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철학과 전략

5월은 국민연금 이야기로 한 달이 다 갔다.

소득대체율 50%와 보험료 인상 1.01%과 18.85~25.3%. 지난 한 달 동안 골치 아프게 들었던 수치들이다. 5월 2일 여야 당대표는 공무원연금개혁안을 합의하면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에도 (잠정적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민연금 합의에 강한 반감을 표시하자 청와대와 보건복지부는 신뢰하기 어려운 수치와 국민을 당혹케 하는 메시지를 쏟아냈다.

이른바 ‘연금괴담’으로 – 재정고갈, 세금폭탄, 세대이기주의, 미래세대재앙, 세대갈등, (심지어)세대 간 도적질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공포와 분열 조장 마케팅은 (국민연금 효능과 책임을 의도적으로 끊임없이 훼손해온 세력의 유언비어 때문에) 아직 신뢰가 쌓이지 않은 국민연금에 불신만 덧씌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런데 주도권을 쥔 정치권과 미디어가 괴담을 퍼뜨린다 해도, 그 문제가 내 삶에 아주 중요한 문제라면 한번쯤은 의심해 볼만 하지 않을까. 국민연금이 정말 2060년이 되면 싹 바닥이 나는가? 그렇게 되면 정말 그동안 부었던 연금을 못 받게 되나.

청와대가 말하는 미래세대 1702조원의 세금은 또 무슨 말인가. 그나저나 국민연금은 세금이 아니고 국민이 낸 보험료로 운영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난데없이 세금이라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세금 얘기만 나오면 왜 꼭 ‘폭탄’이 붙어 다니나. 세금혐오증을 바닥에 까는 이유가 뭔가? 연금 얘기만 나오면 미래 세대 부담을 들먹이면서 세대 간의 갈등이네 전쟁이네 하는데 도대체 후세대 부담이 얼마인지 분명히 알고 싶고, 그 부담을 후세대가 감당할 수 있는 있는 수준인지 아닌지도 궁금하다. 세상에는 세대 간의 갈등과 전쟁만 있고, 세대 간의 합의와 연대는 없는 것인가.

거기에다 국민연금 사각지대 계층이 1600만 명이나 된다는데 이 분들의 노후는 어찌되는가. 그리고 정말 궁금한 것은 똑같이 한 달에 10만원씩 보험료를 낸다고 할 때, 국민연금과 (민간 보험회사의)연금보험 중 어떤 게 내게 더 이득인가?

세금폭탄 성토, 누구를 위한 목소리였나?

특정 정당이나 정파에 깊이 몸담지 않은 대다수의 국민은 당리당략이나 진영논리나 정치주장에 가려진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정책이나 제도가 만들어진 배경은 무엇이고, 현재 상황은 어떻고, 앞으로 어떤 목표를 취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나와의 이해관계는 어떤가. 이것과 관련된 나의 권리는 무엇이고 책무는 무엇인가. 이에 관련된 내 이웃의 이해관계는 어떤가. 어떤 운영방식이 우리 사회 공동체를 더욱 건강하게 하는 것인지, 반대로 그 건강성을 와해시키는 것인지.

지난 연말정산만 해도 그렇다. 극소수의 매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매체가 ‘13월의 세금폭탄’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사실이 아니었다. 이는 2013년 8월의 세법개정과 연결되는 이야기다. 소득공제 시스템을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것은 중산층 이하의 대다수 국민에게는 이득이고 소득재분배에도 기여하는 것으로 마땅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야당은 진영논리로 반대하고, (부자들의)거대 언론은 잘됐다고 부추기면서 부자에게 증세하고 서민에게 감세하는 세법개정은 반 토막이 되었다. 종합부동산세와 마찬가지로 서민층이 두 주먹 불끈 쥐며 핏대를 올렸던 세금폭탄 성토는 누구를 위한 목소리였나?

민간의료보험도 그렇다. 우리나라 가구의 80%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여 월 평균 34만원씩 보험료를 자동이체하고 있다. 그러곤 가입자의 51%가 5년 안에 속 쓰린 손해를 감수하면서 해약을 한다. 가족 1인당 평균 1만원의 건강보험료만 더 내면 무상의료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음에도, 병원비 공포마케팅에 넘어가 사보험 가입과 해약을 반복하며 불안해하고 있다.

개인의 책임과 사회의 책임 부분도 최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개개인이 파악하고 나름의 답이나 대안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접하는 신문 방송 매체나 주위 사람들에게서 듣는 정보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 국민은 제한된 정보와 왜곡된 소통 환경으로 인해 사실 접근이 쉽지 않지만, 정치인과 미디어는 다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국민은 국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정치인과 미디어를 갈급해한다. 또 정보와 사실 접근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할 수 있는 더 중요한 일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규범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어린이를 양육하는 일, 청소년을 육성하는 일, 대학 교육이 어떠해야 그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규범. 일자리와 주거와 건강과 노후 등의 사회 환경이 어떠해야 우리 사회 구성원의 존엄성이 지켜질 수 있는지. 결국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어떤 나라에서 살아갈 것인가의 토론과 합의이다.

작금의 누리과정 예산, 무상급식, 연말정산, 민간의료보험, 국민연금 문제 등은 생애주기별 사회권에 대한 사회적 철학이 부재한데서 오는 혼돈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의 %논쟁에 앞서 우리가 할 일은 최근 100년간의 인류역사에서 유일무이한 경제기적을 이룬 노인세대의 노후보장에 대한 우리 사회의 도덕 수준을 논하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보상이 기초연금 20만원과 폐지수집 생계라면 그것이 우리의 국가 경제력에 합당한 것인지. 그리고 이후의 노인세대와 젊은 세대의 삶의 질과 연대의 책임 수준까지도 논의가 필요하다. 한 사람의 인생사에 있어 개인의 책임과 사회의 책임 부분도 최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 책임 부분이 개인의 위험과 희생을 최소화하고 각자의 개발을 최대화하면서 공동체의 사회적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지혜라면 더없이 좋다. 그 지혜의 기저에는 우리 사회가 공유할 사회정의, 인권,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이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 대통령과 정치인 그리고 사회 지도층의 몫이 있고 그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이다. (양극화로 분열과 도탄에 빠진)국민이 삶의 의미와 희망을 갖도록 하면서 그에 대한 실행계획으로 국민을 통합하는 일이 그들의 몫이다. 지도자가 철학자이고 전략가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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