는 걸...... 
(또 잊은 나, 아빠!)

툭툭 부러뜨린 시냇물 소리를
다시 재잘재잘 이어 붙인다.
지리산에서 모셔온 계곡물 소리.
-졸시, <노고단 시 쓰기>

인디언: 공동육아를 할 때 아이들이 붙여준 별명을 필명으로 사용한다. 건축학, 문학, 북한학 등을 공부하였고, 현재 초등 4학년 학부모이며. <검바우 마을 학교> 주민대표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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