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은평녹색당이 주관한 북콘서트에 들렀다. 주인공은 하승수 녹색당공동위원장, 이야기책은 ‘착한 전기는 가능하다’였다. 그래서였을까? 돌아오는 길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무를 상상했다. 일명 전기나무를! 녹색신호등을 기다리며 가로수 그늘 밑에 잠깐 서 있었는데 그렇게 됐다.

 

전기나무는 전기를 생산하는 나무다. 지구의 신비로운 생명체인 나무가 햇빛 한 줄기에 이산화탄소 1컵과 물 몇 수저를 섞어 포도당을 만든다면, 인간이 창조한 이 전기나무는 햇빛을 받아 전기를 생산해낸다. 모양새는 흡사하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전기나무는 멀리서 봐서는 나무로 착각할 정도다.

 

착한 에너지 생산이 지역에서도 가능하다는 상상

 

가까이서 본 전기나무는 대충 이렇다. 잎은 태양전지 셀이다. 예전이라면 푸른색 일변이었겠지만 이제는 다양한 색 연출이 가능해서인지 녹색이다. 영락없는 나뭇잎이다. 줄기는 겉은 나무와 다름없지만 속은 고성능 축전지가 들어가 있다. 낮에 생산한 전기는 남김없이 줄기에 저장되는 셈이다.


이렇게 저장된 전기는 주변 가로등 불빛을 밝힌다든지 가까운 상가나 건물에 전기를 공급해준다. 물론 전자기기 배터리가 다한 사람들이 급하게 충전하기 위해 전기나무 근처에 서성이는 모습도 흔히 보인다. 전기나무는 주로 도시에서 볼 수 있다. 시골의 경우에도 가로등이 설치된 도로 주변에서는 흔하게 보인다. 나무와 전기나무는 사이좋게 자리를 잡고 서 있다. 나무, 전기나무, 나무, 전기나무 이런 식이다.


전기나무가 생산하는 전기량은 어느 정도일까? 2015년 효율을 바탕으로 대략 계산해 봤다. 다 자란 참나무는 70만 개의 잎을, 느릅나무는 500만 개의 잎을 달고 있다. 그리고 그 잎들은 햇빛을 최대한 받기 위해 3차원의 빈 공간을 아주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겹쳐지는 잎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그런 잎을 모두 따서 넓게 펼치면 면적이 1,000㎡를 넘기기도 한단다. 250Wh 용량의 태양전지 모듈이 약 1.6㎡이니 1,000㎡이면 약 156kWh이다. 좀 더 작은 나무라고 가정하고 그 용량을 100kWh로 줄여 계산하더라도 이는 33가구가 쓸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해 낼 수 있는 규모다. 은평구에는 10,000그루 가까운 가로수가 자라고 있다. 절반인 5,000그루가 전기나무라면? 500,000kWh! 약 165,000가구가 쓸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할 수 있겠다.

 

거친 계산이지만, 착한 에너지 생산이 지역에서도 손쉽게 가능하다는 상상이다. 왜 착한 에너지인가? 환경을 더럽히지 않는다.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다. 화석에너지처럼 제3세계의 민중과 마을경제를 착취하지도 허물지도 않는다. 핵에너지처럼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생명을 저장잡지도 않는다.


물론 덜 그렇다는 거다. 거대한 송전탑도 필요 없다. 그러니 송전탑 때문에 눈물짓는 이도 없다. 자기 마을에서 쓸 전기는 자기 마을에서 가능한 한 생산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창조주가 창조한 아름다운 생명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못지않게 아름다운 전기 나무이다. 전기 나무가 녹색 나무와 어우러진 도시는 유토피아일까, 아니면 또 다른 기계중심주의 디스토피아일까? 집에 가는 버스가 오면서 상상은 끝났다.

 

왕벚나무는 어디에서 왔을까?

 

봄이다. 진달래, 개나리, 백목련은 큰 시차 없이 한꺼번에 꽃을 피웠다. 몇 년 전부터 봄꽃들이 한꺼번에 핀다. 기후변화로 인한 미묘한 생태계 변화라고 볼 수 있겠다. 곧 있으면 불광천의 벚꽃도 흐드러지게 피겠지. 기다렸다는 듯 벚꽃축제도 열릴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거리에 붙은 현수막을 보니 4월 10일부터 12일까지 불광천에서 벚꽃축제가 열린단다. 서대문구도 비슷한 시기에 안산에서 벚꽃 음악제를 준비하고 있다. 다른 곳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해마다 그렇다. 이미 벚꽃은 적어도 서울에서는 봄을 대표하는 꽃이 되었다. 잘 알다시피 일본사람들의 벚꽃사랑은 유별나다. 한때는 벚꽃문화를 왜색문화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란 아픈 역사가 있어서 일본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였을까? 왕벚나무 자생지를 놓고 벌이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논쟁이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가 즐기는 벚꽃은 왕벚나무이다. 벚나무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왕벚나무 꽃이 가장 크고 화려해 사랑을 받는다.


가로수나 공원 등지에 심은 벚나무는 거의 왕벚나무라고 보면 된다. 이 왕벚나무의 자생지를 놓고 오랫동안 티격태격해 왔다. 제주 한라산에서 왕벚나무 자생지가 발견된 반면, 일본에서는 아직 자생지를 찾지 못하면서 우리의 왕벚나무가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일본의 왕벚나무가 한국으로 건너왔다는 주장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최근 이와 관련한 논문이 국제 학술지에 실렸다.

 

조명숙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박사과정생과 김승철 교수가 지난해 11월 <미국 식물학회지>에 우리나라 왕벚나무에 관한 논문을 실었다. 제주 왕벚나무가 올벚나무를 모계로 하고 벚나무 또는 산벚나무를 부계로 하는 자연잡종으로 탄생했음을 핵 유전자와 엽록체 분석을 통해 밝혀냈다. 이렇게 되면 제주의 왕벚나무가 일본에서 왔을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그렇다고 한국의 왕벚나무가 일본에 건너갔다고 볼 근거는 아직 없다. 감정적 논쟁보다는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앞으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올해는 자생지 논쟁에 중국까지 뛰어든 모양이다. 중국은 자국의 자생종인 왕벚나무가 한국과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주장한다. 자생종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이익을 계산한 주장이라는 설명도 있지만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임에 분명하다. 왕벚나무 논쟁은 한·중·일 삼국의 정치적 갈등과 함께 오랜 동안 현재진행형이다.

 

아, 그러고 보니 잔인한 4월이다. 지난 4.16 이후로 1년이 다 되어가 건만 해결되거나 밝혀진 것 하나 없고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것처럼 떠들던 약속과 눈물이 거짓이었음을 확인하는 순간 순간이다. 그래서 4월을 잔인하다고 했던 건가? 함께 견뎌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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